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노엄 촘스키가 <어떻게 살만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일관되게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은 아니다.
폴리크로니우가 묻고 노엄 촘스키, 로버트 폴린이 대답하는 대담을 묶어 놓은 책이라 해야겠다.
이런 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가지고 씌여진 책에 비해 스스로 읽은 내용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고, 앞뒤 내용의 연관성을 살펴가며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엄 촘스키와 로버트 폴린의 생각을 구체화시키기에는 나 같은 사람에겐 조금 어렵다.
그래도 노엄 촘스키라는 대학자의 책을 처음으로 읽어본다는 데 의의와 목적을 가지고 따라가본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기후 위기에 대한 것과 다른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먼저 기후 위기에 대한 촘스키와 폴린의 생각을 들어본다.
일단 결론적으로 보면 기후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선 대단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보인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인데...
하긴 요즘 쿠팡플레이를 통해 보고 있는 시리즈물에서 들었던 것 같은 대사, "희망이 없다면 무엇때문에 살아갈까"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대충 이렇다는 게다... ^^) 라는 말처럼 비관적이기만 하면 그냥 두 손 놓고 처분만 기다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 긍정성과 낙관적 사고는 바람직하긴 할게다.
다만 걸림돌에 대한 언급을 보면 기존의 화석 연료 재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위기 상황에 대해 눈을 돌리고, 로비 활동을 통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에 대해 극렬한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입법화하려고 했던 정책이 상당 부분 삭제되고 수정된 상태로 바뀐 것, 추가적인 화석 연료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의 후퇴, 트럼프 행정부에서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후퇴 등은 이런 정치적 활동에 의해 기후 위기가 심화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언급한다.
친환경 발전 등의 도입과 추진에 있어 서민층, 하류층의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기 위한 다른 제안도 제시하고 있지만 획기적이라기 보다는 잘알려진 부분이기도 하려니와 대안의 실행이 지극히 부정적인 상황에서 메아리없는 아우성이라는 기분이 든다.
결국 실행력없는 학자적 외침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다시 한번 알게된다고 할까...
또 다른 주제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이들의 대화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듣게 되어 좀 신선했다고 할 수 있겠다.
촘스키의 생각에선 이 전쟁은 미국이 러시아의 약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도발하고 유도했다는 쪽인 듯 싶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끝내려는 시도와 의견에 대해 강하게 반대함으로서 지속적으로 이 상황을 끌고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미국은 지속적인 전쟁 상황을 유지함으로서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피폐해지고 전쟁 물자를 소모하게끔 유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 지금의 미국은 우선적으로 견제하고자 하는 대상이 중국아닐까?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군사 협력체 (NATO)를 유럽에서 확대해 아시아에 까지 이르게 하고 있기도 하고...
중국을 기술적, 경제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중국의 협력자들까지도 억압하고 강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음모론...
도대체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전쟁을 획책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 제동과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촘스키가 말하는 것처럼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책동했다고 할 때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무척 궁금해졌다는 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상 유일의 절대적 국가로 계속 존립하게 만들겠다는 정말 국가 지상주의에 미쳐있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 것일까?
누가 선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방산 기업, 석탄/석유 재벌, 금융 재벌 뭐 이런 사람들일까?
누구 말따나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장의 머릿 속에서 나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말일까?
어떻게 살만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
'절망을 넘어선 낙관'을 말하고 있는 노엄 촘스키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은...
인류 스스로가 스스로를 멸종시킬 수 있는 핵이라는 것을 만들어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는 것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전보다 더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개발이라는 명목하게 수많은 열대 우림들을 비롯한 자연을 파괴하여 기후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지만...
자신만의, 자기들의 조직만의, 자기들의 국가만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나 아닌 사람들을 책동하고 선동하여 암울한 상황을 초래했지만...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지금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긍정의 생각에 공감하지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방법, 제안, 대안, 계획이 이렇게 앞에 놓여있는 데 우리는 왜 각자가 다른 시각과 다른 생각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누구에게는 뻔한, 뻔해보이는 듯한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하지 말아야할 그것이 되는 것인지...
바벨탑의 붕괴는 사람들의 말 뿐만 아니라 생각도 그렇게 흐트려놓았는 지도 모르겠다.
신은 진정 이런 선택의 갈림길의 태동부터 자유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고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
피조물들의 일치단결은 결단코 볼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신을 말하는 것은 좀 오버한 것일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