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음,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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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타는 삶 


 한동안 일상이 바쁘다 보니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과 함께 쓰는 시간이 확 줄어버렸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 된 것인지 한동안 책을 읽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 되면서 금단증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집에만 오면 힘들어서 풀썩 쓰러져 자기 바빴으니 몸도 마음도 체력도 고갈되었다. 그러다 다시 만난 한가한 나날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들이다 보니 이제는 널널한 시간이 쥐어졌음에도 책이 잘 읽히지 않았다. 생각한 만큼 책을 읽지 못했고, 휭하며 속도를 내던 차가 엉금엉금 기어갈 정도로 속도를 내며 달리는 것처럼 천천히 글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뺏긴 책이 선현경 동화작가의 글과 이우일 만화가의 그림이 더해진 <하와이하다>였다.


평소에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일상이 빡빡해지니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싶었다. 시원한 바다내음도 맡고 싶고, 맛있는 회도 먹고 싶다.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하와이하다>를 읽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가고 싶었던 곳을 눈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시원한 바다내음이 물씬 느껴지고, 파도를 타 보는 생경한 느낌을 갖게 해 준 책이다. 부부의 토닥임도 재밌고, 중간중간 멀리 보내논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찡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그들의 활기찬 생활의 소소함이 더해져 물빛 만큼이나 반짝거렸다.


 

 

 

파도를 타려면 좋은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긴 기다림이야 말로 좋은 파도를 탈 수 있는 적격의 기회라고 하니 무엇하나 쉬운게 없나보다. 미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쉼없이 파도를 탄다. 부부가 햇볕에 그을리는지도 모르고 파도를 타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즐겁게 느껴진다. 파도에 대한 끊없는 열망은 아내보다 남편이 더하다. 컬렉터의 면모를 더하는 것도 남편이다. 다양한 것을 배우고 풀어내는 것이 아내는 선현경 작가라면 이우일 만화가는 애정하는 것에 있어서라면 더 깊이를 더하는 이다. 그래서 아내로 하여금 인내심을 끌어 모으게 하기도 하지만 오랜시간 함께한 이라 그런지 그의 집착같은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스르르 놓으며 그를 이해한다. 수십년간 함께 살았다 하여 모든 것이 맞지 않기에. 그렇게 토닥이고 싸웠다가도 다시 안쓰러워하며 이해하는 모습이란.


처음 만화가 이우일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은 김영하 작가의 <오빠가 돌아왔다> (창비,2004)부터 였다. 제목도 눈에 띄었지만 표지 그림도 만만치 않았기에 눈길을 사로 잡았는데 후에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마음산책, 2003)로 도장을 꾹 찍었다. 김영하 작가의 맛깔난 글 만큼이나 그림 또한 좋았기에 그의 이름이 찍힌 책이라면 즐겁게 선택해서 보게 되었다.


소소한 삶의 테두리 속에서, 하와이의 기상천외한 모습, 풍경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요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계속해서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파란 하늘,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을 빼앗겨 버렸다. 당연하게 언제까지나 우리가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상이 없어지고, 여행 조차도 쉬이 나설 수 없는 시간들이 더해지다 보니 <하와이 하다>속 일상들이 마냥 부러워진다. 더불어 그 일상을 즐기며 읽어나간 책 속의 명언, 생활 속의 글귀가 마음에 콕하고 박혔다. 더불어 읽었다 덮어 두었던 책들도 책장에서 꺼내왔다. 20년차 부부의 하와이안 라이프를 활기찬 모습으로 즐기는 것처럼 나 또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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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힘들고 귀찮지. 근데 왜 살아? 그려려고 사는 거지."

(생략) 얼마 전 우울한 어느 목요일에 요가 수업을 했는데, 수업 후 수다를 떨다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치료받은 느낌이었다. 엄마 말대로다. 이러려고 사는 거다. 마음을 다해 시간을 할애할 누군가가 있기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거다. -p.52~53 


노래 몇 곡으로 오랬동안 꺼져 있던 마음 한쪽 깊은 방의 스위치가 커졌다.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어지러웠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 나도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내 작은 방의 스위치를 켜고 보니 그의 수집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우일도 내가 모르는 그만의 어릴 적이 그리워 옛 음반을 들이고 장난감을 사는 걸까? 짐이 또 이렇게 늘기만 한다며 구박했는데 문득 그가 이해되었다. 따져보니 가장 좋아했던 점을 살면서 가장 큰 결점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결점이 내가 그를 사랑항 이유였는데 말이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있거든." 김애란 단편소설 <가리는 손>을 읽으며 적어둔 말이다. 부부관계란 품이 드는 일이다. 그동안 피곤해서 집어던져버린 이해를 이제야 다시 집어 들고 있다. - p.60~61


"경계에 있을 때는 두렵다. 모호하고 불안하다. 이불안과 모호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받아들여라. 너를 가두고 있는 '우리'에서 탈출해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 우리는 널 가두는 우리다." - p.66


"모든 변화에 기쁘게 반응하세요. 결국엔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에서 나온 대사가 생각난다. - p.94


"우리는 때때로길을 잃어야 한다. 세계를 일어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에 나온 말이다. - p.100


영화 <마지막 사중주 A Late Quartet>에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제2바이올린만 고집하는 필리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한 여인이 이야기 한다. "가장 좋은 때란 없어요. 그 말은 언제나 가장 좋은 때란 걸 말하죠." 어쩌면 매일매일이 그 기회, 그때일지도 모른다. 우린 요즘 밥을 먹으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컴퓨터 앞에 앉아 넷플릭스 Netflix 영화를 고를 때에도 보디보드에 관해 이야기한다. 알면 알수록 큰 파도를 타는 일은 무섭고 어려워 보인다. 일단은 퀸스 해변에서나 잘하자.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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