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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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놓은 삼권분립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입법, 행정, 사법기관 중 법원은 어쩌면 국민과 가장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기관이 아닐까.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이 법을 제정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국회의원이나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정보를 먼저 알게 되고 이와 관련된 정책을 집행하는 고위공직자들의 권력도 대단하지만 국민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뉴스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공개되기도 하고 각 기관에 의견을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비교적 열려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각 기관에 속한 개인이 잘못을 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국민에게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4년마다 있는 선거를 통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정부의 경우에도 일반 국민들이 각 부서별로 민원을 제기하기가 예전에 비해 보다 용이해지도록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책임은 사법부로 이관되어 재판 과정을 통해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원이 잘못했을 때, 과연 그에 대한 잘못을 법원 스스로가 책임을 잘 묻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국민에게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국민들에게 법원은 아직 멀고 높게만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법원의 판결은 매우 전문적인 역량을 요구하는 일이고 개인의 일생을 결정지을 수 있는 큰 힘을 가졌기에 다양한 과정을 통해 어렵게 선발된 전문가들이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함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때문에 사법의 힘이 국민의 영향력 밖으로 빠져 나가선 안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법정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특히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욱 그럴 것이다. 판례를 참고해 판결을 내리고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법원이 지닌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국민들의 법 정서와 다른 판결이 내려지거나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해 현실과 맞지 않는 결과를 얻게 되거나 할 때 우리는 사법기관에 실망하지만 구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공고한 법원의 위상에 끊임없이 돌을 던지며 문제를 제기하고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내려 노력하는 변호사가 있어가슴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때때로 우리에게 법에게 필요한 건 법적 안정성 뿐만 아니라 구체적 타당성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뀌기 쉽지 않지만 추천사 중 하나의 문구에서처럼 변화란 결국 쉬운 해답을 추구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질문의 수를 늘려가는 것이고 이기든 지든 필요한 싸움을 찾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현재 우리 법 체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부조리에 맞서 앞선 판례를 확인하며 모두 손쉽게 눈을 감는 선택을 할 때 이와는 반대로 맞서 싸우는 선택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어 감사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사례로 소개된 이야기들을 보며 우리가 어쩌면 너무도 법원에서 벌어지는 잘못에는 관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당사자로 법정에 서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도 재판 기일을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늘어지기만 하는 재판부의 모습이나 불편한 법률 서비스, 판결에 대한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아 자신이 왜 그 판결을 받았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판결문은 당사자로서 당연히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법부의 업무 과중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요소도 분명히 있을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재판을 청구해 받을 수 있는 국민으로서 권리가 무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선 안될 것이다. 더불어 책에서 주요 내용으로 나오는 법관의 잘못된 재판 결과로 인해 국민이 받은 피해를 국가가 배상하고 책임을 묻도록 하는 싸움은 쉽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함께 의논해 결론을 내야할 영역이라 생각한다. ‘법원에 대한 비판은 자칫 사법부의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권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법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우리가 존중해야 할 건 사법부가 선고하는 판결이지 불편부당한 서비스가 아닐 것이다.’ 라는 말에 크게 공감이 된다. 이 밖에도 국가배상 사건의 위자료가 재판부마다 들쭉날쭉 달라 피해자에게 위로는커녕 고통을 주는 결과나 공익 신고자를 현실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 성범죄 양형과 심신미약 규정의 잘못된 적용으로 인한 감형,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상속 지위만을 취득한 자들을 막을 수 없는 현실, 공소시효로 인해 증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물을 수 없는 문제, 3심까지 재판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지 못한 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는 경우에 생겨날 수 있는 기회의 불균등 등 국민 대다수의 법 정서와 달라 매번 분노하면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던 법 체계 속 많은 부조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동시에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법 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논의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관 선발이나 법관 평가 결과 등을 통해 국민의 의견이 사법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법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잘못된 판결이 되도록 나오지 않도록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겨나길 간절히 소원한다.

 

  ‘좋은 법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저자가 소개한 법철학자의 표현처럼 작은 변화로 시작해 우리 사회가 보다 공정하고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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