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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 본격 식재료 에세이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2년 5월
평점 :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책을 펼치기 전에 묘한 느낌을 주는 제목을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브로콜리는 마트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식재료다. 푸릇푸릇한 외양 때문인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브로콜리가 과연 싱싱한지 아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책을 펼치자 저 멀리 어딘가, 아니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아련아련한 눈빛의 작가님 사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다 읽고 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염 돋는 독특한 제목과 개그감이 충만해 보이는 사진은 무림의 절대 고수들만이 차용할 수 있는 '여유'였다. '드루와, 드루와. 식재료 에세이는 처음이지?' 글들이 곱고도 너무 맛있다! 내 마음속 최애 에세이스트의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 벽돌에게 던졌던 질문을 저자는 양파에게 던진다. "무엇이 되고 싶으니?" 그러자 양파는 진득하게 볶아 캐러멜화를 시켜 단맛을 뽐내고 싶다고 했고 식초나 감칠맛 조미료는 종류와 맛의 특성, 쓰임새 등을 두루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고 한다. 식재료 하나하나와 대화하듯이 세밀하고 고운 언어로 담아낸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는 예쁘고 정성스럽게 차려낸 한끼 같은 에세이다. 동네 마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브로콜리, 두부, 마늘종, 홍합, 새우 등 평범한 식재료들이 주인공이다. 그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 느낌이고, 먹어봤지만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느낌이다. 곱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갖가지 재료들을 이제야 제대로 먹어볼 것만 같다.
재료 자체에 맛이 충분히 담겨 있기에 복잡한 조리가 필요하지 않은 점도 마늘종의 매력이다. 흔히 심이 누글누글해지고 단맛이 진해질 때까지 볶아 먹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기만 해도 충분하다. 아린 맛이 빠져나가고 단맛만 남아 봄철 반찬으로 제 몫을 충분히 한다. 단단한 밑동을 잘라서 버리고 큰 냄비에 절반 정도 물을 담고 소금을 탄 뒤 끓으면 마늘종을 썰지 않은 그대로 담근다. 굵기에 따라 다르지만 날 것의 아삭함을 좋아하되 아린 맛만 적당히 가셔내고 싶다면 1~2분 정도, 완전히 익힌 채소처럼 부드러움을 즐기고 싶다면 5분 정도 데친 뒤 건진다. 포크나 칼로 껍질을 찔렀을 때 살짝 저항하며 속살까지 들어가면 다 익은 것이다.
p.64
에세이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의 마늘종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퍽 인상적이었다.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시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져 미라가 되어가고 있는 마늘종 한 묶음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삭아삭한 식감을 가진 마늘종이 얼마나 입맛을 돋게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마늘종이 요리망손인 나를 만나면 흐물흐물 마치 볶음 요리 안의 양파처럼 돼버리고 만다. 자꾸 망치고 망치다, 결국 포기한 채 냉장고 한편에 밀어 넣었다. 아...! 마늘종은 뜨거운 물에 데치기만 해도 충분하고 아린 맛만 가셔내고 싶으면 1,2분 정도만 데치면 되는구나, 요리 포인트를 딱 잡아주어 내일 당장 날이 밝는 즉시 마트에 가서 마늘종을 새로 사와 요리해 보겠다 마음먹었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읽으면서 간혹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요리 혹은 먹방 영상 콘텐츠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특히 홍합을 조리하는 대목에서는 당장이라도 홍합을 사러 마트에 달려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살짝 익혀낸 홍합의 도톰한 살을 씹으면 왈칵 쏟아지는 감칠맛! 홍합을 발라 먹는 동안 죽을 맛있게 끓여 내는 법까지 실려있어 식재료의 사진이나 완성된 요리의 사진은 단 한 컷도 실려있지 않지만 더욱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다.
요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 요리가 재미없어 미칠 지경인 분들께 특히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추천하고 싶다. 생 마늘종이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 탱글탱글한 홍합의 살들 사이로 비져나오는 감칠맛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요리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마트에 가서 마늘종과 홍합을 사와 이 책에 실린 요리들을 그대로 해볼 참이다. 평범한 식재료에 아주 약간의 새로움을 더하면 완전히 다른 요리가 된다. 말장난 같지만 알았지만 몰랐고, 먹어봤지만 먹어보지 못한 평범한 식재료들을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로 다시 제대로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