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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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이야기하는 소설가의 글모음.


<국가의 사생활> (2009,민음사)과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2013,시공사)를 통해 이응준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만나봤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탐독하지는 못했다. 알고는 있지만 깊이 들여다 보지 않는 작가였고, 기존의 산문집과는 다른 부피의 산문집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도톰함을 넘어서 두툼한 그의 글은 그의 이름 뒤에 따르는 직업란 만큼이나 다양하다. 시인, 소설가, 칼럼리스트, 각본가, 영화감독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의 다재다능함은 글 속에서도 비춰지고 있다. 무엇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일기인듯 일기가 아닌 것 같은 글 모음과 마치 누군가와 링 위에서 싸우는 것처럼 표효하며 달려들듯 거침없이 내뱉는다.

독자가 알지 못하는 문학판의 뒷 세계에서 벌어지는 조악한 판세는 그를 더 화나게 하고,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는 권력 앞에서 누구도 부당함을 말하지 않는 그 세계를 그를 과감없이 성토한다. 날것의 이야기가 가득하다보니 초반의 글들에서 비춰지는 것은 분노였고, 그것을 말함으로서 스스로 '아웃사이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느낌표가 가득한 글들이 계속해서 보여주다 보니 그가 세상에 내비친 글에는 화르륵 불길이 와닿는 것 같다. 강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글들이 세상을 향한 어퍼컷이요, 당당하게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 글을 쓰는 소설가의 눈이자 귀, 입이기에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카타르시스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다.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작품을 읽다가 산문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시인의 시가 너무 어려울 때다. 도무지 그가 쓴 시집으로는 그를 이해 할 수 없을 때 ,시를 더 잘 읽고픈 마음에 산문을 집어든다. 시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편린들, 일상생활의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서 시인의 산문집을 즐겨 읽는다. 두번째의 경우는 소설가의 작품이 좋아 인물을 통해서 보여지는 작가의 보자기 쓴 얼굴이 아니라 진짜 모습이 보고 싶어 일부러 산문집을 찾아 읽는다. 작품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작품에서 보여지지 않는 작가의 개인적인 면이 부각되기에 소설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 역시 문학, 사회적인 이야기, 인간의 면면들, 그가 쓴 작품들의 이해와 인터뷰글들, 연재된 칼럼들이 묶어져 있다. 이 한 권의 산문집 만으로 그가 평소 사회를, 문학을,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이응준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없이 좋을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보통은 한 권으로 묶어 내기 보다는 각각의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내기 마련인데 그의 글은 마치 자서전 혹은 평전처럼 묶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산문집과 달라 처음에는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작품이 아닌 진짜 이응준이라는 사람을 내밀하게 알 수 있는 책이어서 더 좋았다. 많은 글들이 사회에서 문학판에서, 많은 인간들의 세계에서 염증을 느끼며 싸우자는 태도로 그를 강한 색채를 드러내며 말하고 있지만 시인 함성호에게는 둘도없는 좋은 친구이자 좋은 형 혹은 좋은 선배로서의 애정이 엿보인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묶어져 있어서 거침없이 그의 세계를 탐구하고, 유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산문​집이었다. 분량면에서도 가히 누구와도 견줄 수 없기에 소설가의 산문집 하면 그의 책이 단번에 떠오를 것 같다.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는 그의 다음 작품이 너무나 궁금하다. 앞으로 그의 글 속에 무엇이 담겨져 책으로 출판될지 기대를 하며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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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빛나지 않는다. 영생을 누리는 그리스의 신들이 나약한 인간을 질투하는 것은 인간에게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소멸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마네킹에 불과하고 그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지루함뿐일 것이다. 죽음은 삶을 값어치 있게 하고 절망 앞에서 희망을 각오하게 한다. 몽테뉴는 <<수상록>>에 썼다. "죽음의 예측이란 자유의 예측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는다. 죽음을 깨닫는 것은 모든 예속과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 p.67~68


진정한 책 읽기란 그 책을 읽고 지성으로든 감성으로든 그 무엇으로든 스스로를 혁명하는 것까지를 뜻한다. 그렇지 않아면 독서조차 노예의 길이다. 때늦은 태풍이 온다고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혁명가인 것이다.-p.139


문학은 과학까지 포함한 모든 학문들에 근본적인 통찰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정치학자이지만 실은 서양고전과 비교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이런 점을 시사해준다. 반면 토마 피케티는 마르크스가 아닌데도 마르크스인 척하고 제러미 리프킨은 마르크스인데도 마르크가 아닌 척한다. 그들은 스스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들에게 대중이 속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전부 마이클 샌델류의 '착한 개소리 상업주의' 안으로 고스란히 수렴된다. - p.185~186 


작가가 냉정해야 하는 것처럼, 그를 사랑하고 격려하는 독자들 역시 냉정해야 한다. 한 작가의 진정한 매니아란, 그의 작품들이 변화하는 궤적을 함께 따라가며 각자의 미적 감각과 기성의 가치관, 그리고 삶의 외양과 본질을 자체적으로 성찰해 나가는 지혜로운 이들을 뜻한다. 그들은 한 명의 작가로부터 도서관을 통째로 끄집어내려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 p.224~225


정말 훌륭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그는 필사 대신에, 좋은 소설들을 읽음과 동시에 수천 편의 시를 암송하고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섭렵하는 편이 훨씬 유익하고 지혜롭다. 그리고 문학의 골수가 아닌 활자 따위 베끼며 끙끙대신 시간에, 차라리 이런저런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삶의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 p.228~229


아무튼, 일급 시인 유하의 지적처럼, "시의 감식안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쓰기도 어렵지만 읽는 것도 만만한 예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의 눈은 아흔아홉 번 얻었다가도 백 번 실명하기가 십상이다. 아직 미학적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멍청한 소리를 시에 대해 늘어 놓기도 하는 까닭이 그래서이다. 너무 지나친 단순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에 관한 치밀하고 세련된 안목이 있으면 그것은 문학과 철학 전반에 대한 안목이 있는 것이요, 종국엔 예술 전체에 관한 소양을 내재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예민하게 간직하고 있는 작가는, 누구보다 빨리 자기 예술의 지성과 감각의 몸 상태를 체크하여 큰 병이 나기 전에 치유할 수 있다. - p.238


"너무 같은 방법으로 일하는 예술가와 대가 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지 않으면서 예술가이기를 포기했다. 나쁜 걸 만들었다고 예술가이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모험을 무서워하는 순간에 예술가이기를 포기한 것이다"라고 일갈한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바다에서 돌아와 패전 독일의 폐허 위에서 글을 썼던 하인리히 뵐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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