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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평점 :

밤은 계절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낭만적인 분위기는 늘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의 밤만이 지닌 설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밤이 그토록 무서운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는 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을 것이다. 열이 펄펄 나 보챌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홀로 병원 응급실로 운전해 달려가 본 엄마라면 더더욱 잘 알 것이다.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내 마음과 달리 까맣게 웅크린 존재인 밤이 얼마나 무섭도록 내 불행에 무심한지, 단 한 대의 차도 찾아볼 수 없는 밤의 도로에 혼자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도록 외로운지 말이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많은 역사가들이 외면했던, 그리하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밤의 역사가 담겼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밤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는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서유럽, 영국, 미국을 무대로 중세 말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편지, 회고록, 여행기, 일기와 같은 방대한 자료를 활용해 그날, 그 당시의 밤에 일어난 일들을 우리 앞에 있는 그대로 펼친다. 저자가 재현하는 밤의 모습은 흥미롭고, 밤에 대한 묘사는 더없이 유려하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람들이 밤에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적인 위험과 미신적인 위험은 무엇일까? 역사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는 그들이 그러한 위험에 직면하여 어떻게 삶을 꾸려갔는지 밝힌다. 밤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 보자면 밤은 그저 미지의 땅이고 광범위한 위험을 선사하는 무엇이다.
세계사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의 목차를 먼저 살펴보면, 1부 죽음의 그림자, 2부 자연의 법칙, 3부 밤의 영토, 4부 사적인 세계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밤은 전통적으로 방종과 무질서를 연상시키는 매력 때문에 그 상징적 가치가 깊다. 민중의 정신 속에서, 밤의 어둠은 교양 있는 사람들의 영역 밖에 있었다. 존 밀턴은 "죄악을 만드는 것은 빛일 뿐"이라고 썼다. 땅거미는 교양과 자유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여기서 자유란 온화한 성격과 악의적인 성격 모두를 가리킨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p.242
낮에는 가정에 묶여 있던 상류층의 아내와 딸 들은 호위하는 사람 없이 나가지 말라는 오래된 금기를 어기고 때로는 밤에 외출했다. 17세기에 떠돌던 어느 이야기에서 한 여인이 다른 여인에게 "낮에는 남자들이 당신의 자유를 가두어놨으니, 밤에는 스스로 찾으라"라고 충고한다. 보카치오의 <일 코르바초>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여자들이 “유령, 혼령, 환영”을 두려워하면서도 불법적인 만남을 위해 밤에 먼 거리를 다니는 것에 놀란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p.332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고요한 어둠의 심연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자동차"와 "새로운 가스등"과 "불 켜진 저택의 창문"은 시골의 전통적 삶의 방식을 뒤바꿔버렸다. 그렇게 밤하늘에 남아 있는 아름다움, 어둠과 빛이 바뀌는 주기, 낮의 빛과 소리의 세계로부터의 안식처인 모든 것이 손상되었으며 사생활, 친밀감, 자아 성찰의 기회도 줄어들었다. 이제 밤은 더 이상 "밤"이 아니게 되었다. 과거 온 세상이 어둠의 심연 속에 가라앉았던 밤의 모습이 궁금한 분들께 추천하는, 우리가 몰랐던 밤의 역사책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