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좋은 책을 안내하는 적확한 안내자 헤세의 비평.


 올해 그책에서 출간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배수아 작가의 번역으로 읽었다. 지금까지 만난 헤세의 판본 중에 가장 좋아서 헤세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어 고른 책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이다. 헤세의 책은 <데미안>을 포함해서 그의 많은 대표작들이 출간되어 있지만 그의 글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지는 않는 작가다.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풀어내지 않는 관념 같은 것이 묻어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풀어 내야만 비로소 그의 깊이를 음미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그런 경지에 오르지 않았기에 천천히 그의 작품을 하나 둘 접하고 있고, 그의 작품이 아닌 글을 접하고 싶어 만난 책 역시 그의 색깔이 오롯하게 드러난다.


작가로서 직접 글을 쓰는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책을 읽는 것 또한 좋아하는 작가다.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서평을 받기 위해 여러 출판사들이 그에게 책을 보냈다고 한다. 늘, 책더미에 싸여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책의 무덤 속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불을 밝히며 책을 읽어 나갔다. 1900년부터 1962년까지 작품을 쓰는 틈틈이 신문과 잡지에 수 많은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 했고, 그가 쓴 3천여 편의 서평 중에서 73편의 글만 뽑아 엮은 책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이다. 프란츠 카프카, 귀스타브 플로베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로맹롤랑, 보카치오, 셀라 라겔뢰프, 슈테판 츠바이크, 크누트 함순, 프랑시스 잠,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조너선 스위프트, 로베르트 무질, 펄 벅, 카렐 차페크, 조지프 콘래드, 스탕달, D.H 로렌스, 공자, 노자, 열자, 포송령, 조설근등 그야말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작가와 책의 리스트들이 담겨져 있다.


몇몇 작가에 대한 작품은 읽어본 적은 있지만 대부분 이름은 들어봤지만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 작품들이 많았다. 그의 서평은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군더기기가 없다. 깔끔하며, 적확하게 작품을 이야기하고 있고 혹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글쓰기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 한다. 시공간은 달라도 거장과 거장과의 만남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가 읽어가는 프란츠 카프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를 어떻게 읽고 느끼는지를 알 수 있다. 동종업계를 종사하는 그는 책을 허투루 읽지 않고, 또 작가로서 냉철하게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변한 문제나 혹은 날렵하게 베어내지 않는 무딘 칼날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넨다. 때론 그가 애정하는 책이나 작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애정의 깊이가 담겨져 있는지 단어 하나하나만으로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많은 이들이 읽고, 또 읽어냄으로서 거장의 찬사를 받는 괴테도 헤세의 날렵한 눈빛에는 벗어나지 못하는지 유독 그의 글에 대해서는 서리가 내려 앉는다. 헤세가 읽은 혹은 글을 쓴 궤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생소하면서도 접점이 없어 도무지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이 책은 그의 궤적을 따라 올라가기 전에 위에 언급된 수 많은 작가와 책의 리스트들을 반 이상 읽어본 독자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편 소설을 쓰든, 산문을 쓰든, 시와 서평을 쓰든 그는 각기 다른 칼로 그의 생각을 드러내고, 적확하게 작가를 이야기 하며 그의 작품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본다. 작가를 깊이 알아야만 설명할 수 있는 궤적의 깊이를 그는 말하고 있고, 겉에서만 맴돌아서는 알 수 없는 작품의 의미를 그는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한다.


고수의 서평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될 정도로 그는 할애된 지면 속에서 하고픈 말을 허락된 공간 안에서 그 작품을, 그 작가의 색채를 드러냈다. 읽는 내내 헤세의 눈으로 날렵하게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쉬운 점 또한 많은 작품을 접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그와 같이 그에 관한 읽고 읽었더라면 더 풍성한 책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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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랍고도 단순하고 순수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서문은 약간 서투른 방식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서 알게 된 몇 가지는 이 동화 작가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는 가난하게 자라 일찍부터 남의 후원을 받았고, 여행을 좋아하고 명예욕이 있었지만 언제나 동화속의 길 떠난 아들 모습이다. 마지막에는 명성을 얻고 돈도 벌었지만 다정함은 얻지 못해 늘 마음이 결핍되어 있었고, 사랑에서도 불운했다. 이 특이한 남자는 이렇게 살았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였기에 실망하고 외로울 때면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구상했다. 그는 다른 작품들 덕에 명성을 얻었지만 오직 그의 동화들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이 스러지지 않는 종류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 p.23 <안데르센 동화집> 중에서


이 소설을 절반 성숙한 힘든 소년의 개인 이야기로 읽든, 아니면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의 상징으로 읽든, 독자는 작가를 통해 낯섦에서 이해로, 역겨움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멋진 길을 안내받는다. 문제 많은 시대, 문제 많은 세계에서 문학이 이보다 더 높은 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 - p.26


이 책에서 늙은 대가 함순을 보여주지 않는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그 옛날의 대담하고 변덕스런 관찰이자 작가인 함순을, 모든 것이 여기 다시 나타난다. 그의 비웃음, 일상적인 것에 대한 경멸, 날씨나 사랑 같은 일에서 신경질적인 섬세함, 탁월함을 기뻐함, 감추어진 우수 등 그 모든 것이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저 나이의 숨결이 덧붙는다. 더욱 부드러워진 지혜와 가볍게 비웃음이 섞인 미소, 모든 감상주의를 더욱 꺼리는 태도 등이. 개별 장면들에서 그는 완전히 늙은 사람이다. 늙은 폰타네의 모습, 늙은 라베의 모습, 하지만 월등한 몸짓으로 갑작스럽게 그 옛날의 함순, 결코 만족하지 않는 빛나는 함순이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그는 체념했고 자주 피곤하겠지만, 그리고 아마도 호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자주 움켜쥐는 일도 더욱 드물어졌겠지만, 삶은 크누트 함순을 그렇게 쉽게 끝장내지 않았다. - p.180~181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운명만이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는 무대 자체도 중요하다. 이 섬세하고 사랑스런 작품들의 배경은 언뜻 보기에는 성과 산, 골짜기와 정원, 가까운 해변이지만, 실제로는 시인의 영혼이다. 그는 영혼 안에서 이 세계의 온갖 현상들은 아름다운 하늘에 떠가는 한조각 구름처럼 부드럽고 맡갛기도 하다. - p.203


그가 더 엄격한 시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말로 옮겨갈 때마다 세계와 그 내면의 풍부함이 그에게 과도하게 쏟아져 들어왔던 듯하다. 그는 처음부터 순수하게 예술적으로 제한된 서술 형식이 가능하지 않음을 알았거나 아니면 느끼고, 이야기꾼으로서 온갖 형식을 동원하여 인간성을 추적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즉 필요에 따라 상당히 멋대로 대화 형식, 현지 형식, 일기 형식, 그리고 자주 직접적인 가르침의 형식을 사용하기로 한 것 같다. - p.208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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