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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선객 - 수행하는 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고 자신을 내던진 자, 혹은 참선하는 스님 - 그들을 뭐라 부르던 선객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깨달음을 얻어 견성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깨달음일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깨달음일까?
어쩌면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깨침의 순간을 위해 선객들은 토굴에 들기도 하고 선방에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지허스님이 동안거동안 선방에서의 일을 기록한 일기다. 솔직한 선방의 모습과 지허스님의 내적 고뇌와 번민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한다.
동안거(겨울철 수행기간)를 위해 오대한 상원사 선방에 모여든 수행자들은 16세의 소년에서 고희의 노인까지, 정식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에서 대학원을 나온 사람까지, 부자 집 자제에서 가난한 집 자제에 이르기까지 그 출신성분도 제각각이고 사연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모인 목적은 모두 같다.
바로 깨달음을 얻는 것.
안거가 시작되면 처음엔 모두 비장한 각오로 결가부좌를 틀고 면벽수행에 들어간다. 죽기 살기로 자신만의 화두와 씨름하며 수행에 임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옥석이 가려지듯이 수행자의 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몸을 뒤틀고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꿔보기를 수차례, 그러다 안 되면 선방에서 뒷방이라고 하는 곳으로 물러난다. 뒷방에 물러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선객은 정말 객이 되어 공밥을 축내다가 결국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된다.
혹은 몸에 병을 얻어서 혹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서 혹은 속 좁은 성정을 못 이기고 옆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맺다가 많은 선객들이 선방을 떠난다.
식탐을 이기지 못해 음식에 욕심을 부리다 탈이 나기도 하고 늦은 밤 곳간에서 몰래 감자를 가져다 구워먹기도 하고 뭇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수행을 하는 선객이라 해도 그들 역시 인간이긴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러하니 지극히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조건들을 무시하고 최소한의 의식주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 채 죽기 살기로 화두에 매달려 봐도 깨달음의 길은 멀고도 멀기만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힘든 수행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간다.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아 깨달음의 목적지까지 갈까?
상원사에서의 동안거를 끝내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선객들은 또 각자 자신의 길을 떠났다.
다시 다른 절의 선방을 찾아가는 이도 있겠고 이 산 저 산 떠도는 자도 있겠고 지허스님처럼 토굴을 찾아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책 읽는 내내 인간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모든 인연과 사적인 감정을 뒤로 하고 구도자의 삶을 사는 존재가 지구상에 인간 말고 또 있을까?
왜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뜻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의미의 세계를 찾아 떠날까?
그 길에서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을까?
그 깨달은 속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니 다만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알 수 있을까?
나는 모른다. 그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아는 건 내게 있어 깨달음이란 삶속에서 실현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는 것 뿐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부처님 말씀을 지허스님이 정리해서 한 말로 읽힌다.
이 세상이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 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지금 괴로워하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 가슴을 때린다.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 자리에 깨달음이 하나씩 놓여 있겠지. 그 길이 어찌 이리 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