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시간들 - 스물일곱 뉴요커 루시의 그림 여행 일기
루시 나이즐리 지음, 김보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스물일곱 아가씨가 그려낸 민낯의 여행기.

 

 언제부턴가 나의 일상과 기분을 드러내는 글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이전에는 곧잘 일기도 자주 쓰고 틈틈이 개인적인 일상의 글도 올렸지만 요즘에는 그런 글을 자제하게 되는 것 같다. 한동안 썼던 일기도 주기가 되고 달기가 되어 드문드문 글을 썼지만 그것 마저도 요즘은 다이어리에 간단하게 행선지만 기록해 주곤 한다. 나와 달리 일러스트레이터인 루시 나이즐리는 3주간 여행을 했던 시간동안 담은 그녀의 그림 여행 일기는 그야말로 그녀의 공적인 생활과 개인적인 면모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그 어떤 시간 속에서 그녀와 관계되는 모든 것들을 까발려 그녀의 생각과 사랑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까지도 담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장점과 만화가로서의 그녀가 고민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

 

제가 일기를 좋아하는 큰 이유는 계획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이죠. 일기를 쓰면 긴장과 어색함 없이 삶의 혼란스러운 부분도 작품에 녹여낼 수 있습니다. 저는 3년동안 대본을 짜서 그래픽노블을 그렸는데 아주 힘들었어요. 하지만 경험을 기록하니까 영감이 마구 떠오르더라고요. 거칠긴 했지만 어려움 없이 줄줄 페이지를 채워갈 수 있었지요. - p.57

 


 

일기란 무릇 나 혼자만의 기록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몇 년전에 한 작가가 쓴 일기를 그대로 출판되는 것을 보며 '일기'가 혼자만의 기록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만의 일기를 공유하는 일기라니! 아마도 그 후부터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뉴요커인 루시 나이즐리는 현재 자신이 체험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담다 보니 읽는 이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그녀의 사생활을 다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와 관계된 친구들, 전 애인과의 관계, 현재 애인과의 이야기를 비롯해 그들이 나누고 생각한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 뉴욕에 사는 스물 일곱살 아가씨의 삶은 이렇구나, 라는 생각마저 드는 책이다.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3주간의 여행기를 통해 너무 적확하게 나타내주고 있어서 마치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녀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 어른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깨닫게 해주고 있는 반면 어떤점에 있어서는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살다보니 남녀가 만나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갖고 있는 가치관 보다 조금 더 포용력 있게 사람을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짤막한 묘사뿐이다. 나는 여행기 쓰는 법에 대해 강연을 하려고 여행을 왔는데 이제 와서 내 여행기를 쓰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갑자기 깨닫다니 우스웠다. 때로는 가장 부지런하고 이성적인 작가도 일직선적으로 사건을 기록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은 정확히 포착하기 힘든 순간순간이 된다. - p.68

 

이십대 초반만 해도 남녀간의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면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벽들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것이 맞고 틀리냐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있어서 모두 같은 수순을 밟을 수도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틀리다 할지라도 서로의 개성을 인정하고 '다르다'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일정으로 랩터스 만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노르웨이 베르겐을 출발하여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새로운 남자친구 헨리크를 만나고 독일 베를린에서 신혼여행 중인 친구 데이비드와 조디를 조우한다. 프랑스에 와서는 파리에서 차를 렌트하고 본으로 운전해 가서 친구 제인을 만나고 로얀으로 가서 친구들과 지내는 엄마를 만나 후에 파리에서 하루 이틀을 지낸 후에 아이슬란드에서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 레이캬비크에서 갈아타는 것으로 3주간의 여행을 마치는 것으로 그녀는 그렇게 여행 계획을 잡았다.

 

 

그녀가 2011년의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경험한 것들을 만화를 통해 풀어놓은 그녀의 일기는 그녀와 관계된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녀과 관계되지 않는 제 3자의 독자입장에서는 그녀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솔직한 속내를 풀어놓는 것도 '하나의 용기'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루시 나이즐리의 삶이 친근하면서도 나 또한 그런 경계없는 삶을 살아가고픈 마음이 들었던 책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지. "우리가 듣는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라 의견이며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라 관점이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