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 자유와 공화
문창극 지음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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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32 글길



《문창극 칼럼》

문창극 

을유문화사

2009.10.25.



사흘 앞서 《문창극 칼럼》을 샀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신문에 올린 글을 모았다. 열다섯 해가 지난 묵은 글일 텐데, 내가 쓰고 싶은 시나 글이 얼마나 깊거나 넓은지 잘 모르겠기에, 글길을 배우고 싶어서 샀다.


누구는 왜 이런 책을 사읽느냐고 할 수 있고, 누구는 이런 책을 사읽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싶고, 여러 가지를 두루 파는 가게를 꾸려가다 보니, 자꾸자꾸 둘레에서 하는 말에 휘둘리기도 하고, 이것이 좋다면 이쪽을 보고 저것이 좋다면 저쪽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신문에 실린 묵은 글을 오늘 되읽어 보면서 뭔가 배우자고 생각했다.


한참 《문창극 칼럼》을 읽다가 소금을 떠올렸다. 팔이나 다리에 긁히거나 다친 데에 소금이 닿으면 되게 쓰라리다. 그런데 이 소금으로 재워야 먹을거리가 오래간다. 소금이 없으면 절임을 못 한다. 바닷물이 품은 소금처럼, 글도 소금을 품을 노릇일까?


그렇지만 소금은 아무 데나 쓸 수 없다. 바닷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비가 되어 뿌리는데, 빗물에는 소금 기운이 하나도 없다. 바다 같은 글이 쓰일 데가 있고, 빗물 같은 글이 쓰일 데가 있겠지.


거의 스무 해쯤 지난 2000년 무렵에 나는 무엇을 했는지 돌아본다. 그즈음 나는 셋째 아이를 낳으려고 했다. 열 몇 해를 다니던 일터를 그만두었다. 이윽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뒤늦게 배움터를 다녔다. 일터를 그만두면 가장 하고 싶던 일은 ‘그날그날 나오는 신문을 몽땅 읽기’였다. 어쩐지 날마다 신문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신문글 가운데 ‘칼럼’을 꼭 읽고 싶었다.


우리 짝이 집에 신문을 들고 오면, 칼럼이란 이름이 붙은 글은 두고두고 또 보려고 오려서 모았다. 그렇지만 스무 해쯤 앞선 2003년 무렵에는 막상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집에 있으면 짬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이가 셋이라서 집안일에 살림살이에, 또 아이들 먹이려고 빵을 굽거나 김밥을 싸주고 데리러 다니면 너무 바빴다. 하루가 아주 빨리 지나갔다.


곰곰이 보면, 지난 2003년부터 여러 해는, 내 삶에서 아이들과 가장 가깝게 지낸 빛날(황금기)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2023년 오늘 돌아보니, 그때가 빛나는 날이었다. 엄마로서 힘이 있던 때이다. 집안도 이끌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뭔가 하나하나 새롭게 이루던 때이다. 좀 부끄럽기도 한데, 그즈음에 아이들한테 큰소리로 꾸중하면, 아이들은 얌전하게 말을 잘 들었다. 그때에는 이따금 매를 들기도 했고, 아이들이 무슨 말썽을 저지르면 팔을 들라고 시키기도 했다. 참 고약한 엄마로 바뀌던 때이기도 하다. 아이 셋을 다스리기도 벅찼다는 핑계인데, 다시 생각해 보자니 그저 창피하다.


나는 세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고 싶었지만, 자꾸 매를 들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그러면, 나라를 돌본다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대통령이란 자리에서 바라보는 나라살림은 어떠할까.


《문창극 칼럼》에 나오는 줄거리를 되새기자니, 이명박에 노무현 같은 이름이 나온다. 그때 우리 집 살림살이를 돌아보자면, 월급이 적었지만 오히려 요즘보다 다들 살 만했다고 여겼고, 거리도 북적거렸지 싶다. IMF를 겪으면서 사라진 일터가 많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많았고, 뒤앓이를 얼추 열 해 남짓 했다고 느낀다. 좀 나아질 줄 알았지만, 열 해가 지나고 열다섯 해를 지나는 동안 물건값은 그저 오르기만 했다. 뭔가 번듯번듯 높은 건물은 많이 오르는 듯싶지만, 어쩐지 팍팍하고 속으로 곪거나 뒤틀리는 일도 많았다고 느낀다. 


내가 사는 대구에서는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다. 아프간 인질 사태가 있었다. KAL기 폭파사건도 떠오른다. 황우석 줄기세포 인간배아를 놓고서 참이냐 거짓이냐 시끄러웠다. IMF 뒤끝으로 가시밭길이 꼬리를 물었다. 눈앞에는 밥줄 걱정이 잔뜩인데, 누가 나라를 걱정하는지 몰랐다. 이런 때에 누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


문창극이라는 분은 그무렵 신문에 싣는 글로, 노무현 정권이 왜 터무니없는 길을 갔는지 따지려고 한다. 어디서 실랑이가 비롯했는지 따진다. 무엇을 고치기를 바라는지 따진다. 보수라는 이름이든 진보라는 이름이든 허울을 씌우지 말아야 한다고 따진다. 두 쪽 가운데 어느 길을 고르기보다는, 나라를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 


우리 집 세 아이는 벌써 다 커서 따로따로 산다. 둘째 딸은 짝을 만나서 엄마아빠랑 멀리 떨어져서 살아간다. 세 아이는 어릴 적에 엄마한테서 으레 꾸중을 들었지만,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살림을 잘 지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살림이란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일까? 앞에서 이끄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고, 바른길이란 무엇일까?


정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이 무엇이 좋은지 모르겠지만, 대구에서 조그맣게 글을 쓰는 아주머니로 살면서도 문단(문학단체) 실랑이를 으레 지켜보지만, 글길을 참하게 다스리고 싶다. 글이 가는 길을 착하게 지어 보고 싶다.




2023.09.2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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