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 아이들 이야기글 모음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9
이오덕 엮음 / 양철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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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35 우리도 크면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음

양철북

2018.2.2.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를 읽었다. 이 책에는 내가 태어날 무렵에 삼학년에서 육학년 어린이가 쓴 글이 나온다. 나보다 열 살 또는 열세 살 위인 어린이였던 셈인데, 이제는 예순을 지나 일흔을 넘어가는 사람들인 셈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분들이 남긴 글을 읽자니, 내가 어릴 때 한 일이 낱낱이 보인다. 이 책을 엮은 이오덕 님은 ‘훌륭한 글을 쓰는 공부에 참고 하라고 하고 훌륭한 글이란 정직하게 쓴 글, 사람답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한 것을 쓴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얘기보다 일하고 괴로워한 글이 재밌고 감동을 주게 된다’고도 이야기한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온통 풀꽃나무와 새와 벌레와 물고기와 올챙이와 콩싹과 함께한다. 어버이와 놀러 간 일은 소풍 때 살짝 나온다. 이 책이 처음 나오고서 서른 해가 지난 즈음에는 우리 아이들이 태어났고, 이때만 해도 아이들은 숲에서 제법 멀었다. 어느새 책이 처음 나온 지 예순 해가 훌쩍 지난 오늘날인데, 그야말로 오늘날 아이들은 삶이 아닌 책으로만 풀꽃나무나 숲이나 벌레나 동물을 만나겠다고 느낀다. 


요새 어떤 어린이가 숲에서 혼자 놀거나 동무하고 놀까? 요새 어떤 어린이가 집과 학교 사이에 있는 높다란 멧길을 넘을까? 나만 해도 멧길을 넘으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요새는 학교버스도 있고, 자가용으로 태우는 어버이가 많다. 내가 어릴 적이나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가 처음 나오던 때를 돌아보면, 예전에는 학교 가는 길이 참 멀었어도 다들 걸었다. 요새는 학교 가는 길이 멀지도 않을 텐데 다들 자동차나 버스를 탄다.


걸어다니면서 들을 보고 숲을 보고 멧골을 본 아이들은 들과 숲과 멧골에서 본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학교버스나 어버이 자가용을 타고 학교를 다니는 요새 아이들은 손전화로 게임을 할 뿐 아닐까? 요새 아이들더러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까? 어쩐지 무섭다.


우리 집 세 아이가 어릴 적에 쓴 일기장을 버리지 않고 아직도 건사한다. 오늘 문득 떠올라서 큰아이 일기장을 펼쳤다. 아홉 살 적에 쓴 글에 ‘이모집’이 있다. “피아노 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이모가 전화를 했다. 그래서 태성아파트로 갔다. 이모집에는 손님이 있었다. 병권이 오빠야 친구도 와 있었다. 박문수 책을 읽다가 집으로 이모와 함께 왔다. 이모와 함께 집에 오니까 심심하지 않고 좋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데, 이때 나는 일을 하느라 바빴다.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가 없었다면 일을 다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쓴 일기에도 들이나 숲이나 멧골이나 벌레나 동물이나 풀꽃나무 이야기는 거의 없다. 어쩌면 아예 없다고 해도 좋으리라. 나는 나대로, 짝은 짝대로, 다들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을 하느라 바빴고, 나나 짝은 시골에서 나고자랐어도 우리 아이들은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 아이들도 시골이나 숲을 느끼면서 스스로 품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글로 남길 틈이 없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에 글이 남은 멧골마을 아이들이 나고자란 곳하고 내가 태어나서 자란 경북 의성하고 가깝다. 나한테 언니나 오빠가 멧골과 학교 사이에서 겪고 보고 느낀 하루는 내가 어릴 적에 보고 듣고 겪고 느낀 하루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하나일 테지. 이 책에 글이 남은 예전 어린이는 이오덕 님 같은 길잡이가 있어서 어릴 적에도 시골살림과 숲살림을 고스란히 스스로 남길 수 있었다. 나한테는 이오덕 님 같은 길잡이가 없었다.


비록 어릴 적에는 경북 의성 멧골살림을 글로 남길 생각조차 못 했지만, 쉰 살을 넘어선 아줌마가 된 오늘, 나는 내 어릴 적을 떠올리면서 멧골과 숲과 풀꽃나무와 벌레 이야기를 글로 적어 본다. 까마득하게 먼 어린 날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릴 적 일을 떠올리려고 하면 반짝반짝 떠오르더라. 그 어릴 적에 글로 남기지 못 했던 멧살림인데, 내 몸에는 고스란히 새겨졌나 보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하고 느껴서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오려 했을까? 나는 농부가 되기 싫어서 안동으로 대구로 나가서 집을 얻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을까?



2023.09.25.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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