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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나의 예수와 - “우리, 정말 예수로 살아 보자”
존 마크 코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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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란노 서포터즈로 받게 된 이번 달 '24시간 나의 예수와'는 책 초반 도제 개념이 튀어나온다.
'팬인가 제자인가' 서점에서 보았던 책 제목이 떠올랐다. 읽지는 않았지만 팬과 제자, 두 가지 개념이 나타내는 바가 명확하게 와닿았었다.
수동적인가 능동적인가, 응원하기만 하는가 뛰어드는가.
거리감이 있는가, 동행하는 관계인가
다양하게 비교해 보면 차이가 명확하다. '24시간 나의 예수와'에서 나온 '예수의 도제'란 말도 그렇게 와닿았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다.[18] 제자는 가족과 고향, 가업을 떠나 ‘일주일 내내, 24시간 내내’ 랍비를 따라다니게 된다. 당신이 받는 수업은 주중 오전에 시작해서 오후에 끝나지 않는다. 이 ‘수업’은 ‘삶 자체’다. 매일, 종일, 랍비와 함께해야 한다. 랍비의 옆에서 잠을 자고, 랍비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랍비의 발치에 앉아야 한다. 그리고 종일 랍비의 뒤를 따라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다 보면 랍비가 일으킨 먼지에 뒤덮이게 된다. 매일, 온종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생각과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실까?'
예수님의 도제라면 머릿속에 항상 품어야 할 1순위 질문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는 것은 뒤로 밀려나는 오늘날 같다.
세상이 보이는 유혹과 내가 가진 욕구가 만나 이 질문을 뒤로 할 때가 많다.
내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부분적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가 많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24시간'이 부담스러워진다. 진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
예수님은 사실 한 번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이 아니라 “누구든지 내 제자(도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이라고 말씀하셨다.
[출처 : 두플러스] 《24시간 나의 예수와》
성경에서 예수님은 명확하게 '제자'를 강조하셨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행동하셨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신약에서 2번 정도 나왔지만 제자란 말은 269번 나왔다는 저자의 글이 뼈를 때리는 느낌이다. 단순히 수치로 바라보아서가 아닌, 그 의미가 나에게 뼈를 때렸다. 제자의 정체성에 무심했다.
<24시간 나의 예수와> 두란노 신앙서적은 나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었다.
정확히는 경각심보다 하나님의 짝사랑을 깨닫게 만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9]
여기서 ‘거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메노”다. 이 단어는 ‘남다’나 ‘머물다’ 혹은 ‘거하다’, ‘집으로 삼다’로 번역할 수 있다.[10] 그렇다면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내가 너희를 내 집으로 삼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너희 집으로 삼으라.”
예수님은 이 짧은 비유에서 ‘메노’라는 단어를 한 번이 아닌 열 번이나 사용하신다. 성경을 찾아서 읽어 보라. 여기서 예수님은 한 가지 요점을 전달하고 계신다. “성령을 통해 나의 임재를 너희의 집으로 삼고서 그 집을 절대 떠나지 말라.”
[출처 : 두플러스] 《24시간 나의 예수와》
영혼의 집이신 주님을 멀리하고 탕자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힘들 때 제일 주님을 사랑하면서 별일 없을 때는 짝사랑으로 만들어버리는 걸 보면 참 내 중심적이다.
두란노 신앙 책, '24시간 나와 예수는'라는 성경 말씀의 원어를 파헤치며 의미의 깊이를 더한다
말씀의 언어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서 느껴지는 감탄이 있다.
'아, 이런 의미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언어적 배경, 문화와 함께 알아갈수록 마음속에 그려지는 길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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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설명하는 저자의 표현력도 마음에 들었다.
결국 내가 나아가야 할 제자도는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심으로 인지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한 명이 희생하는 관계에는 사랑과 성숙이 없다.
받는 사람은 어리광 부리는 어린아이 인격에서 멈춰버리겠지
하나님이 우리 삶에 어떤 순간에도 동행하고 계시다는 걸 잊지 않는 훈련, 습관이 필요하다.
그렇게, 무의식 깊은 순간까지 인지하면서 생기는 감사는 상황을 뛰어넘어 나를 성숙시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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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향해가는 이 땅에서 삶의 의미는?
챕터 2, '예수님처럼 되며'의 시작은 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베네딕토라는 도제의 이야기를 하며 훈련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 사회는 죽음을 무시하고 쾌락을 좇도록 유도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우려와 함께 진정한 믿음은 무엇인지 정리하는 '24시간 나의 예수와'를 읽으면서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믿음의 열매를 맺고 이 생을 마무리할까?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었다.
아직 30대지만 10.20대와 비교해도 30대에 내려놓게 되는 게 많다.
앞으로 40대. 50대에 더 많은 것을 내려놓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괜히 욕심부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각 나이대 마주하는 새로운 인생의 경험은 제자로 훈련되기 위한 신앙의 과제로 나에게 다가올 거다. 나이 들수록 자존심은 커지고, 결핍으로 인한 부정적인 마음들이 더 자주 튀어나오는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잘 승화할 수 있기를
항복선언
사람들이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데는 나름의 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모든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관문이 높다는 것.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언제나’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베드로는 어부라는 직업을 내려놓아야 했다. 당신의 경우에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출처 : 두플러스] 《24시간 나의 예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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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터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