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와 어린이가 함께 읽는 철수와영희 우리말 시리즈 1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게 삶으로 009 꽃처럼 피는 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4.3.1.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2020년 12월 19일에 처음 읽었다. 벌써 여러 해 지났다. 그날은 큰딸한테 동생(나한테는 작은딸)이 언제부터 안경을 끼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기억할 일!”이란 대꾸를 듣고서 어쩐지 기운이 쭉 빠졌다. 엄마가 옛일이 가물가물해서 잊거나 헷갈릴 수도 있는데, 그냥 알려주면 안 되나.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엄마로서 여러 가지를 쉽게 잊어버렸다. 집안일이며 가게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또 엄마가 집과 가게를 넘어 엄마 삶을 글로 쓰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어쩐지 가볍게 지나치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늘었다.


기운이 빠지는 날이면 으레 집에서 가까운 멧골에 올라 숲빛을 느껴 보려 한다. 답답할 적에는 집에 그냥 있어도 답답하고, 가게일을 보아도 답답하지만, 좀 귀찮거나 춥거나 더운 날 억지로라도 숲에 깃들면, 조금 앞서까지 답답하던 숨통이 트인다. 아무래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말 한 마디를 숲에서 돌아보고 찾아보면서 스스로 숨통을 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낀다.


외워서 쓸 말이 아닌, 스스로 숲인 줄 느끼면서 생각하는 말을 들려준다고 할까. “이 꽃은 이 이름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이 꽃은 어떤 이름일까요? 스스로 생각해서 이름을 붙여 봐요!” 하고 속삭이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까,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책끝에 낱말모음하고 낱말풀이를 따로 붙이기는 하되, 이런 말이 예쁘거나 저런 말을 써 보자고 하는 줄거리는 없다. 이런 말은 나쁘니까 쓰지 말라고도 안 하고, 저런 말로 고치자는 줄거리도 아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숲으로 나들이를 가듯, 우리 마음을 가꾸는 생각을 이루는 말씨(말씨앗) 하나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품어 보자고 이끄는 듯하다.


이 책은 숲과 해와 흙과 물과 바람이 하는 말을 으뜸으로 삼아서 우리말을 풀어낸다고 본다. 햇볕을 먹고 비를 먹고 바람을 먹고 자라는 풀꽃나무라면, 우리가 풀이나 꽃을 나물로 삼을 적에, 또 나무열매를 즐길 적에, 저절로 햇볕과 비와 바람도 받아들이는 셈이겠지.


사람도 벌레도 짐승도 똑같이 햇볕과 비와 바람을 받아들이면서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간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바다도 물도 한몸이고, 사람도 바다도 한몸이고, 사람도 하늘도 한몸인데, 사람도 숲도 한몸이구나 싶다.


우리가 누리는 이 뿌리를 꿈으로 그리고, 말밑 하나하고 삶을 차곡차곡 겹치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자라나고, 둘레를 맑게 보면서 보금자리도 스스로 싱그러이 가꾸는 슬기를 엿볼 수 있겠구나. 씨앗 하나가 천천히 자라 나무가 되듯, 땅에 안겨 잠자던 풀꽃 씨앗이 거듭나고 깨어나듯, 우리 말글도, 우리 마음도, 아이들하고 보내는 하루도, 곁님하고 이루는 살림도, 언제나 스스로 생각씨앗에 마음씨앗에 사랑씨앗으로 돌보면 스스로 피어나겠구나.


큰딸한테 다시 물어봐야겠다. “엄마가 툭하면 잊어버리네. 이 일을 우짤꼬? 우리 큰딸하고 작은딸 이야기를 글로 쓰다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너그 동생이 처음 안경 끼던 날 좀 얘기해 주라. 엄마 눈길이 아닌 네(큰딸) 눈길로 본 그날 하루를 들려주라. 응? 미안하고 고맙데이.”



2023. 08.0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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