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028 이웃한테



《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길찾기

2012.03.20.



‘코로나19’라는 돌림앓이에 걸리고 낫던 하루가 한참 오래된 이야기 같다. 처음 《우리 마을 이야기 1》를 읽던 즈음에는 드디어 돌림앓이가 나았다고 여겨서 풀려났다. 막내아들하고 끙끙거리듯 서로 갇혀서 힘겹게 혼자 지내야 했는데, 그때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일본에서 ‘나리타 공항’을 닦으려 하면서, 일본 정부가 ‘나리타 시골마을’을 어떻게 갈라놓으면서 사람들끼리 다투도록 불씨를 심다가 땅을 빼앗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쌀밥을 먹고, 무와 배추를 먹고, 수박과 참외를 먹는다. 모든 먹을거리는 땅한테서 얻는다. ‘땅’이라고 했지만, 그냥 땅이 아닌 ‘논밭’이다. 논밭이 있기에 우리가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밥을 먹고 몸을 살찌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일본에 공항을 늘려야 한다면서 ‘경제발전’과 ‘관광수입’을 내세워 갑작스레 시골마을을 큼지막하게 통째로 밀어서 없애려 했단다. ‘나리타 공항’을 일본 정부가 마구잡이로 지으려 할 적에 시골사람이 어떻게 맞서고 부딪혔는지, 그때 시골 아이들하고 어른들이 무엇을 했는지 낱낱이 들려주는 《우리 마을 이야기》를 두근두근하면서 읽었다.


내가 나고자란 시골인 경북 의성에도 공항이 들어선다며 시끄럽다. 왜 의성 같은 깊은 멧골에까지 공항을 세워야 할까? 우리는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타야 할까? 이미 있는 공항도 많은데, 왜 자꾸 공항을 세운다고 할까?


일본 나리타 산리즈카 시골마을에 공항을 밀어붙이려고 하던 즈음은, 우리 집은 오빠가 태어난 해이다. 내가 태어나기 두 해 앞서이다. 산리즈카 시골마을 사람들은 맨손으로 돌을 고르고 거름을 내어 드디어 기름진 논밭을 얻었고, 논밭에서 거두는 푸성귀와 쌀과 남새로 오순도순 살아왔다고 한다. 아주 넉넉하지는 않으나, 아이들이 자라면 큰고장 대학교에 보낼 돈을 이럭저럭 마련할 수 있을 만한 논밭살림이었단다.


아직 의성 시골마을을 통째로 갈아엎지는 않았지만, 이 만화책을 보면서 우리 옛마을이 이렇게 통째로 사라지겠구나 하고 느끼니 가슴이 시리다. 늙은 할머니인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처럼 늙은 할머니인 이웃은, 이제 흙으로 돌아간 우리 아버지이지만 우리 아버지 같은 늙은 할아버지인 이웃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만화책에서도 말하는데, 나리타 산리즈카 시골마을 사람들은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탈 일이 없다. 내가 나고자란 의성 멧골마을 이웃들도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탈 일이 없지 않을까? 나는 이제 대구로 나와서 살아가고, 어쩌면 앞으로 공항에 가서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다닐는지 모르나, 난 아직 비행기를 타고 일본이나 다른 곳으로 나들이를 가 본 적은 없다.


‘공항은 공항으로 세울 곳에 땅을 내주어야 하는 사람들은 쓸 수 없는 시설이라면, 공항을 왜 시골에 지어야 할까?’


들과 밭에서만 살던 우리 아버지가 몸을 내려놓자, 우리 엄마는 논밭을 일구는 일을 줄였다. 흙을 일구기에는 이제 엄마 나이에 벅차다. 나리타 공항을 반대하는 마을과 달리, 내가 태어난 의성에서는 마을마다 서로 공항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좀더 욕심을 부린다고 할까.


《우리 마을 이야기 1》를 읽다가, “땅은 말이여 원래 누구 것도 아니란다. 이 땅은 우리 것도 공항 것도 아니여. 옛날부터 그저 여기 있었을 뿐, 하지만 누구 것도 아닌 땅을 일구고 갈고 씨앗 뿌려서 비옥한 흙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나여. 그냥 땅바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이 흙은 우리가 만들어 내고 매일 이 흙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온 게, 만져 봐라, 흙은 참말로 부드럽고 따뜻하다. 이건 그냥 땅바닥이 아니여.” 같은 시골 할아버지 이야기를 곱씹어 본다. 흙을 사랑하지 않고는 마흔 해를 싸울 수가 없겠지. 온몸으로 흙하고 하나가 되어 살아왔기에, 공항이 아닌 시골과 숲과 흙을 말할 수 있겠지.


의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흙으로 돌아간 우리 아버지뿐 아니라, 이제 의성 멧골이나 시골에는 순 할머니 할아버지이고, 다들 곧 흙으로 돌아간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 시골에 공항이 들어선다고 하면, 땅값이며 집값이 올라갈 꿈을 꾸는 젊은이가 있을 만하다. 마을마다 서로 공항을 받아들이겠다고 다툴 만큼, 하루아침에 목돈을 거머쥐면서 마을을 살릴 수 있겠다는 꿈을, 아니 욕심을, 헛바람을 품을 수 있으리라.


땅이 팔리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 주머니에 돈을 두둑히 채워 주고 자취를 감출까? 아직 흙을 일구는 어른들 마음은 어떨까?


파리가 날린다는 새 공항이 나라 곳곳에 많다는데, 의성에 짓는다는 공항은 어떨까? 우리는 비행기를 띄우고 내려야 돈을 잘 벌까? 쌀을 거두고, 마늘을 거두고, 수박과 참외를 거두고, 감과 능금을 거두어서는 돈을 못 벌까? 눈물이 난다.



2023.09.09.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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