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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감정을 쏟고 마음을 쏟을 대상 없이 사람은 과연 살 수 있을까?
결국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내게 남는 화두는 이것이었다.
사랑하는 로자 아주머니를 잃고 14살 소년 모모가 깨달은 것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 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자고.
아마도 그렇겠지. 사랑 없이 사는 삶은 이미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니겠지...라고 나도 생각해 본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창녀의 아들 모모는 14살 아랍인 소년이다.
지하실에 자신만의 피난처를 숨겨 두고 있는 로자 부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던 경험이 있는 늙고 추한 유태인 여자다. 그녀는 창녀의 아이들을 거두어 기른다. 모모는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 중 하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에 사는 그들은 생의 희망이라곤 하나 없는 막다른 꼭대기에 몰려 있는 것 같다.
늙고 병든 로자는 이제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운명이다. 아이들은 하나 둘 떠나고 이제 그녀 곁에 남아 있는 건 모모뿐이다.
그들 앞의 생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공평하지도 않으며 영화 필름을 뒤로 감듯이 되감을 수도 없다.
점점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처럼 생은 누추하고 남루하며 고통스럽다. 너무 일찍 잔인한 삶 앞에 던져진 모모는 영악하고 어른스럽다.
모모의 사는 곳은 아랍인과 유대인 흑인들이 뒤섞여 사는 프랑스 빈민가 구역이다. 그 곳엔 세상의 온갖 소외받고 비천한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다.
엉덩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잡역부들, 마약과 도둑질을 서슴지 않는 창녀의 아이들, 늙고 병들어 혼자 사는 노인들.
그러나 그 속에는 모모에게 세상의 지혜를 알려주는 하밀 할아버지가 있고, 친절한 의사 키츠선생이 있으며,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는 엉덩이로 벌어먹고 사는 여장 남자 롤라 아줌마도 있다.
그들은 모두 모모의 친구이자 모모가 어려울 때 자신의 일처럼 거들고 도와주는 마음 착한 이웃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사람들은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이라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태인인 로자 아주머니는 아랍인 소년 모모를 가장 아끼고 사랑한다. 서로의 상처와 더러운 곳을 씻어주는 그들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인종이나 종교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임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보여주면서도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어둡지만 절망적이진 않은 그래서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다.
그래서 작가는 어른처럼 닳고 달은 모모를 보여주면서도 결코 모모에게 아이다움을 빼앗지는 않는다.
우산친구를 안고 자고, 밤마다 암사가가 와서 얼굴을 핥아주는 꿈을 꾸고, 로자 아주머니를 잃고 혼자될까 두려워하는 모모는 사랑할 대상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애처로운 아이일 뿐이다.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를 보며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돌봐주는 모모는 사랑은 나이나 인종이나 죽음이 가져다주는 절망마저 넘어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보다도 숭고하고 아름답다.
어쩌면 작가가 보여 주고 싶었던 것도 그런 사랑이 아닌가 싶다. 로자 아주머니를 잃고 모모가 말한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없다고.
아니 작가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있냐고.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