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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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계절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늘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의 밤만이 지닌 설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밤이 그토록 무서운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는 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을 것이다. 열이 펄펄 나 보챌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홀로 병원 응급실로 운전해 달려가 본 엄마라면 더더욱 잘 알 것이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내 마음과 달리 까맣게 웅크린 존재인 밤이 얼마나 무섭도록 내 불행에 무심한지, 단  한 대의 차도 찾아볼 수 없는 밤의 도로에 혼자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도록 외로운지 말이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많은 역사가들이 외면했던, 그리하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밤의 역사가 담겼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밤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는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영국, 미국을 무대로 중세 말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편지, 회고록, 여행기, 일기와 같은 방대한 자료를 활용해 그날, 그 당시의 밤에 일어난 일들을 우리 앞에 있는 그대로 펼친다. 저자가 재현하는 밤의 모습은 흥미롭고, 밤에 대한 묘사는 더없이 유려하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람들이 밤에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적인 위험과 미신적인 위험은 무엇일까? 역사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그들이 그러한 위험에 직면하여 어떻게 삶을 꾸려갔는지 밝힌다. 밤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밤은 그저 미지의 땅이고 광범위한 위험을 선사하는 무엇이다. 





세계사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의 목차를 먼저 살펴보면, 1부 죽음의 그림자, 2부 자연의 법칙, 3부 밤의 영토, 4부 사적인 세계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밤은 전통적으로 방종과 무질서를 연상시키는 매력 때문에 그 상징적 가치가 깊다. 민중의 정신 속에서, 밤의 어둠은 교양 있는 사람들의 영역 밖에 있었다. 존 밀턴은 "죄악을 만드는 것은 빛일 뿐"이라고 썼다. 땅거미는 교양과 자유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여기서 자유란 온화한 성격과 악의적인 성격 모두를 가리킨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p.242





낮에는 가정에 묶여 있던 상류층의 아내와 딸 들은 호위하는 사람 없이 나가지 말라는 오래된 금기를 어기고 때로는 밤에 외출했다. 17세기에 떠돌던 어느 이야기에서 한 여인이 다른 여인에게 "낮에는 남자들이 당신의 자유를 가두어놨으니, 밤에는 스스로 찾으라"라고 충고한다. 보카치오의 <일 코르바초>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여자들이 “유령, 혼령, 환영”을 두려워하면서도 불법적인 만남을 위해 밤에 먼 거리를 다니는 것에 놀란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p.332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고요한 어둠의 심연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자동차"와 "새로운 가스등"과 "불 켜진 저택의 창문"은 시골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뒤바꿔버렸다. 그렇게 밤하늘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 어둠과 빛이 바뀌는 주기, 낮의 빛과 소리의 세계로부터의 안식처인 모든 것이 손상되었으며 사생활, 친밀감, 자아 성찰의 기회도 줄어들었다. 이제 밤은 더 이상 "밤"이 아니게 되었다. 과거 온 세상이 어둠의 심연 속에 가라앉았던 밤의 모습이 궁금한 분들께 추천하는, 우리가 몰랐던 밤의 역사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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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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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책을 펼치기 전에 묘한 느낌을 주는 제목을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브로콜리는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식재료다. 푸릇푸릇한 외양 때문인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브로콜리가 과연 싱싱한지 아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펼치자 저 멀리 어딘가, 아니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아련아련한 눈빛의 작가님 사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염 돋는 독특한 제목과 개그감이 충만해 보이는 사진은 무림의 절대 고수들만이 차용할 수 있는 '여유'였다. '드루와, 드루와. 식재료 에세이는 처음이지?' 글들이 곱고도 너무 맛있다! 내 마음속 최애 에세이스트의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 벽돌에게 던졌던 질문을 저자는 양파에게 던진다. "무엇이 되고 싶으니?" 그러자 양파는 진득하게 볶아 캐러멜화를 시켜 단맛을 뽐내고 싶다고 했고 식초나 감칠맛 조미료는 종류와 맛의 특성, 쓰임새 등을 두루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고 한다. 식재료 하나하나와 대화하듯이 세밀하고 고운 언어로 담아낸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는 예쁘고 정성스럽게 차려낸 한끼 같은 에세이다. 동네 마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브로콜리, 두부, 마늘종, 홍합, 새우 등 평범한 식재료들이 주인공이다. 그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느낌이고, 먹어봤지만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느낌이다. 곱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갖가지 재료들을 이제야 제대로 먹어볼 것만 같다.

재료 자체에 맛이 충분히 담겨 있기에 복잡한 조리가 필요하지 않은 점도 마늘종의 매력이다. 흔히 심이 누글누글해지고 단맛이 진해질 때까지 볶아 먹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기만 해도 충분하다. 아린 맛이 빠져나가고 단맛만 남아 봄철 반찬으로 제 몫을 충분히 한다. 단단한 밑동을 잘라서 버리고 큰 냄비에 절반 정도 물을 담고 소금을 탄 뒤 끓으면 마늘종을 썰지 않은 그대로 담근다. 굵기에 따라 다르지만 날 것의 아삭함을 좋아하되 아린 맛만 적당히 가셔내고 싶다면 1~2분 정도, 완전히 익힌 채소처럼 부드러움을 즐기고 싶다면 5분 정도 데친 뒤 건진다. 포크나 칼로 껍질을 찔렀을 때 살짝 저항하며 속살까지 들어가면 다 익은 것이다.
p.64



에세이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의 마늘종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퍽 인상적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시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져 미라가 되어가고 있는 마늘종 한 묶음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삭아삭한 식감을 가진 마늘종이 얼마나 입맛을 돋게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마늘종이 요리망손인 나를 만나면 흐물흐물 마치 볶음 요리 안의 양파처럼 돼버리고 만다. 자꾸 망치고 망치다, 결국 포기한 채 냉장고 한편에 밀어 넣었다. 아...! 마늘종은 뜨거운 물에 데치기만 해도 충분하고 아린 맛만 가셔내고 싶으면 1,2분 정도만 데치면 되는구나, 요리 포인트를 딱 잡아주어 내일 당장 날이 밝는 즉시 마트에 가서 마늘종을 새로 사와 요리해 보겠다 마음먹었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읽으면서 간혹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요리 혹은 먹방 영상 콘텐츠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특히 홍합을 조리하는 대목에서는 당장이라도 홍합을 사러 마트에 달려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살짝 익혀낸 홍합의 도톰한 살을 씹으면 왈칵 쏟아지는 감칠맛! 홍합을 발라 먹는 동안 죽을 맛있게 끓여 내는 법까지 실려있어 식재료의 사진이나 완성된 요리의 사진은 단 한 컷도 실려있지 않지만 더욱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다.

요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 요리가 재미없어 미칠 지경인 분들께 특히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추천하고 싶다. 생 마늘종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 탱글탱글한 홍합의 살들 사이로 비져나오는 감칠맛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요리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마트에 가서 마늘종과 홍합을 사와 이 책에 실린 요리들을 그대로 해볼 참이다. 평범한 식재료에 아주 약간의 새로움을 더하면 완전히 다른 요리가 된다. 말장난 같지만 알았지만 몰랐고, 먹어봤지만 먹어보지 못한 평범한 식재료들을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로 다시 제대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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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 하버드 심리학자와 소아정신건강전문의가 밝혀낸 불화에 대한 혁명적 통찰
에드 트로닉.클로디아 M. 골드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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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시작하면서 배우는 것이 실패와 갈등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실패, 목적 달성의 실패 등 이 세상에는 다양한 실패가 존재한다. 아직 부모의 품 안에서만 머무르는 아이들은  부족할 것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리며 어렵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장난감을 얻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단체 생활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 친구나 선생님 및 다른 사회 구성원과 갈등과 불화를 겪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불화와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결국은 아이를, 우리 모두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심리학도서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를 소개한다.





심리학책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는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과 함께 시작한다. 일명 '무표정 실험'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기와 엄마가 마주 앉아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웃다가 돌연 엄마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엄마의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때 놀랍게도 아기의 얼굴 역시 걱정스럽게 변한다. 아기는 엄마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미소를 지어 보이고 손짓도 해 보인다. 엄마가 반응을 멈춘 지 16초가 지나 아기는 손뼉을 쳐 엄마의 반응을 끌어내보려고도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반응이 없고, 1분 18초가 지나고 나자 아기는 불안해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다가 마침내 울기 시작한다. 이때 엄마의 얼굴에 사랑이 가득 담긴 표정이 돌아오고 아기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다. 1분 30초가 지난 시점에 엄마와 아기는 다시 하나가 된다. 아기와 엄마 사이의 흔들린 믿음이 다시 봉합된 무표정 실험은 관계의 불안과 불화는 성장과 변화에 필수적임을 말해주는 이론으로 발전했다.




무표정 연구는 인간의 생애 전반에 나타나는 행동과 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항들을 설명해 주는 폭넓은 이론으로 발전했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시절에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 첫 순간들이 이후 모든 관계의 형태를 만든다는 점을 밝혀냈을 뿐 아니라, 관계에서 순간순간 생겨나는 작은 균열들을 수리하는 능력이 경험의 질과 구조를 형성하며 개인의 성격은 물론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을 구축한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최초의 무표정 연구 및 그 실험 방식을 활용한 이후 수십 년의 연구가 우리 각자에게 불만스럽거나 괴로운 관계를 벗어나 친밀하고 잘 연결된 관계로 나아갈 방법에 대해 통찰을 준다는 점일 것이다.

p.45



심리책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의 무표정 실험은 단절과 연결, 갈등과 봉합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인간이 기억하지 못할 어린 시절에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들이 그 뒤로 맺는 모든 인간관계의 형태를 만든다. 또한 관계에서 불화와 불안이 생겨나는 것이 '정상'이며 타인과 지내는 방식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하는 관계 속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화와 불안이 야기하는 불일치 상태를 거쳐 복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생겨나고, 이 에너지는 삶을 살아가는 정서적 연료가 되어준다. 즉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불화, 갈등, 불안, 혼란 등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책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에는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 갈등을 빚는 가족,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사례들이 실렸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생애 초기에 불일치와 복구 과정을 온전하게 겪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 제대로 된 불안과 복구의 경험을 하지 못하면 스트레스 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기고 이런 패턴을 깨기 위해서는 호흡하는 방법을 새로이 배우듯 마음과 몸을 모두 이용해 학습해야 한다고 한다.



'성장통'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 사람의 정신적 성장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성장에도 적용된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다. 불안과 불화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는 게 아니다. 불화와 불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시 복구하려 힘쓰는 과정에서 얻는 에너지는 삶을 살아나갈 근원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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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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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중 연합군은 하루라도 더 빨리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했다. 도쿄 중심부로부터 41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 불에 탔고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것은 단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바로 이 비극적 장면에 숨은 진실을 파헤쳤고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담았다. 인문학책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과 꿈, 도덕과 양심 사이의 어떤 지점을 짚어냈다.




도쿄 대공습이 목적이 더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함이었다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말콤 글래드웰은 인문학책 추천 <어떤 선택의 재검토>를 통해 더 나은 결말을 꿈꾸었으나 최악의 결말로 치달은 도쿄 대공습,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재검토해나간다. 당시의 미군 지휘부가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결정을 내린 후 그들이 마주하게 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낱낱이 파헤친다. '폭격기 마피아'라고 불리던 미 육군 항공대 지휘관들이 당초 추구했던 것은 도쿄 전역을 불태우고 민간인 대학살이 아니었다! 그들의 원 의도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이 의도했던 것은 민간인을 비롯한 불필요한 인명 손실을 줄이고 산업 시설을 파괴해 일본의 전쟁 야욕을 뿌리뽑는 거였다. 



 


내가 만났던 여러 역사학자는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다. 그들은 발달된 전투기와 스텔스 폭격기,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수송기를 직접 조종했었다. 그래서 공군력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경험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30년대의 폭격기 마피아들은 이론적인 것,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p.51



"그가 인류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폭격조준기를 개발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도운 이유가 뭘까 궁금할 겁니다. 그는 폭격을 더욱 정확하게 만듦으로써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피아 폭격기'라고 불렸던 당시 미 육군 항공대 소속 지휘관들은 혁신적이고 진보한 전쟁관을 주장해 다른 군인들 사이에서 괴짜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진보한다"라는 그들의 모토처럼 적군의 시야가 가려지는 한밤중에 낮은 고도에서 가능한 많은 폭탄을 떨어뜨려 민간인 사상자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과거와 달리 최고 기술을 탑재한 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로 일본의 산업 및 군수 시설만을 정밀하게 조준해 폭격하고 일본의 전쟁 의지, 수행 능력 등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들이 이러한 새로운 전쟁 방식을 추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뒷받침이 되었다. 네덜란드 출신 공학자 노든이 개발한 '노든 폭격조준기'는 혁신적으로 정밀한 조준이 가능했고 B-29 슈퍼포트리스는 적군의 대공포화가 닿지 않는 높은 고도에서 작전이 가능했다. 



이렇듯 기술적 진보가 뒷받침되었지만 그들의 이상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기상 악화, 제트기류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미군이 목표한 폭격은 당초 목표치의 단 1%에 그쳤고 연이은 실패에 미군 지휘부는 전쟁 방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폭격기 마피아의 정밀 폭격 방침을 철회하고 이전의 무차별 폭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렇게 전쟁 방식을 뒤바꿔버리는 과정에서 충분한 숙고와 검토가 없었음을 지적한다. 무고한 희생자를 줄이겠다는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각기 다른 전쟁 방식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미군의 목적대로 전쟁은 끝이 났지만 과연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재고의 여지가 존재한다.


양심과 의지를 적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련의 도덕적 문제가 있다. 그것들은 대단히 어려운 종류의 문제이다. 반면 인간의 독창성을 적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폭격기 마피아의 천재성은 그 차이를 이해한 것이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태워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 일을 할 수 있다."

p.233



도쿄 대공습으로 하룻밤 사이 도쿄 도시 전체가 불탔고 1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쟁을 빨리 종식시켜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미군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어떤 선택을 포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대규모의 학살을 자행한 르메이는 전쟁의 승리자로 기억되고 전쟁의 부조리를 막기 위해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귀를 기울인 헨셀이 맞은 쓸쓸한 결말에 입안이 쓰다. 살아가는 동안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을 맞게 된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양심과 도덕의 소리에 맞는 옳은 결정을 내리고 있을까?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선택들을 다시 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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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 - 실재에 이르는 10가지 근본
프랭크 윌첵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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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만 보고 선택한 책이다. 심오하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이 담긴 철학책 정도로만 생각했다. 나에게 하나하나 분해되고, 다시 내 나름의 질서로 조합되어, 내 마음속에 흡수되기를 기다리는 문장들만 기대하며 펼쳤다가 아주 조금 놀랐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랭크 윌첵은 "원자핵의 강력 이론에서 점근적 자유성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몇 번을 읽어도 그의 공로가 무엇인지 내겐 알 도리가 없었다ㅠㅠ). 





어쩌면 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이라는 이력이 주는 편견은 그의 책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신의 모국어라 할 수 있을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은 무자비한(!!) 책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빛나는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는 예상대로 굉장히 아름답고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었다.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는 저자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해 물리적 세계를 연구하면서 배울 수 있는 근본적인 큰 원리 열 가지를 담은, 대중들을 위한 물리학책이다. 우주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이론물리학과 천문학 우주론 생물학, 기술의 미래와 예술, 인간의 도덕성까지 다방면에 걸친 지식이 담겼다. 



저자는 우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몸에 익혔던 것을 버리고, 과학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받아들여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은 우리의 오감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통합한 결과이지 우주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가치로운 일이다.



우리는 빅뱅 이후에 빛이 여행한 거리 이상을 볼 수 없다. 이것이 우주의 지평선을 이룬다. 그러나 하루가 지날 때마다 빅뱅은 점점 더 과거로 물러선다. 어제는 지평선 밖에 있던 것이 오늘은 지평선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가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하루, 심지어 수천 년을 보탠다고 해도 우주의 나이가 늘어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고,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늘어나는 공간은 인간의 시간 척도로는 거의 알아볼 수조차 없다. 그러나 우리의 먼 후손이 보는 우주는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며, 지평선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는 것은 정신의 훈련이 된다. 

 p.68~69



우주라고 하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투성이로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우주의 본질이 불확정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주는 놀랍도록 균일하다고 한다. 우주 전체는 같은 물질로 채워져 있으며 전자는 모두 동일하다. 거대한 우주의 세밀한 부분까지 심오한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이런 단순하고 평범한 원리들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짜릿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선물을 가져다준다. 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에게 세계는 신선하고, 명쾌하고, 놀랍도록 풍부해 보인다

 p.19



과학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보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지각과 환경이라는 한계 내에서 경험을 통해 세워온 '모형'을 깨뜨려버리는 것, 그것은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첫 발걸음이 된다. 불완전하지만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그 첫걸음을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와 함께 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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