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문명 - 한 지구 시민의 생태 평화 순례기
마사키 다카시 지음, 김경옥 옮김 / 책세상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036 나무심기



《나비 문명》

마사키 다카시

김경옥 옮김

책세상

2010.10.12.



두 해 앞서 대구 ‘김광석거리’ 가까이에 있는 〈직립보행〉이라는 마을책집에 간 적이 있다. 그날 마침 아는 분하고 함께 갔다. 나랑 함께 책집에 들른 분은, 나를 보면서 내가 엉뚱한 책 앞에서 헤맨다고 얘기하면서 《나비 문명》이라는 책을 뽑아서 건네었다. 다른 엉뚱한 책은 안 봐도 좋으니 이 책부터 읽어 보라고 하더라.


두 해 앞서 장만한 《나비 문명》이지만, 두 해 동안 펼칠 겨를이 없었다. 집안일도 바빴고, 가게일도 바빴고, 이래저래 온통 바쁨투성이였다. 두 해 앞서 장만한 책이니까, 두 해 만에 읽는 셈이다. 어쩐지 미안한 일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오늘에서야 읽어야 한 뜻도 있겠구나 싶다. 바쁠 적에는 아무리 아름답거나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라도 못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나비 문명》을 쓴 분은 일본사람이다. 이분은 우리나라 강화도에서 임진강까지 걸었단다. 놀랍다. 한국사람도 아닌 일본사람이 우리나라를 가로지르듯 걷다니. 이분은 천천히 이 땅을 걸어다니면서, 일제강점기를 비롯해서 일본 오키나와에서 강제징용으로 시달린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고개숙여 눈물로 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다치고 아픈 푸른별(지구)한테도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걸었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그야말로 놀랐다. 이런 사람이 있었고, 이런 책이 있었구나.


글쓴이는 짝꿍이 몸을 크게 앓는 터라 나무를 심으면서 집안을 돌보려고 했단다. 짝꿍이 아플 적에는 벚나무가 “나도 병들었어요” 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단다. 크게 깨닫고 뉘우치면서 나무를 심고 돌보려 했단다. 애벌레가 나비로 거듭나기까지 잎을 갉는 길을 돌아보았단다. 나비로 깨어나는 길이란 무엇인지 헤아려 보았단다.


“아이는 우리 앞길”이라는 말을 나라에서도 둘레에서도 흔히 한다. 나무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아이도 우리 앞길, 나무도 우리 앞길”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나무를 심으면 어느새 자그맣게 숲을 이룬다. 나무 한 그루는 처음에 작지만, 어느새 우람하게 가지를 뻗고 잎을 낸다. 나무가 있기에 숲이고, 아이들이 있기에 나라도 마을도 집도 있다.


나는 여태까지 일본을 그다지 안 좋게 보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못난 일본 정치인도 많을 테지만, 이웃나라 사람들 아픔과 고름을 참으로 함께 아파하면서 품으려는 이웃나라 사람도 있다고 비로소 돌아본다. 이 책을 쓴 분은 정치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지만, 같은 일본사람으로서 일본이 무엇을 저질렀는지 돌아보면서, 푸른별이 함께 나아갈 길을 맑게 그리려고 한다고 느꼈다.


숲에서 모든 것을 얻는다. 더는 숲이 사라지지 않아야 하며, 숲과 우리 몸과 해와 별과 땅과 바람과 비가 늘 한몸인 줄 느끼고 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지난날 숱한 여러 나라가 저지른 허물을 벗으려는 몸짓을, 숲 곁에 서서 나비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무를 심는 마음을 닮고 싶다. 어린 날 시골에서 먹은 싱그러운 숲빛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이룬다.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숲은 바로 우리 앞날 아이들을 이루는 빛이 되겠지.


오늘날에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도시 잿빛을 닮아간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이 잿빛처럼 닮아가고, 우리 마음도 잿빛처럼 바뀔지 모른다. 옛날처럼 마당이 있고 등성이에서 뛰어놀던 때가 그립다. 그러나 나도 어릴 적에는 몰랐다. 나이가 들어도 몰랐다. 요새 조금씩 알아가면서 뉘우치고 배운다. 어릴 적에는 풀꽃나무하고 숲이 우리 집을 가득가득 둘러쌌어도 이 멧골마을이 나한테 얼마나 빛나는 숨결인지 잘 몰랐다. 어쩌면 나도 애벌레처럼 고치를 틀면서 다시 나비로 거듭나려는 때인지 모르겠다.



2023.09.2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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