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의 살아가는 이야기] 가난과 빈곤 지금 우리는 확실히 가난은 없고 빈곤만이 남아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난이 빈곤이고 빈곤이 가난이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쩐지 가난은 가난이고 빈곤은 빈곤인 것만 같다. 가난은 그래도 어느 정도 ‘숨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도대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가난은 가난해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인 것 같은. 내 기억 속의 60년대와 70년대는 가난했다. 가난했지만 나름대로 따스했다. 그것이 단순히 내 유년시절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 그때, 가난한 우리집 주위에는 우리집처럼 가난한 이웃들이 서로 인심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늘 배가 고팠지만, 외롭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은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들보다 확실히 외롭다.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들은 너와 내가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의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 가난한 사람들은 각자가 가난하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가난을 밑천 삼아 서로 의지하고 생계를 도모하고 살 수가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이 나라 개발과 발전의 역사란 바로 가난한 사람들 흩어놓기의 역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난한 사람들이 납작한 지붕 아래 좁은 골목 끼고 문 열어 놓고 살아도 좋았던 달동네들 파괴하기다. 하늘이 가까운 동네에서 꼼지락꼼지락 삶의 둥지를 틀던 사람들이 혼비백산 흩어졌다. 그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우리 모두 가난했던 곳에서 각자가 가난한 곳으로 흩어져 갔을 뿐이다. 뭐든지 많이 모여 있으면 눈에 띄게 마련이다. 가난도 뭉쳐 있으면 또렷해 보이리라. 가난 밀집지역을 흩어 놓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제 각각 어디론가로 각자의 가난을 짊어지고 울며불며 사라져 갔다. 그래서 가난은 일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난이 근본적으로 없어졌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밑천인 가난이라는 쪽박은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 쪽박조차도 없는 그 사람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예전에 시골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먹을 식량을 동냥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우리는 거지라고 하지 않고 동냥아치라고 했다. 우리가 동냥아치를 동냥아치라고 불렀을 때 동냥아치는 나름대로 동냥아치로서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동냥아치의 자존심은 그가 내미는 쪽박에 한집에서 동냥할 수 있는 정량 이상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동냥을 해서 먹고 살지만, 그가 정해놓은 쪽박을 넘는 동냥을 주는 것은 동냥아치의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었다. 동시에 동냥아치의 쪽박을 채워주지 않는 것은 동냥을 주는 사람, 바로 집주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내게로 동냥을 구하러 온 사람, 박으로 켠 하얀 종구랭이 쪽박 하나 채워주지 못할 만큼, 그 정도도 나누지 못할 만큼 내가 옹졸한 사람인가, 스스로 자책할 문제였다. 오늘, 한때는 하늘 가까운 데서 살았던 적이 있었을, 그런 동네 뭉개지지만 않았더라면 그도 삼양동, 미아동, 난곡의 좁은 골목에 사과괘짝 화분에 파, 시금치에 덤으로 채송화 꽃도 피울 수 있었을 한 사람을 본다. 그냥 그 동네 살게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했어도 그는 그가 다른 동네 살았으면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삼양동, 미아동, 난곡사람으로서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과괘짝에 심은 파, 시금치, 채송화의 행복, 부자들은 누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이니까, 하늘 가까운 산동네 사람이니까 누릴 수 있는 행복 말이다. 그러나 산동네라는 쪽박은 깨졌다. 가난해서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의 근거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산산이 부서졌다. 돈 많은 사람들이 정원에 값비싼 수목 심어놓고 행복해 하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과괘짝에 파, 시금치, 채송화 심어놓고 행복해 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을진대, 보호받는 것은 부자의 행복이다. 가난한 이의 행복은 보호받지 못한다. 보호받지 못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주장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 자존심 뭉개는 법 만드는 사람들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 편이 아니다. 어쩌면 사과괘짝에 채송화 봉숭화 꽃 피워 올리는 것으로도 최소한의 행복감을, 인간적 자존감을 누리며 살수도 있었을 한 사람이 지금 공원 벤취에 누워 있다. 그리고 그가 누워 있는 벤취를 보라. 나는 여기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가로쳐진 쇠팔걸이를 피해 뒤틀린 그의 허리께에 그것만은 부자에게나 빈자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쪼일, 해가 쏟아지고 있다. 옹졸을 넘어, 치졸을 넘어 가난한 사람 쫒아내기의 방법이 이제 ‘공원벤치에 쇠팔걸이 박기’로까지 나아가게 된 것인가, 나는 그저 참담할 뿐이다. 동냥아치에게 정량이상을 주는 것은 동냥아치를 무시하는 거였다. 그러나 동냥아치의 쪽박을 채워주지 못하는 건 바로 채워주지 못하는 나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저 뙤약볕 아래 고단한 몸 누인 그의 허리를 비틀리게 하는, ‘나’는 누구인가. 저 쇠팔걸이는 바로 가난한 저들을 부정하기만 하면 가난이 없어지리라고 믿는 모든 ‘나’들의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양심들이 아니겠는가. 노숙인의 의료구호비를 예고도 없이 끊어버리고 급기야 공원벤치에 노숙인이 눕지 못하도록 쇠팔걸이를 박는 야박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사회란 쪽박을 채워주지 않는 옹졸함을 넘어 쪽박을 깨는 폭력까지를 서슴치 않는 사회임에 분명하다. 나는 우리 사회 노숙인이 처한 현실이란 우리 사회 전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노숙인에게 공원벤치 하나도 내어주지 못하는 그렇게 옹졸한 사회인가. 우리 사회가 시청 앞 잔디광장 조성하는 데는 50억이 넘는 돈을 쓰면서 노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파도 병원에도 못가고 결국은 고단한 몸 누일 공원 의자 하나까지 박탈하는 치졸한 사회인가. 우리 사회의 옹졸성, 치졸성을 우리 사회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한, 최소한의 전사회적 자존심을 회복하지 않는 한,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가난할 수조차도 없이 삭막한 빈곤의 늪을 오래도록 헤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선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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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0-0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제나 이런 글 쓸까 몰라요

stonehead 2005-10-0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겸손이 지나치면 교만이 된다지요.ㅋㅋㅋ

진주 2005-11-0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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