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 나무를 다루다, 사람을 다루다
신응수 지음, 서원 사진 / 열림원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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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어진 궁궐이나 한옥 절에서 만나는 건물들을 보면서 그 건물에 쓰인 나무들이 숲에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나무 한그루가 한 아름이 넘는 기둥으로 쓰였다면 산에서는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잘생긴 나무였을 것이다.

그것을 기둥으로 다듬은 목수를 떠올리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목수는 그저 건물 어딘가에 자신의 이름을 보이지 않게 새겨 놓았거나 그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수는 건물 하나를 지어 놓고 그 너머로 조용히 물러나 있다.  우린 누군지도 모를 수많은 목수의 숨결이 베어있는 건물을 때론 무심히 때론 감탄하면 바라 볼 뿐이다.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다. 나무를 다루기 전에 나무를 알아야 하는 사람이고 나무를 알기 전에 나무를 지극히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지극하고 극진한 마음으로 나무를 다뤄야 까다롭고 제각각인 나무를 그 성질과 특성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목수의 손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나무는 몇 백 년 때론 천년 이상을 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목수도 나무와 함께 천년을 산다.

신응수씨는 가난 때문에 16살에 처음 목수가 되어 50년 가까이 목수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목수라는 직업이 몸으로 하는 일이라 남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던 적이 많았고 지금도 일면 그런 면이 없자 않으니 그가 걸어온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가 세상에 내 놓은 목수라는 책은 그가 사랑한 우리나라의 나무들의 이야기이자 그가 걸어온 목수로써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평생 나무와 더불어 외길을 걸어왔으니 할말도 많고 쓸거리도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오래 묵은 술맛이 그렇듯이 대목장의 이야기는 조금도 수다스럽지 않고 깊고 짧고 은은하다.

나무는 내 살 중의 살이고 뼈 중의 뼈 라고 말하는 신응수씨는 헛되이 깎여나간 대팻밥이나 잘못 잘려나간 나무토막을 보면 자신의 살덩어리가 잘려나간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그런 마음으로 나무를 찾고 그렇게 찾은 나무로 그는 현재 우리나라 궁궐 대부분의 복원공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 고건축에는 우리 소나무가 가장 알맞다고 말하는 그는 복원에 필요한 소나무를 직접 찾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이상은 산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길도 없는 산속을 숱하게 헤매고 다닌 수십 년 그 인생의 고단함이야 말해 무엇 하리.

그가 말한다. 나무는 사람을 닮았다고. 그래서 나무를 다루는 일은 사람을 다루는 일과 같다고.

나무를 그 성질과 특성에 맞게 잘 다루는 일은 사람을 그 성격과 기질에 맞게 다루고 쓰는 것만큼 어렵고 정성이 많이 가는 일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그 가진 가치가 바로 발현되게 하는 일이란 지극히 어려운 법이다.

나무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결국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인가 보다.  나무 한 그루를 다루는 이야기가 내겐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의 이야기로 다가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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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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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감정을 쏟고 마음을 쏟을 대상 없이 사람은 과연 살 수 있을까?

결국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내게 남는 화두는 이것이었다.

사랑하는 로자 아주머니를 잃고 14살 소년 모모가 깨달은 것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 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자고.

아마도 그렇겠지. 사랑 없이 사는 삶은 이미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니겠지...라고 나도 생각해 본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창녀의 아들 모모는 14살 아랍인 소년이다.

지하실에 자신만의 피난처를 숨겨 두고 있는 로자 부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는 늙고 추한 유태인 여자다. 그녀는 창녀의 아이들을 거두어 기른다. 모모는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 중 하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에 사는 그들은 생의 희망이라곤 하나 없는 막다른 꼭대기에 몰려 있는 것 같다.

늙고 병든 로자는 이제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운명이다. 아이들은 하나 둘 떠나고 이제 그녀 곁에 남아 있는 건 모모뿐이다.

그들 앞의 생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공평하지도 않으며 영화 필름을 뒤로 감듯이 되감을 수도 없다.

점점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처럼 생은 누추하고 남루하며 고통스럽다. 너무 일찍 잔인한 삶 앞에 던져진 모모는 영악하고 어른스럽다.

모모의 사는 곳은 아랍인과 유대인 흑인들이 뒤섞여 사는 프랑스 빈민가 구역이다. 그 곳엔 세상의 온갖 소외받고 비천한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다.

엉덩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잡역부들, 마약과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 창녀의 아이들, 늙고 병들어 혼자 사는 노인들.

그러나 그 속에는 모모에게 세상의 지혜를 알려주는 하밀 할아버지가 있고, 친절한 의사 키츠선생이 있으며,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엉덩이로 벌어먹고 사는 여장 남자 롤라 아줌마도 있다.

그들은 모두 모모의 친구이자 모모가 어려울 때 자신의 일처럼 거들고 도와주는 마음 착한 이웃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사람들은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이라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태인인 로자 아주머니는 아랍인 소년 모모를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서로의 상처와 더러운 곳을 씻어주는 그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인종이나 종교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임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어둡지만 절망적이진 않은 그래서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

그래서 작가는 어른처럼 닳고 달은 모모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모모에게 아이다움을 빼앗지는 않는다.

우산친구를 안고 자고, 밤마다 암사가가 와서 얼굴을 핥아주는 꿈을 꾸고, 로자 아주머니를 잃고 혼자될까 두려워하는 모모는 사랑할 대상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애처로운 아이일 뿐이다.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를 보며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돌봐주는 모모는 사랑은 나이나 인종이나 죽음이 가져다주는 절망마저 넘어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보다도 숭고하고 아름답다.

어쩌면 작가가 보여 주고 싶었던 것도 그런 사랑이 아닌가 싶다.  로자 아주머니를 잃고 모모가 말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없다고. 

아니 작가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있냐고.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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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M.스캇 펙 지음, 신승철 외 옮김 / 열음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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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한편에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에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마는 답해주는 이들은 단지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만 있을 뿐인데 답을 구하는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는 대신에 손가락만 쳐다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는 묻는다.  달은 어디에 있느냐고.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삶의 지침서나 교훈적인 내용의 책, 성자나 현인들의 말씀을 실은 책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사랑의 의미,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 보다 행복해지는 법, 진정한 자아를 찾는 법, 고통을 이겨내는 법등, 질문은 끝도 없다.   그리고 찾는다.   무언가 자신들의 질문에 대답이 될만한 것들을.

교회를 가기도 하고 절에 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성자나 현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고 한다.  그 모든 것들 속에 자신들이 찾는 대답이 들어있는 것 같으면 사람들은 무언가 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무언가 찾은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여 기쁜 마음으로 현실의 삶속에 돌아온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모든 것은 다시 되풀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내가 달이 아닌 손가락 끝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이 내겐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감동이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했다.  아마도 이 책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작가의 삶의 이면이 궁금했던 것과 내안에 있는 교만함이 작용했던 것 같다.  자꾸 책의 한계가 느껴지니 말이다. 그 한계가 나 자신의 한계가 아니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적어도 몇 가지 면에서 나는 스캇팩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나는 사랑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스캇팩은 사랑을 '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 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 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인 성장은 스스로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저자는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전체적인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게으른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기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정신을 성숙시키기는커녕 타인의 정신적 성장까지 가로막는다. 그래서 게으름을 스캇팩은 죄라고까지 말한다.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고 참다운 사랑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훈련 - 저자는 이 훈련을 배움이라고도 바꿔 말한다.- 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어느 정도 동감한다. 사랑도 하나의 배움의 과정이다.   사랑이라는 것에서 잘못되고 거짓된 것을 구별하고 참되고 진실 된 것을 찾아내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움과 훈련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오로지 참다운 사랑만이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의 영혼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라는 질문에 그 해답을 신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권유도 과학적이냐 비과학적이냐를 떠나서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주제인 듯 하다.

저자는 개인의 정신적 성장은 결국은 신과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며 그 과정 속에서 신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저자의 종교적 신념으로 보고 넘어갈 수도 있겠고 자신의 문제로 가지고 들어와 한 번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쓸 때 저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미 저자의 마음속이나 생각 속에 나름의 종교적 신념과 믿음이 분명히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다행인건 저자의 종교적 신념이 상당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이어서 상당부분 종교적 편협함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볼 때 더 많은 비판을 받지 않을까 싶다.

정신분석의인 저자는 수많은 임상사례들을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뤄나가는지 혹은 실패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환자 한사람 한사람을 올바를 삶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개인의 정신적 성장을 돕는 것, 저자는 그것이 정신분석의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만한 정신분석의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 든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스캇 팩은 이 책에서 여러 가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보려고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찾으려 고 하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저자가 삶을 통해 실현하고 깨달은 깊이만큼의 진실이 찾으려 하는 사람에게는 전해질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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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누드
신현림 지음 / 열림원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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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산문집을 집어 들었다.  신현림이란 작가가 쓴 일종의 사진 에세이다.

이야기 하나에 사진 한 장이 곁들어져 있다. 사진도 보면서 그녀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책이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어 보았다.   

신현림이 이 책을 낸 지가 1999년이니 꽤 되었다. 절판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을 썼을 때 그녀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30대 후반이다.

그 때 그녀는 솔로였고 지금 나는 결혼한 여자이긴 하나 30대 후반의 여자가 느낄 만한 어떤 공통된 정서나 느낌이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책은 마치 또래 여자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지나온 이야기, 스쳐가는 생각들, 영화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 얘, 이 사진은 꼭 이런 느낌이 나지 않니?  혹은 이 사신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니? " 하며 이야기를 걸어오면 나는 " 그래 그런 것도 같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걸. " 하는 것 같은.

어떤 이야기는 시시하고 어떤 이야기는 뭉클하고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꾸밈이 없어 보였다. 대체로 쉽고 편안했다.

나는 사진에 대해선 잘 모른다. 유명한 사진작가도 잘 모르고 사진집 하나 가지고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는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가만히 살펴보았다. 물론 내가 그녀와 동일한 느낌이 들리는 만무하다. 별다른 느낌이 없는 사진도 많았지만 몇 개의 사진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순간을 포착하여 영원성을 부여하는 사진의 특성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참 매력적인 매체임에 분명하다.

 이 책에서 그녀는 참 많은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그것은 시가 되기도 하고 어떤 글의 일부분이 되기도 하고 금언이나 격언 같은 것이 되기도 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여러 문구를 자주 인용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누군가가 먼저 했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나는 그녀 자신이 한 이야기가 더 좋다. 같은 느낌이라도 같은 경험이라도 같은 생각이라도 사람이 다르면 다르게 나타나는 법이니까. 그녀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그러니 인용하는 것 말고 그녀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 삶의 깊이만큼 자연스레 독자들에게 전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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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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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책을 읽고 나서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냥 재미있었다고 말하자니 영 재미가 없다.

읽어보지 않고는 그 재미와 묘미를 알 수 없으니 나는 또 하나의 남모르는 보물 하나를 간직하게 되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마르셀 에메라는 프랑스 작가의 단편집이다. 모두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최근에 읽은 단편 중에서 어슐리 k 르귄의 바람의 열두방향은 SF성격이 강한 환타지 단편들이었다면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은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환상소설쯤으로 말할 수 있겠다.   그에 비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딱히 어떤 성격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섯 편의 단편이 모두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벽을 드나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루가루라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소재나 배경은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다. 별로 특색이랄 것도 없는 평범한 하급공무원인 주인공,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상사, 직장 동료들이 나오고 몽마르트가 배경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런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요소들은 주인공이 벽을 드나든다는 설정으로 인해 갑자기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변한다.   현실의 세계와 현실 같지 않은 세계를 너무나 태연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재치 넘치는 글을 읽다보면 첫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금세 마음을 빼앗긴다.

두번째 이야기 생존시간카드라는 글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다.   시간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은  이 글은 우리에게 과연 절대적인 시간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생존시간카드란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실업자 예술가와 작가 같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박탈하여 한달에 살 수 있는 날을 정해주는 카드를 말한다.   사람에 따라서 한달을 다 살수도 있고 20일만 살수도 있고  일주일만 살수도 있다. 한달을 다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머지 시간동안 일시적인 죽음에 들어간다.   많은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간카드를 사서 생존시간을 늘린다.   간마저 거래되고 배급되는 사회, 예술가나 작가가 비생산적인 부류로 들어가는 세계.

이 글 역시 작가의 재치와 상상력이 넘치는 뛰어난 수작이다.

세번째 이야기 속담은 자식 앞에서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보여주려는 한 가장의 이야기가 코믹하면서도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다. 무수한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정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웃으면서 읽다가 자못 슬퍼지는 이야기이다.

네번째 이야기 칠십 리 장화와 마지막 이야기 천국에 간 집달리는  이 책에서 가장 동화적인 요소가 강한 단편들이다.   칠십 리 장화는 가난한 어머니와 아들을 등장시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의 세계와 모자간의 애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매우 아름다운 글이다.

글의 마지막부분에 소년이 칠십 리 장화를 신고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가 아침 햇살을 모아 어머니의 잠든 머리맡에 올려놓는 부분을 읽다보면 소년이 꾸는 아름다운 상상에 가슴 뭉클해짐을 느낄 수 있다. 

천국에 간 집달리는 진정한 선행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다섯 편을 순식간에 읽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더 없나? 이다.    너무 짧고 너무 아쉽다.   더 많은 글이 실려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참 재미있다. 짧은 단편이 이렇게 재미있고 기발하고 독특할 수가 없다. 선종훈씨가 그린 삽화도 매우 훌륭하다.  글과 그림이 궁합이 잘 맞아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마르셀 에메의 다른 책이 있으면 찾아서 읽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아직 번역된 책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그의 다른 책들이 번역되어 출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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