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 문화여행자 박종호의 오스트리아 빈 예술견문록
박종호 지음 / 김영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빈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책.


 영국 런던을 가면 타워브릿지를 보고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을 꼭 봐야지, 하는 곳이 오스트리아에는 없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깊게 다루지 않은 곳이었다. 로망이 있어 부푼 마음을 안고 가는 것도 금물이지만 여행 가는 곳에 대해 기대없이 가는 것도 좋지 않은 여행법이다. 마치 발자국을 찍듯 오스트리아 빈에 들러 여러 곳을 봤지만 기억에 남는 곳은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벨베데레 궁전' 뿐이다. 도판에 실려 있는 그림이 무색하게 그의 그림은 황금빛이 찬란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어느 도판을 보더라도 실제 보는 색감을 따라가지 못하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여행을 한지도 벌써 십여 년이 흘렀다.


최근에 '꽃보다 할배'에서 오스트리아 빈을 다룬 것을 계기로 해서 요즘 빈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서유럽에 대해 로망도 있었고, 뾰족뾰족한 건물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터라 가보았지만 기대보다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왜 오스트리아를 눈여겨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오스트리아 건물이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건물과는 '예쁨'이 없었고 무언가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이 상징적으로 보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빈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것도 한 몫했으니 인상 깊은 곳으로 기억될리가 없었다. 할배들이 여행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이런 자기한 곳을 몰랐구나 싶어 펼쳐든 책이 풍월당 박종호 대표가 쓴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이분이 무게감을 잡나 싶게 묵직한 어조로(때로는 강하게) 오스트리아 빈의 매력에 설파한다. 도장을 찍듯 나같은 여행객처럼 바람같이 왔다가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 여행자들의 모습에 많이 안타까워하는 글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모든 여행지가 그렇지만 빈은 아는 이들만이 그들이 구축한 문화와 예술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다면 그것은 오스트리아 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다. 빈을 제대로 느끼고 볼 수 있는 시간 여행을 하듯 그는 세기말 빈을 빛내고 사라져간 수십 명의 예술가들의 인생과 흔적을 따라 1900년대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간속의 이들과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세기말 음악가들의 우상이었던 베토벤, 건축가들의 예술정신을 밑바탕이 되었던 화가 훈데르스바서의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벨레데레 부근을 시작으로 제체시온, 오페라 부근, 알베르티나, 무지크베라인, 박물관 지역, 막 부근, 시청 광장 부근, 하일리겐슈타트 지역, 훈데르트바서 지역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곳들을 가봐야 할 이유와 요한슈트라우스 2세, 알바 말러, 오스카 코코슈카,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말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후고 폰 호프만스탈, 페터 알벤베르크, 카를 크라우스, 파울 비트겐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에곤 실레, 오토 바그너, 아르투르 슈니츨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훈테르트바서 그야말로 세기말 빈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의 이름은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미술, 음악, 건축, 철학, 정신분석학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것이 태동되었을 때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빈의 세기말은 제국의 쇠퇴기였으며, 과거의 제국과 귀족 사회가 자기모순을 온전히 안고 있는 시기였다. 그것을 토양으로 자라난 세기말 예술가들은 그들 이전의 문명이자 그들의 밭과 뿌리를 스스로 단절해버렸다. 즉, 그들은 어느 정도 고의적으로 과거를 끊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경우와 흡사했다. 그 시대에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 p.75


빈 문화의 핵심은 세기말에 있다. 1900년이 오기 직적에 태동해 1900년 전후로 만개한 (p.25)도시. 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빈의 '총체 예술'을 느낄 수 없으며 음악이나 미술등 한 가지만 봐서는 그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음을 저자는 충고한다. 음악을 잘 보려면 미술을 보고, 미술을 보면 음악을 듣고, 건축, 문학등 모든 것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세기말의 특징은 왕실과 귀족세력이 쇠퇴하고 시민 계습이 탄생되면서 겪는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문화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진 것에 포인트를 맞춰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예술의 유기적인 덩어리'로 봤는데 시간 속에서 강렬한 색채를 드러냈던 이들의 업적은 지금까지도 빈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공부하고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던 카페 마저도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유럽의 도시처럼 한 건축물이 여행객에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과 달리 빈은 소프트웨어가 굉장히 우수한 도시다.


풍월당 대표인 그는 음악과 오페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기에 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지만 음악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이에게는 그들이 이룬 성과들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곳에서의 그는 차분히 그들의 이름과 각 장을 통해 그들이 이룬 업적과 그들이 몸담았던 곳들을 소개하고 있다. 워낙 클림트나 에곤 실레, 베토벤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부르크 극장 천장에 클림트가 그려놓은 작품이 있을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빈이라는 도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만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거리마다 그들의 숨결과 작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왜 그렇게 빈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애정하는지를 책 곳곳마다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지금 당장 음악을 깊이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오스카 코코슈카와 클림트, 에곤 실레의 그림도 보고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작품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학문을 읽어보고 싶다. 중앙묘지와 카페 무제움, 카페 자허, 부르크극장, 막, 우편저축은행, 쓰레기 소각장까지도 그들의 손길이 묻어있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예술을 느끼는 동시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 속에서의 그들의 이야기를 느껴보고 싶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빈에 대한 애정이 서서히 차오른다. 그의 애정어린 이야기가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처럼. 한 권의 책만으로 빈이라는 도시를 섬세하게, 구석구석 알아가는 재미 덕분인지 읽는 내내 줄 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 애를 먹었던 책이다.



---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 - p.87


실러의 시는 베토벤의 음악을 탄생시켰고, 베토벤의 음악은 다시 클림트의 미술을 탄생시켰으며, 클림트의 그림은 말러의 지휘를 불러일으켰다. 제체시온은 예술로 충만한 곳이다. 클림트의 벽화가 말하는 것이 예술 속에서 열락을 누리는 인간이라면, 나는 이 지하방 속에서 클림트의 그림으로 둘러싸여 예술의 열락을 누린다 사면은 클림트고, 두 귀에는 베토벤이 들려온다. - p.93


<장미의 기사> 속에는 빈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빛과 그림자, 현실과 꿈, 그리고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하는 작품······. 그것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다. - p.138


많은 사람들이 빈의 고유한 커피로 아인슈패너가 아닌 멜랑주를 꼽는다. 모양만으로 보아서는 30년 전의 우리나라 비엔나 커피에 가장 가까운 것이 멜랑주다. 도자기 잔에 나온다는 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겉으로 비엔나커피와 유사해 보이는 이것은 아인슈패너와는 다른 내용이 다르다. 커피 위에는 휘핑크림 대신 우유 거품이 들어 있다. 즉, 이탈리아의 카푸치노와 비슷하다. 하지만 파쿠치노보다 맛이 더 진하며, 계피나 코코아 가루같은 것을 얹는 일은 없다. - p.167


빈에느 카페만 1,200개가 넘는다.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카페에서 탄생했으며, 거기에는 커피가 있었다. 그들은 그 많은 것을 커피를 마시면서 이루어냈다. 빈은 커피다. 빈에서는 커피를 마시자. - p.171


어찌 정신병원의 교회가 이렇게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절대 왕정의 권위주의가 이제 땅에 떨어지고 인본주의가 세상에 일어섰음을 천명하는 상징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술가의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세기말 빈에 들어와 예술은 그 의의가 바뀌었다. 일부 특권층만 향유하는 유희가 아니라 모든 시민 계층에게 봉사하는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 p.301


중정中庭 주변을 넓고 긴 회랑이 사각형으로 에워싸고 있다. 이곳이 '아카르텐호프'로, 회랑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조각상이 빼곡히 놓여 있다. 모두 이 학교 역대 교수 들이다. 그들이 은퇴하거나 서거하면 대신 조각상으로 학교에 남는다. 영원히······. - p.325~327

​슈니츨러는 빈 사람들의 슬프고 어두운 사랑 이야기를 세련된 문체로 보여주었다. 특히 시민들이 느끼는 것들과 향락의 세계를 날카롭게 그려 가장 빈적인 작가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의사의 예리한 관찰력과 자연과학자의 냉정한 표현을 담고 있다. 특히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박하고 퇴폐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내용은 소설과 그의 일기가 서로 넘나드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성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묘사들이 많았다. 그의 작품들은 관음증적이며 정신분석학적이다. - p.3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