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지도
앤드루 더그라프.대니얼 하먼 지음, 한유주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매혹의 땅 위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통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머나먼 철길을 항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작가가 인도하는 기차를 타고 그들의 여정과 같은 걷고, 타기를 반복하며 한 사람의 생애를 여러번 반복해서 오르내린다. 작가가 비춰내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때때로 우리는 소설 속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작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기억에 남기도 하고, 때때로 작가의 의도대로 작품 속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에 이입되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그를 가리키는 묘사들이 잔잔히 비춰내고 있다.


한동안 책을 펼칠 때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여러번 반복해 책을 읽기도 했다. 오독을 하지 않기 위해 중의적인 표현들을 풀어내려고 애썼으나 앤드루 더 그라프와 대니얼 하먼의 <소설&지도>를 읽고 접하면서 '오독'이야말로 또다른 문학적 길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많은 길 가운데 항상 가는 길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샛길도 가보고, 조금 돌아서 큰 길도 가보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길이 펼쳐져 있다. 누군가에게는 정도에 벗어난 길이 최고로 위험한 길이 될 수 있으나 이 매력적인 땅 위에서 하염없이 길을 잃어도 미지의 세계 속 어느 곳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던 책이다.


 

 

이름만 들었다 하면 눈이 휘둥글어질 호메로스, 웰리엄 셰익스피어, 대니얼 디포,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프레더릭 더글라스,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쥘 베른, 마크 트웨인, 프란츠 카프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셜리 잭슨, 랠프 엘리슨, 사뮈엘 베케트, 플래너리 오코너, 매들린 렝글, 리처드 애덤스, 어슐러 K. 르 권의 이야기가 한 장 혹은 여러 장의 지도로 작품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 옆에 작품을 써놓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대표작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 앞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도 낯선 이름도 있기에 책을 꼭 펼쳐보기를 바라는 마음에 거론하지 않았다.

 

무수히 들어봤던 작품들을 여러장의 지도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꼴깍 삼켜낼 수 있다니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던 책이다. 초기 저자는 이 책을 기획 할 때 50권의 책을 지도로 만들려고 했으나 작품을 그리면서 50권의 책이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 마다 일괄적이지 않는 소설 속 지도는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여정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지도란 원래 짧고 명확하면서 정확하게 가고자 하는 길을 찾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본분을 다한다면 군더더기 없이 작품을 표현해야 한다. 소설 속 이야기를 어떻게 한 눈에 내다볼 수 있게 그려낼 수 있을까.


 

 

읽고 보는 내내 이미 읽었던 작품은 작품대로, 처음 접하는 소설은 소설대로 이야기 고유의 색채와 색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특히 이미 읽었지만 다시금 책을 펼치게 만든 지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다. 언제 읽어도 늘, 여러 해석이 붙은 작품인 동시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변주가 가능한 작품이었다. 지도는 때때로 그들의 걸었던 발걸음을 색색깔의 선으로 표기한다. 언제 읽었는지 가물가물 기억이 안나는 책은 당연히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가로 가서 다시 책을 펼치게 된다. 이런 작품도 있었어 하는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다. 그의 작품은 모던한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언제나 남겨주는데 미처 만나지 못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새로운 책 소개가 반가웠다.


 

 

소설을 만날 수 있는 여러갈래의 길이 이리 반가울수가. 늘, 가는 길만 가고, 다른 길로는 돌아가지 않는 나에게는 이런 낯선 경험이 너무나 좋았다. 소설에 있어서만은 그 어떤 경계없이 이야기를 즐기고 있기에 보물지도 만큼이나 매혹적인 땅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그리는 저자의 작품 속에 쏙 빠져들었다. 커다란 판형의 작품 속에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소설속 이야기를 지도로 통해 볼 수 있는 문학적 지도는 언제든 환영이다. 계속해서 많은 작품들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 계속해서 다른 문학적인 지도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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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위대한 이야기에서 그렇듯, 모퉁이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나 애먹이는 건 사람이고 사람들은 대부분 땅 위에 있다. 그러므로 강 위의 삶은 "자유롭고 편하고 아늑"하다. 가는 길마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짝패가 카이로를 지날 때, 남북전쟁 이전 시대의 미국 남부를 무지한 자와 제정신 아닌 사람이 넘펴나는 일종의 정신병원으로 보지 않기란 어렵다. 둘은 가는 곳마다 강제로 물건을 파는 사람, 인종주의자, 광신자, 귀족을 자처하는 심술궂은 사기꾼, 어리석은 바보를 만난다. 톰 소여는 허크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몰아세운 적이 있는데, 허크가 맡은 회의론자 겸 중재자 역할은 작품과 주변 인물을 돋보이게 한다. 그는 늘 두 사람 사이에서 고심하면서 중립을 지킨다. 그는 자신만의 도덕을 규정하고, 자기만의 길을 만들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 p.73


프란츠 카프카를 아동 친화적인 작가라고 하는 이는 없겠지만 그의 작품은 아동도서와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시각을 보여주며, 대체로 유머를 통해 정서적 효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단편이건 장편이건 우리가 누구이며 진정한 본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유아적인 질문에 종종 몰두한다. (생략) 이 작품은 노골적인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는 생존 이야기다. 지칠 대로 지친 페터가 갖은 모욕을 받으며 우리에 갖혀 있는 동안, 그가 아는 것이라고는 "탈출구가 없다"가 전부다. 물리적인 축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페터는 신랄한 어조로 "자유"라는 단어를 거부한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는 누구에게도 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엇이든" 찾도록 이끈다. (생략) 허나 그는 새로 생긴 고유한 관점에서 무엇을 성취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그랬듯 페터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는 말한다. "출구가 필요하다면 배웁니다. 모든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배웁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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