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의 조명
조요한 지음 / 열화당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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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라는 말속에는 서양이나 중국 일본과 차별화된 한국적인 미의 특성을 찾으려는 노력과 고민의 흔적이 숨어 있다.   그건 아마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민족적 정체성과 자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한국미는 물론 중국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 문화 종교 학문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우리나라에 끼친 중국의 영향은 막대하다. 그러나 중국문화를 공통분모로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오고 발전시켜 나왔다.

한국미란 그렇게 발전시켜 온 고유의 한국적인 정서와 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과 탐색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일본인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조선과 그 미술' 이란 책이 하나의 촉발이 되어 그 후 고유섭 조요한 김원용 최순우 등 많은 한국의 예술사가 들이 한국미를 조명, 그들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왔다.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미를 선과 비애의 미라고 설명한 반면 고유섭은 한국미의 특징을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으로 표현했고  김원용은 자연주의라고 보았다.    그에 대해 조요한은 한국미의 특징을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이란 두 축으로 보고 있다.

조요한은 이러한 한국예술의 특징이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추운 북방의 산림지대를 통과하면서 형성된 무교신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정신적 원형이나 종족적 무의식처럼 무교적인 요소가 한국인의 정신에 형성되어 있어 비균제성과 자연순응성이란 한국미의 특징을 이루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와 유교 역시 한국인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있어 큰 영향을 주었지만 그 모태는 무교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미를 조명함에 있어 유물이나 유적에 기대지 않고 그 정신적 기원과 기본 원동력을 먼저 찾으려고 한 점이 조요한이 그 외의 다른 예술사가와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조요한은 이러한 자신의 미 이론을 설명함에 있어 비교예술론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조요한은 먼저 동양과 서양의 미에 대한 관점과 가치의 차이를 지적하고 동양의 미는 동양의 미학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중국과 일본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과 한국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다름을 설명하며 어떻게 다른지를 유물과 유적을 통해 상세히 비교 설명하고 있다.

조요한의 한국미에 대한 이론과 철학적 토대를 짐작해 볼 수 있고 중국과 일본과 한국의 미를 객관적으로 비교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지침이 돼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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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반양장)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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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내적 사색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는 점이다.
음악을 들으며 무한한 선율의 세계에 빠질 때나 그림을 보며 새로운 세계로 안내되어 들어갈 때, 책을 읽으며 낯선 만남과 조우할 때마다 나는 내 내면의 세계가 넓어지고 정신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건 아주 감질나게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분명 하나의 기쁨이다.
그림이나 미술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예컨대 과학이나 종교에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모두는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훌륭한 그림 한점은 훌륭한 역사책이나 뛰어난 과학적 지식 이상으로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한 시대를 말없이 웅변해주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도 있고 무한한 상상과 무의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그림도 있다.
그림을 보면서 단지 그 그림을 그린 작가와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시간과 공간 철학과 사상까지도 만나게 된다.  물론 모든 작품에서 그런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명화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것과 구분되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거다.
 
서양미술사에 관련한 책 중에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만큼 유명하고 잘 쓰여진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서양미술사는 잘 쓰여진 책이 항상 그렇듯이 과장되고 현학적이지 않은 문체, 균형 있는 시각, 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제시해 주고 있는 책이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현대미술사 쪽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만 그 흐름 속에 있을 때는 그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현 시대의 미술의 흐름은 시간이 지나고 난 후의 어느 시점에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서양미술사의 첫 부분에 곰브리치는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왔다. 미술에 있어 새로운 기법 새로운 표현들이 끊임없이 나타났지만 그것이 그 전 시대보다 진보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건 우리가 아주 오래된 원시시대의 미술에서도 충분히 감동과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미술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시도와 도전의 역사였으며 그러한 시도와 도전은 기존의 반대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것을 제시함으로써 미술의 영역을 계속 확장해 온 미술가들의 역사로 보여 진다.

한 때 당연하게 여겨지던 생각과 양식들이 그것에 회의를 갖고 의문을 던졌던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극복되어 온 것을 바라보면 사람의 편견과 선입견이 미술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사랑받는 많은 그림들이 한때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그림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 한권으로 미술이나 미술사에 대해 무언가 알았다고 표현하기엔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작품을 실제로 감상한다고 해도 미술에 대해서 안다는 표현을 쓰기엔 무척 어려울 것 같다.  미술은 그만큼 다양하고 늘 새로운 것이 시도되는 시험의 장이다. 오늘날은 특히 더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서양미술사의 본보기로서 지침서로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는 책이다.  413개나 되는 컬러 도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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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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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라는 블로그를 안지는 꽤 되었다. 우연한 기회로 들어가서는 인생이란 카테고리에 올려놓은 글을 읽다가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 후로 시골의사 블로그는 내가 가장 자주 찾아가는 이웃이 되었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을 쓰는 외과의사 박경철씨는 의사로서보다는 경제전문가로 더 많이 알려진  분이지만 뛰어난 필력으로도 유명하여 그가 쓴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은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지 오래다.

웬만한 글은 이미 그의 블로그에 다 올려놓아서 굳이 책을 사서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지만 우연히 그의 책을 선물 받았고 그래서 다시 읽게 된 그의 글들은 또 한번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의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시골의사가 겪는 경험은 일반인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생과 사가 공존하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난무하는 병원이야기 속에는 삶의 처음과 끝이 한데 맞물려 휘돌아가는 소용돌이 같은 긴장감이 있다.그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골의사는 따뜻하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들려준다. 그래서 더욱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도 아프게도 만든다.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들 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들엔 감상을 넘어 선 삶의 철학과 깨달음의 성찰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불행하고 비참해질 수 있을까?  또 인간은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을 어디까지 참고 초월할 수 있을까?  하는 수많은 질문을 나는 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고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그 질문들의 답을 그들을 통해 찾았다.

잘못 알고 먹은 독버섯으로 큰 아들과 남편을 잃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째 아들마저 척추가 다쳐 눕게 되고 딸은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 받는 상황 속에서도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거두며 오히려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떤 이장집 부인은 삶의 조건이 아무리 열악해도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원장님요, 사람들은 죽어서 천당엘 갈라꼬 애들을 많이 쓰지예. 하지만 살아서 천당을 만들지 못하면 죽어서 천당은 없답니다. 그저 오늘이, 여기가 천당이거니 하고 살아야 안 되겠능교. ....나는 진짜 행복합니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내가 그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기 또 감사하고, 내 자식 남의 자식칼 것 없이 내 곁에서 돌볼 수 있어 감사하고....그래서 노상 웃고 다니지예."

시험관에 실패하고 어쩌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참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이장집 부인이 한 이 말은 내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그녀의 말엔 지극한 고통을 넘어선 자의 달관과 깨달음이 있었다. 배부른 목사의 설교보다도 산중에 파 묻혀 도 닦은 고승의 말보다도 더 힘 있게 다가 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건 보지 못하고 없는 것에 아쉬워하고 목말라 하는 존재다. 그러다 가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인 위로를 느낀다. 그래 이만하면 나는 행복한거지..하면서.

마음이 힘들 때 가진 것 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애가 탈 때 나는 시골의사의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였지만 결코 상대적인 위로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니였다. 감히 나는 시골의사가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정이나 연민을 가질 수가 없다. 그건 너무 오만하고 건방진 일이 될 것 같다.

태연한 마음으론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울기도 가슴을 치기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책을 덮기도 하면서 나는 그들에게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삶에 감사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소설보다도 영화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무언의 설교와 같았다.

아직도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은 내 어깨를 짓누르는 화두다. 어찌 그것에 한 가지 답만 있을 수 있을 까만은 아무리 열악하고 극한의 조건 속에 처해있는 삶일지라도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결국 삶은 살아가는 각자의 몫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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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룬의 예술사이야기 1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이덕렬 옮김 / 들녘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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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반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펼쳐 들었다.
먹고살기도 힘든 요즘에 웬 예술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반룬은 이렇게 대답한다.

...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기를 원하는가?  간단하다.  우리와 합류하자고 여러분을 초청하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뜻하는 우리는 가끔씩 아침이나 저녁을 건너뛸 수는 있지만 음악과 미술이라는 별미가 어느 정도 마련되지 않는 인생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를 가리킨다......

내가 그 사람들 속에 속하는 사람들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가끔 씩이 아니라 수시로 아침저녁을 건너뛰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것이고 가끔씩 건너뛰어도 되는 사람들에게나 예술은 별미 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은 극도의 빈곤과  가난함속에서 작업을 했고 그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따지고 보면 예술이 별건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 흥얼흥얼  부르는 콧노래, 모래사장에서 만들어본 모래 쌓기, 심심해서 그려 본 그림, 사실 예술의 시작은 다 그런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시 옆길로 빠졌다.  아무튼  나는 어느 정도 별미가 필요한 적당히 배부른 사람에 속하는 모양이다.

이 책은 총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선사시대의 예술에서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인상주의 시대까지를 다루고 있다.  나온 지 오래된 책이라 현대는 빠져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전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반룬이 예술사의 전문가가 아니냐면 그건 아니다.  소위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마치 예술사 전반에 해박한 지식과 넓은 안목을 갖춘 사람과 마주앉아 그가 해주는 예술사의 재미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반룬은 건축, 회화, 조각, 음악을 넘나들며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한 예술이 발전한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시대와 국경을  넘어 물 흐르듯 흘러가며 피어나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예술의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과 생각 예술가나 작품에 대한 개인의 감상까지 곁들여 해주는 반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예술은 더 이상 어렵고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라 옆 동네 친근한 아저씨의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반룬은 진정한 예술이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활 속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의 어려운 해설서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낫고 그것 보다는 직접 그림을 그려보거나 작은 악기라고 다뤄보는 것이 음악이나 미술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예술사에 대한 첫 번째 책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예술 하면 화가들의 이름과 그림의 특징들을 줄줄이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바로크니 로코코니 고딕이니 하는 시대에 통달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허튼 생각에서 벗어나 편안한 시각으로 예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단계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건 예술을 접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일 것이다.

예술에 대한 나의 관심이 지적 허영이나 겉만 번드레한 아는 채에 그치지 않도록,  내가 관심 갖고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책으로 이 책은 상당히 고마운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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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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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면서 여러개인 것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애완견 한 마리가 주인의 손에 이끌려 지나간다.  나무위엔 새들이 분주하고 발밑엔 개미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우연히 모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다. 잠시 재미있는 생각을 해본다. 

개는 내가 이 세상을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세상을 이루는 색은 흑백으로 단조롭겠지만 갖가지 냄새와 소리들로 풍부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런 세상일게다.

새는 개가 느끼는 것과는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공기의 흐름으로 가득 찬 허공을 날아다니며 새들이 느끼는 세상은 나와도 다를 것이다.

개미는 아마 나란 존재를 의식하지도 못 할 것이다. 개미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많은 선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개미는 개와도 새와도 또 나와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 각 존재는 시간마저도 다르게 느낄 것이다. 하루가 24시간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인간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린 모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다.

그런데 우린 모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일까?

공간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에는 공간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사색을 볼 수 있는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도저히 그 끝에 이를 수 없는 통로를 갖고 있는 집 이야기,  앞문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집 이야기, 수많은 방과 거실, 욕실에 차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까지 들어있는 작은 차 이야기.

모두 현실의 공간에선 있을 수 없는 것들의 이야기이지만 누가 아는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르게 공간을 인식하는 어떤 세계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나의 현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수많은 현실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상상해본다면 그래서 여기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현실에서는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세상이 훨씬 신비롭고 비밀에 가득 찬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미하엘 엔데

미하엘 엔데는 참 대단한 상상력의 작가다.

그가 안내하는 세상은 언제나 신비롭고 이상하고 환상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러나 그가 안내하는 세상은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에 비친 이 세상의 모습처럼 환상이란 것으로 뒤틀려 있지만 결국 이 세상의 모습을 반영하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 세상의 다른 면을 이루고 있는, 누구든 보려고 마음을 열면 나타나는 그런 세상이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8편의 단편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공감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서는 머물 집을 못 찾고 그림 속에서 찾은 집을 현실의 다른 공간에 창조해버린 시릴의 이야기(긴 여행의 목표)에 매료되기도 하고, 그림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지하세계(미스라임의 동굴)를 상상하며 내 존재의 한계를 생각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선 돌아갈 고향이 없다고 느끼던 길잡이가 결국 기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찾은 길잡이 이야기(길잡이의 전설)에서는 묘한 아픔까지도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때론 분명한 이미지로 채워진 그림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이미지로 가득 찬 그림이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음악보다 알 수 없는 선율로 가득 찬 음악이 더 매혹적이기도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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