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서 나온 새 정채봉 전집 중단편 1
정채봉 지음, 김동성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69 느티나무



《물에서 나온 새》

정채봉 지음

샘터

2006.9.15.



《물에서 나온 새》를 읽었다. ‘어린새’ 이야기는 봉황과 허수아비를 다룬다. 짚으로 여민 몸에 마음이 들어와서 참말로 숨결이 있기를 바라는 허수아비는 들새를 불러서 쉬라 하고, 배를 채우라 하고 싶다. 그렇지만 스스로 들판에 선 허수아비가 아닌 터라, 허름한 옷을 걸친 채 들새를 훠이훠이 쫓아야 한다.


예전에 안동 도산면에서 일하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 내가 살던 집에서 일터 사이는 오십사 킬로미터 길이었다. 오가는 길이 꽤 멀었는데, 오히려 길이 멀기에 철마다 다른 들빛과 꽃빛을 누리기도 했다. 도라지꽃을 보고, 허수아비를 만나고, 낯선 들꽃을 보면 이름이 뭘까 하고 한참 헤아리던 나날이다.


기차가 다니는 북후면 쪽으로 오갈 적에는 으레 일찍 기차역으로 나왔다. 혼자 논두렁길을 걸으며 벼냄새를 맡았다. 봄에는 매화를 보고, 꽃이 지면 시냇물을 보고, 철길을 건너 멧비탈을 다녀오기도 했다. 일터에서는 낮밥 즈음에 슬쩍 냇가로 가서 꽃을 보았고, 저물녘에는 별바라기를 했다. 곁에 있는 느티나무한테 가서 차도 마시고 빗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티나무가 잘렸다. 나무가 크게 선 곳에 정자를 지어야 한다면서,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리니 나무를 잘라야 한다더라.


여러 일꾼은 전기톱으로 굵다란 나무를 베어 넘기고 잘랐다. 왜 나무를 베고서 정자를 세워야 할까? 나무 곁에 알맞게 정자를 세울 수 없을까? 전기톱에 줄기가 잘리고 가지가 잘리는 느티나무는 톱밥을 잔뜩 내놓았다. 수북하게 쌓이는 톱밥은 느티나무가 흘리는 피 같았다.


다 잘린 느티나무를 바라보다가 일꾼 아저씨한테 말을 여쭈었다. 앉은걸상 크기만 한 둥치를 하나 얻었다. 어쩐지 느티나무를 곁에 두고 싶었다.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묵직한 둥치를 집으로 실어 날랐다.


《물에서 나온 새》에는 ‘나무를 때리는 아저씨’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도 사람처럼 아플 텐데,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는 듯하다. 나무하고 마음을 나누고 말을 섞던 눈망울을 잊어버린 탓일까. 나뭇가지에 앉던 새는 어떤 마음일까. 우리는 새한테 물어보고서 나무를 베는가? 나무한테도 새한테도 땅한테도 아무 말을 묻지 않고서 자꾸자꾸 높다란 건물만 올리는 우리들, 사람이지 않을까?


2023.11.07.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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