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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룬의 예술사이야기 1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이덕렬 옮김 / 들녘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예술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반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펼쳐 들었다.
먹고살기도 힘든 요즘에 웬 예술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반룬은 이렇게 대답한다.
...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기를 원하는가? 간단하다. 우리와 합류하자고 여러분을 초청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뜻하는 우리는 가끔씩 아침이나 저녁을 건너뛸 수는 있지만 음악과 미술이라는 별미가 어느 정도 마련되지 않는 인생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들 속에 속하는 사람들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가끔 씩이 아니라 수시로 아침저녁을 건너뛰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것이고 가끔씩 건너뛰어도 되는 사람들에게나 예술은 별미 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은 극도의 빈곤과 가난함속에서 작업을 했고 그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따지고 보면 예술이 별건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 흥얼흥얼 부르는 콧노래, 모래사장에서 만들어본 모래 쌓기, 심심해서 그려 본 그림, 사실 예술의 시작은 다 그런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시 옆길로 빠졌다. 아무튼 나는 어느 정도 별미가 필요한 적당히 배부른 사람에 속하는 모양이다.
이 책은 총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선사시대의 예술에서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인상주의 시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나온 지 오래된 책이라 현대는 빠져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전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반룬이 예술사의 전문가가 아니냐면 그건 아니다. 소위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마치 예술사 전반에 해박한 지식과 넓은 안목을 갖춘 사람과 마주앉아 그가 해주는 예술사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반룬은 건축, 회화, 조각, 음악을 넘나들며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한 예술이 발전한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시대와 국경을 넘어 물 흐르듯 흘러가며 피어나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예술의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과 생각 예술가나 작품에 대한 개인의 감상까지 곁들여 해주는 반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예술은 더 이상 어렵고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 옆 동네 친근한 아저씨의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반룬은 진정한 예술이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활 속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의 어려운 해설서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낫고 그것 보다는 직접 그림을 그려보거나 작은 악기라고 다뤄보는 것이 음악이나 미술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예술사에 대한 첫 번째 책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예술 하면 화가들의 이름과 그림의 특징들을 줄줄이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바로크니 로코코니 고딕이니 하는 시대에 통달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허튼 생각에서 벗어나 편안한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단계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건 예술을 접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일 것이다.
예술에 대한 나의 관심이 지적 허영이나 겉만 번드레한 아는 채에 그치지 않도록, 내가 관심 갖고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책으로 이 책은 상당히 고마운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