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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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23 살리는 바탕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11.26.



밭에 지렁이가 살면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니면 흙이 부슬부슬 일어나 숨을 쉬고, 지렁이똥으로 흙이 기름지다. 흙에는 작은 숨결이 살면서 흙을 붙잡는다. 흙이 날아가지 않는다. 흙은 지렁이에 숱한 숨결을 동무로 삼고, 마른 가랑잎을 덮고, 풀과 꽃과 나무를 이웃으로 삼아서 땅을 지킨다.


살아숨쉬는 흙은 모두 씨앗을 키운다. 풀이 뿌리를 내리는 켜는 내 살갗보다 겉흙이 더 얇다고 한다. 이 얇은 흙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더 깊은 흙에서는 작은 벌레가 먹고살고, 더욱 깊은 흙에서는 더 작은 숨결이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우러진단다. 흙이 늘 새롭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모든 숨결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면 풀도 죽고 풀벌레도 죽고 지렁이도 죽는다. 이때에 우리 사람은 안 죽을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죽는 셈 아닐까? 흙에 깃들던 작은 숨결이 다 죽는데 사람만 안 죽을 수 있을까? 서로 얽히니, 흙에서 먹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이 살아난다. 흙이 풀꽃나무가 될 씨앗을 키우지 못하면, 흙은 자꾸 벗겨지고 시들어가리라. 흙이 살고 벌레랑 지렁이랑 온갖 작은 숨결이 함께 어울려야, 흙도 사람도 모두 즐겁게 살아가리라.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은 2010년에 나온 책이다. 글쓴이는 이 푸른별을 덮은 흙이라는 곳(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 보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은 으레 흙이 죽었고,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언제나 흙이 싱그럽다고 한다.


2021년 어느 여름날, 지렁이떼를 보았다. 불볕인 한낮 비렁길에 이리저리 뒤엉킨 채 말라죽은 지렁이가 떼로 있었다. 날씨가 뒤틀려서 괴로운 나머지 죽었는지, 땅속에서 살 수 없어서 죽었는지, 어디로 옮겨가다가 죽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지렁이가 떼로 죽는다면, 우리 삶도 멀쩡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랑잎을 갉고 돌을 잘게 부수어 흙으로 바꾸는 지렁이인걸. 지렁이는 사람들처럼 자동차를 몰지도 않고, 아파트를 세우지도 않고,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고, 학교를 다니지도 않지만, 오래오래 이 별을 가꾸어 왔는걸.


곰곰이 보면, 언제나 작은 것(숨결·생명)이 큰일을 하더라. 흙을 찾기 어려운 도시이고, 도시에서는 흙이 곁에 없어도 걱정(불편)이 없는 듯싶지만, 우리가 도시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흙이 없으면 논도 밭도 없는 셈 아닌가. 논밭이 없으면 밥이 없고, 논밭이 없으면 푸른바람도 없을 텐데.


자동차로 아스팔트를 달리면 빠르다. 바쁘니까 자동차로 빨리 달린다. 우리는 흙을 보거나 만지거나 디딜 일이 없다시피 하다. 나무는 겨우 흙에 뿌리를 뻗지만, 아주 조그마한 구멍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꼴이다. 지렁이뿐 아니라 나무도 숨을 쉬기 어렵다. 답답하겠지.


사람도 살갗에 햇볕을 넉넉히 쬐어 주어야 튼튼할 수 있다지만, 햇볕을 느긋이 쬐려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햇볕을 안 쬐더라도 자라는 토마토에 딸기에 수박에 참외가 쏟아진다. 머잖아 햇볕을 안 쬐고 자라는 나락이 나올는지 모른다.


한 줌 흙덩이를 알 수 있다면, 흙으로 빚은 모두를 알 수 있겠지. 흙에서 자란 밥을 먹으니, 흙을 알려고 할 적에는 우리가 먹는 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우리가 먹는 밥이 흙에서 온 줄 안다면, 우리 몸도 흙에서 돌고도는 줄 알 수 있겠지. 우리 몸이 흙에서 오는 줄 안다면, 마을도 나라도 흙이 고르게 덮고 풀꽃나무가 우거진 터전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푸르게 펼 수 있겠지. 누구나 스스로 살리는 바탕인 흙을 다시 바라본다.  




2023.08.3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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