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서늘하면서도 날카로운 잔혹동화의 색다른 변주.


 ​지금은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파란색, 분홍색을 편견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아이의 성별에 따라 많이 구분을 했던 것 같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로봇이나 딱지, 장난감총을 갖고 놀았다면 여자아이들은 종이인형이나 마루인형을 갖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동화책을 보더라도 수 많은 공주들을 다 소환 할 만큼 유년시절에 많은 공주들을 만나봤는데 하나같이 이야기의 말미에는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난다. 아이였을 때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으나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정말 공주가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삶을 살다보면 어느 시점에 굴곡이 있고, 그 역경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삶이 탄탄해 진다고 하는데 더욱이 몇 십년간 다른 환경에 살았던 공주와 왕자가 진짜 이야기에서 말 한 것처럼 '행복'하게 살았을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즉,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 한다는 것은 동화에서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쓰이는 마침표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결혼을 끝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의 결말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동화의 행복한 엔딩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결말은 아니라고 핀란드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인 살라 시무카는 작품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이며, 때를 만나 무대 위에서 활개 치며 안달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잊히는 가련한 배우다. 백치들이 되뇌는 무의미한 광란의 소리일 뿐." 아무리 강하고 악랄하고 교활해도 천하무적이 될 수 없지. 그들은 곧 깨닫게 될 거야. 삶과 죽음의 법칙이란 사실 아주 잔인한 스승이지. - p.65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부작인 이 책은 <피처럼 붉다> <눈처럼 희다>에 이어 마지막 3부작의 대단원인 <흑단처럼 검다>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처음은 생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살짝 열어두고, 중간부터 그 재미를 붙여가는데 스토우화이트 트릴로지 3부작은 시리즈의 앞 권인 <피처럼 붉다> <눈처럼 희다>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나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시작되는 단초들을 단단하게 묶어내어 마지막 퍼즐을 세련되면서도 소녀 루미카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왜 루미카가 가장 가까운 가족임에도 역할극에 충실하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속내를 털어내지 못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눈처럼 희다>에서도 체코로 여행을 간 그녀가 자신의 이복 언니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검은 손길을 뻗치는 것 또한 가볍게 이겨내기 못하고 사건에 말려든 것 또한 의심스럽게 생각했으나 <흑단처럼 검다>를 읽고 나니 비로소 전작의 이야기들이 모두 이해가 된다. 


"공포는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야." 헨리크 비르타 선생이 말을 이었다. "가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 들곤 해. 어쩌면 용기라는 건 세상에 없는 건지도 몰라. 오로지 공포만이 존재할 뿐." "어째서죠?" 팅카가 손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용기가 공포를 이긴다는 얘기들을 하잖아. 하지만 난 공포가 우리가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끔 이끌어낸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공포 그 자체가 용기일 수 밖에." - p.95


몇 년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가 진짜 동화가 아니다, 하여 읽은 책이 '잔혹동화'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추악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져 있었다. 두께가 제법 나가는 책을 접하긴 했지만 여전히 동화의 실상이 사실은 빛보다 어두운 그늘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에 실망은 하지 않았다. 동화의 실사판 보다는 또다른 이야기로 읽혔고, 우리가 알고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이야기가 여러갈래로 변주되어 살라 시무카의 서늘하면서도 날카로운 이야기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변주된 작품을 좋아한다. 재밌게 읽었던 작품은 시공간을 떠나 언제 읽어도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듯이 현재의 시점에서 잔혹동화처럼 그려지는 루미키의 일상과 사회의 잔악함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재밌게 읽힌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다 보니 추운 나라에 대한 갈망은 없지만 북유럽 특유의 살풍경한 풍경이 눈앞에 그려질 듯 잘 그려지고 있다. 루미키의 불안과 루미키가 늘 인지하고 있는 그녀의 언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블레이즈와 삼프사와의 관계 또한 마음을 어지럽혔지만 관계를 끊어냄으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살라 시무카의 <흑단처럼 검다>는 최근에 다시 읽었던 <달빛 코끼리 끌어안기>(2016, 알에이치코리아)와는 작품과도 이야기의 핵심이 많이 닮아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의 전개 때문에 더 마음에 와 닿았던 3부작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흑단처럼 검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게 떨어져 그 어떤 시리즈의 책 보다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던 작품이다. 처음에는 스타일리쉬한 표지에 혹하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훨씬 더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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