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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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51 한 그루 나무



《랩걸》

호프 자런

김희정 옮김

알마

2017.2.16.



지난해 여름에 어느 이웃이 《랩걸》이 좋으니 읽어 보라고 했다. 그분은 하루에 몇 쪽씩 아껴가면서 읽는다고 했다. 참 좋은 책인가 하고 여기다가 다른 이웃한테 《랩걸》을 사서 읽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이 훨씬 낫다고 하더라. 이분 얘기로는, 과학자는 나무를 과학으로 볼 뿐이라서, 나무 마음에 다가서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와 달리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나무를 오롯이 나무로 바라보고서 마음으로 다가서려고 하기에 ‘과학자 아닌 사람’이 쓴 책이 나무도 풀꽃도 제대로 풀어내어 들려준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사백 쪽을 웃도는 두꺼운 책에는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고 적혔다. 아무래도 나는 이 말에 낚인 듯하다. 나무도 사랑도 아닌, 나무를 앞세워 ‘여성 과학자’라는 이름을 풀어놓은 줄거리이다. 그래, 글쓴이는 나무를 본 적이 없구나. 실험실에서만 사느라, 나무를 기웃거린 적은 있고, 나무를 뜯은 적은 있어도, 나무가 나무로 살아가는 숲을 품으면서 살아간 적은 없구나.


내가 일하는 가게 모퉁이에 전봇대가 있다. 이 언저리 거님길 틈에 벚나무가 한 뼘 자란다. 전봇대와 건널목 사이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있고, 요 사이에 조그맣게 싹부터 돋아서 자라나는 아기 벚나무라고 하겠다.


예전이라면 잡풀로 여겨서 뽑았을 텐데, 이제는 잡풀이 따로 없는 줄 느껴서 가만히 바라본다. 그냥 풀일 뿐이다. 작은 풀에 깃든 숨결을 새롭게 마주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조그마한 틈에서 싹을 내고 올라올까. 앞으로 전봇대랑 나란히 자랄 수 있을까. 제법 키가 오를 즈음에 안 뽑히고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봇대한테 거치적거린다고 여겨서 다른 사람들이 슥 뽑거나 베어버리지 않을까.


바닥에 얼굴이 닿을 듯 엎드려서 새싹한테 속삭인다. “기운내, 잘 버텨라.”


나무씨앗도 처음 싹이 틀 즈음에는 풀하고 똑같다. 모든 씨앗은 풀씨처럼 떡잎이 나온다. 작은 들풀이 어느새 나무로 바뀌고 숲으로 퍼지는 셈이다. 우뚝우뚝 서는 쉰 살이나 백 살에 이른 나무가 되기까지, 모든 나무는 그야말로 힘껏 버티거나 견뎌내는 나날이지 싶다. 천천히 잎을 내고, 천천히 줄기가 굵고, 천천히 가지가 뻗으면서 먼먼 앞날을 기다린다.


그끄저께에 영양 죽파리로 자작나무를 보러 갔다. 나무가 얼마나 높이 자랐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자작나무 한 그루마다 씨앗을 25만쯤 맺는다는 말을 들고 놀랐다. 씨앗은 그처럼 많아도 싹트는 아이는 몇 안 될 테지.


《랩걸》을 보면, 아카시아는 뿌리가 매우 깊게 내린다고 한다. 일터에 있다가 자주 찾아가는 숲에는 아카시아가 곳곳에서 휘청인다. 휘청이다가 쓰러진 나무를 보면, 뿌리가 얕고 짧다. 도시에서는 아카시아조차 뿌리를 제대로 뻗거나 내릴 틈이 없는 셈이리라.


우리가 이곳에서 사람만 살아가려 하지 않고 나무하고 함께 살아가려 한다면, 나무가 마음껏 뿌리를 뻗는 터전을 이루면서, 사람도 마음껏 발을 뻗고 쉬거나 놀며 어울릴 터전으로 바뀌지 않을까. 열매를 더 크고 빠르게 얻거나 더 손쉽게 따려고 함부로 가지를 휘어 놓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가 먹는 과일도 우리 몸에 제대로 이바지하지 않을까. 앞으로는 가지치기가 아닌 가지살림으로 나무를 바라보아야 나무도 살고 사람도 살리라 본다. 나도 해마다 나무 한 그루씩 심고 싶다. 나무가 반길 만한 글을 써서 책으로 담고 싶다.



2023.10.29.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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