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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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삶이 다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타인에게 가혹해지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가능하다면, 매일매일이 내게 다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매일매일 다정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정하다’는 것은 어쩌면 ‘상태’로서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도’로서 내가 실천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 새로 쓰는 작가의 말


다정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세상이 시끄러울 때. 뉴스를 듣다 마음을 쓸어내릴 때. 그럴 때면 다정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서로에게 웃어주고, 웃게 하고,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한다. 


<다정한 매일매일>에는 백수린 작가의 일상 한 스푼, 책에 대한 이야기 한 스푼, 빵 이야기 한 스푼을 넣어 빚은 책이다. 각 꼭지마다 빵 한 조각, 책 한 권을 소개하며 작가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가 절친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상실의 고통은 계속 그 자리에 있고, 고통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지속된다고 쓰여 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매번 처음처럼 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죽음은 하나의 세계가 문을 닫는 일이고, 아무리 목 놓아 소리 질러도 열리지 않는 문의 이쪽 편에서 무력함을 확인하는 일이니까.

- p.214


요 며칠 동안 마음을 자주 쓸어내렸다. 세상이 뒤집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소란한 마음을 갖고 읽은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백수린 작가가 가진 예민함과 다정함이 또렷하게 보였고, 그 점이 좋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이런 마음도 있구나. 


“어떤 언어로 소설을 쓰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흉내”내거나 그 언어의 모국어 화자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언어의 모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잠재하지만 아직 누구도 보지 못한 모습을 끌어내 보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짧은 꼭지로 구성되어 있어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조금씩 읽었다. 술술 읽히는 문장들인데도, 이해되지 않는 말들은 하나도 없는데도 읽는 데에 꽤 걸렸다. 좋은 문장들을 자꾸만 읽었다. 마음이 선뜩해지는 날이면 빵 한 조각을 먹어야지. 이 책을 읽어야지.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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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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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한줄평: 혼란 속의 사랑, 바다, 음악, 죽음.
어둡고 습하고 비오는 요즘.. 과몰입하기 좋은 책이었다.

혼란스럽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누가 누구인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간다. 흘러가는 소설을 믿고 따라가다보면 등장인물들의 정보를 하나둘씩 조합할 수 있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을 조합하다보면 사랑과 바다, 음악과 죽음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 혼란 속의 이야기가 좋았다.

“사랑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불가사의인가. 왜냐하면 소유-됨은 결코 멀리 있은 일이 아니며, 그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매일을 위협하는 기이한 꿈을, 감금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 p.112

17세기 예술가들의 삶을 따라가며 마주하는 사랑은 강렬하다. 사랑은 육체와 정신을 넘나들며 차갑게 타오른다. 서로를 욕망하기도 하고, 사랑을 지나쳐 이별하기도 하는 과정이 예술가들을 통해 음악으로 발현한다. 결국 나는 책을 모두 덮고 나서야 사랑, 바다, 음악, 죽음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사실은 모두 하나의 의미로 통하는구나.

"애도는 시간이 흐르면 약해지는 고통이 아니다. 애도는 죽음을 대하는 담대하고 능동적인 초탈이다. 죽음에 동조하지 말고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사라진 존재와 이어 주는 각별한 끈을 끊어야 한다.”
- p. 269

파스칼 키냐르가 펼쳐낸 이야기 속에는 철학적인 사유가 들어있다. 그래서 쉽게 후루룩 읽을 수 없다. 한줄한줄 뜯어 읽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삶을 발견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등장인물이 누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정보를 수집하며 이야기를 쫓아가고, 그 속에서 여러 일들을 겪고,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는 과정이 한 사람의 ‘삶’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사랑했던 문장을 소개해야지!

“내가 얼마나 당신 품속에서 비틀거리고 싶은지”
- p.429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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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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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박민정, 천사가 날 대신해


_한줄평 :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족한 것들

 

소설, 잇다시리즈는 믿고 읽는 시리즈 중 하나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과거와 현재를 엮어 미래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근대 여성 작가들의 주요 작품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읽다보면 희미할지라도, 나아가고픈 방향이 그려진다. 그 점에서 자꾸만 찾아 읽게 된다. 과거의 여성은, 그리고 지금의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천사가 날 대신해>는 이 시리즈의 이전 책들보다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 시인이자 평론가, 언론인, 번역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작가라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사실 박민정 작가의 글이 실렸음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누구지?’ 했었다. 그러다 <미스 플라이트>를 쓴 작가라는 말에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 두 작가를 엮을 생각을 했을까....

 

사람이 사랑을 구한다거나 잃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 사랑을 가지고, 어떤 대상으로 하여금 그것을 눈 깨우게 되어서 결국 분명한 생활의식을 가지는 데 불과한 일이니까요. 또 말씀하신 외로운 사람들 속의 비극 같은 것은 물론 어느 곳에서든지 사람 자신이 그 운명을 먼저 짓고 이 세상을 지배해나가게 될 때까지 또, 세상에 모든 사람들과 결탁해서 사는 것을 폐지하기까지는 면치 못할 일입니다.”

 

김명순의 글 <의심의 소녀>, <돌아다볼 때>, <외로운 사람들>은 여성이 겪어야 했던 외로움을 그리고 있다. 추측과 소문, 연애와 결혼 등의 이야기는 여성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며 외롭게 만든다. 이를 지켜보며 당대 여성의 삶을 그려볼 수 있고, 동시에 현대 여성의 삶과 얼마큼의 거리감이 있을지 가늠해보게 된다.

 

그리고 마주하는 글이 박민정의 <천사가 날 대신해>였다. 친구의 죽음을 따라가는 의 시선은 보는 내내 숨이 막힌다. 그리고 소름이 끼친다. 단순히 죽음때문만이 아니다. 짧은 글 속에서도 주변 인물들의 기이하고 복잡한 감정선과 관계성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한 사의, 한 여성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공포심을 심어주는지 드러난다. 현대의 여성들은 그런 공포 속에 살아간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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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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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줄평 : 가족과 식구, 그리고 우리

 

나에게 새 가족이 생겼다.”라는 첫 문장을 읽으면서 글자를 매만져보았던 기억이 난다. 새 가족이 생기는 건 어떤 의미일까. 좋은걸까. 그리고 이어지는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아침이면 혼자 어두운 방 안에 남겨진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가늠했다. 외로운 글이려나.

 

가족의 의미는 넓어지고 있다. 한 때는 혈연, 혼인으로 이루어진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그와 동시에 언제나 행복하고 화목한 정상성의 범주 안에 있는 가족의 모습을 막연하게 그렸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족의 의미가 더 다양한 것을 포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혈연, 혼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고, 혈연, 혼인의 관계에 있더라도 가족이 아닐 수 있다. 그 중심에서 읽은 이 책은 가족의 모습을 해체하고 이어붙인다.

 

엄마와 헤어진 이후 외갓집에서 지내는 이경은 가족으로부터 따스한 정을 느끼지 못한다. 언제나 함께 잠에 들지만,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부르는 가족들은 이경을 반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다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건 그들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형태는 구성원의 상실과 유입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역할도 변한다. 떠난 이모를 대신하여 이모 흉내를 내고 아가씨라고 불리는 이경의 모습은 어딘가 어긋나보이면서도 자연스럽다. 짧은 소설 속 가족의 의미를 이렇게 명료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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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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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모비 딕 


예진지수 : 4.4/5점


한줄평 : 800번의 책 넘김과 800배의 재미

(다들 모비딕, 모비딕 하길래 얼마나 재밌나 봤는데 모비딕 모비딕)


처음 책을 봤을 때, 엄청난 페이지수에 조금 두렵기도 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800페이지라니... 정말 ‘벽돌책’이라는 수식이 딱 맞는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벽돌책들을 끊이지 않고 쭉쭉 읽어나가는 재미와 다 읽었을 때의 쾌감은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시도!!!! 해보았다. 어디 다닐 때마다 들고다니면서 조금씩 읽어는데 벽돌책 들고 다니는 건 처음이라..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리를 앗아간 ‘모비딕’이라는 거대한 고래에게 원수를 갚기 위한 모험은 흥미진진하다. 세세한 설명과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책의 무게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고전이 고전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과 왜 이제야 읽었는지에 대한 약간의 후회가 있을 정도의 재미였다. 


작가가 포경선을 탄 이력이 있는 데다 여러 조사와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까지 더해져 고래, 포경에 대해 정말 세밀하고 탄탄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살면서 내가 고래를 볼 일도 없을 것 같고, 고래를 잡거나 고래와 싸울 일은 더더욱 없을 텐데 그 경험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 ‘배’라는 한정적인 공간과 ‘바다’라는 무한한 공간의 대비 속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상상력에 말 그대로 ‘하루종일’ 빠져있었다. 


그리고 외국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등장인물 이름을 외우는 것이 어려웠고, 공간의 배치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으로서 책의 앞쪽에 실린 도면이나 그림, 등장인물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주 앞쪽을 들여다보며 ‘아하!’ 하고 넘어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외우게 된 것도 꽤 재미있었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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