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들의 은밀한 이야기


 제시 버튼의 데뷔작인 <미니어처리스트>는 17세기의 암스테르담을 눈에 그려질 듯 그려냈고, 배경 만큼이나 인물 또한 특색이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제법 도톰한 책이었음에도 이야기가 끝이나는 것이 아쉬워 페이지를 일부러 천천히 넘기곤 했다. <미니어처리스트>가 배경과 인물들 모두를 초점으로 둔 반면, 그녀의 두번 째 작품인 <뮤즈>는 시대적 상황 보다는 인물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1967년 6월과 1936년 1월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을 교차하며 각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시대와 상관없이 흐르는 듯 보였으나 점차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 나가며 교집합을 이루어가는 것이 특징인 소설이다.

1967년 6월 현재의 시점에 등장하는 인물은 오델이다. 그녀는 신발 판매원으로 근무하다가 영국 스켈턴 미술관에 타이피스트로 직장을 얻게 되고, 함께 살았던 친구의 결혼으로 인해 집에 홀로 남게되고, 축하 자리에 온 낯선 남자 로리를 만나게 된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며 쓴 시를 오델이 읊게 되고, 우연히 들은 로리는 그 시를 쓴 오델에게 관심을 갖고 그녀에게 다가선다.


1936년 에스파냐 안달루시아에서 부유한 저택의 외동딸인 올리브는 자신의 식구들 몰래 그림을 그린다. 그녀 곁에 친구처럼 다가서는 테레사가 마음에 든 올리브는 은밀하게 자신의 그림을 테레사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 사이 그녀의 어머니 세라는 이삭 노블레스에게 자신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다. 세라와 함께 모델을 서는 올리브는 이삭을 마음에 품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된 올리브는 그 모든 마음이 영감이 되어 풍부한 색채의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이삭이 완성되었다며 가져온 그림은 올리브가 그림이었다. 당시, 여자들은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렸다 할지라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회였고, 미술학교의 통지서를 받았음에도 숨어서 그렸던 올리브의 재능에 탐이난 한 소녀의 실수 아닌 실수로 이야기는 점점 꼬이게 된다.


오델은 로리와 데이트를 하게 되지만 자신에게 성큼 다가서는 그에게 벽을 치게 된다. 그러던 중 그에게 유일하게 남겨주신 어머니의 유품인 그림을 오델이 근무한 스켈턴 미술관에 의뢰하게 되고,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오델의 상사인 퀵은 로리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녀가 쓰는 글에 대해서 누구보다 응원해주며 도와주는 퀵의 손길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비밀을 안고 사는 그녀의 모습에 오델은 로리와 퀵 사이를 오가며 갈등한다. 화가 이삭 노블레스의 삶에 대해 현재와 과거에 밝혀지게 되고, 그림은 그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하여 그린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하며 전문가들이 나눈 이야기를 이야기를 우연찮게 오델은 엿듣게 된다.


올리브와 이삭, 이삭과 세라, 올리브와 테레사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자신의 욕망과 예술에 대한 질투, 혹은 성공이라는 목표아래 그녀의 아버지 해럴드는 페기 구겐하임에게 '밀밭의 소녀들'을 팔게되고, 유명한 컬렉터인 그녀는 해럴드를 통해 이삭에게 또다른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던 중 전쟁이 터지게 되고, 그들의 상황은 또 한번 반전이 일어난다. '뮤즈'라고 통칭되는 오델과 올리브는 닮은 듯 다른 시대의 사랑과 예술을 통해 펜으로, 붓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벽을 치고 살지만 퀵의 당부에도 로리와 밤을 보내게 되고, 우연히 로리의 집을 구경하게 된다. 그림과 그림사이에 어긋난 시간들을 돌이키듯 그녀가 발견한 팜플렛은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힌트가 되어 이야기가 조합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델과 올리브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녀들의 앞 길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퀵'와 '테레사'는 그들의 재능을 더 깊이 끌어올린 것과 동시에 나락으로 빠트렸던 인물이라 주인공들 보다 더 눈에 띈다. 책을 읽는 내내 자신 보다 더 재능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사랑한 여자 올리브를 이삭은 사랑했을까? 어쩐지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혁명이라는 목표아래 여자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마음은 함께 하지 않았나 싶다.

부유한 조건에 엄청난 재능을 겸비한 해럴드와 세라의 딸 올리브가 오델이 살고 있는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30년 후에 재능이 있음에도 가난했던 오델과 비교가 되기도 했다. 각 시대가 갖는 어려움 그래서 머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각각의 퍼즐 조각을 통해 그려냈다. 비로소 각 조각들을 맞추어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영감의 원천인 그들이 더 이상 사그러지지 않고, 우리들 앞에 드러냈으면 좋겠다. 많은 예술의 대표주자들이 남자가 아닌 여자들이 평등하게 채워지기를.


---



날마다 좋아하는 사람,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이 제일 나은 사람이라 여기게 된다.  - p.59


이삭이 올리브의 손에 장작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올리브는 그의 손끝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 올리브도 그를 만난 뒤로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캔버스에 그리고, 공책에도 스케치를 빼곡하게 채웠다. 올리브는 자신의 내면과 연결된 기분이 들었지만,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단지 이 길고 긴 영감이 끝날까 두려우면서도 이삭이 곁에 있는 한 창작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16


이삭은 이따금 유명한 화가를 보통의 다른 화가보다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참신함이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들의 그림이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다른 점이라면서 '훌륭한 제도사는 될 수 있지만, 세상을 다르게 보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라고 말했다. 테레사는 온몸을 스치는 고통의 파도를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참신함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힘이었다. 테레사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이 소녀가 축복받은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 p.132


"모든 건 무너져요. 조금씩 별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죠. 그러다 알게 돼요. 발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다리가 부러졌다는걸. 그런데 그건 내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던 일이에요, 오델. 타인의 마음 속에서, 혹은 당신이 만나지 못할 신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거죠. 그러다 어느 날, 돌 하나를 던지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돌이 힘 있는 얼간이의 차 창문에 맞아요. (생략) -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