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로 -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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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6 딱딱하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글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4.30.

 

 

둘레에서 일방통행로는 꼭 읽을 책으로 꼽기에 장만했다. 지지난달에 처음 읽으면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 오늘 다시 펼쳐도 글이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읽다가 자꾸만 멈춘다. 옮긴 말씨까지 한몫 거들듯 딱딱하다.

 

글쓴이 발터 벤야민을 풀이한 글을 들춘다. 꽤 길고, 이분이 뭘 하고 뭘 생각해서 뭘 썼다는 뜻인지 종잡기 어렵다. 논문을 써서 냈더니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절로 고개를 끄떡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탓도 크다고 느낀다.

 

집안일을 하고서 다시 읽어 본다. 글은 꼭지 하나마다 짧다. 다음 글하고 이어가는 글이 아닌, 저마다 따로 노는 글이다. 글이름과 줄거리가 잘 와닿지 않는다. 글이름을 건너뛰고서 읽자니 오히려 줄거리를 어림할 수 있겠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분은 이렇게 한자로 얘기했을까? 어쩌면 라틴말을 많이 썼을는지 모르지만, 왜 옮긴이는 우리말로 생각을 풀어내려 하지 않을까? 딱딱한 글이고, 깔끔하지도 않다. 자꾸만 전쟁이 떠오른다. 책을 반쯤 읽다가 샛길로 빠진다. 드디어 책을 덮고 영화를 본다. 숨을 돌린다.

 

그런데 영화 하나를 다 보고서 책을 이어 읽으려고 펼쳤다가 또 덮는다. 골이 아파서 다른 영화를 본다.

 

에라 모르겠다. 읽다 만 책은 다음날 읽자고 생각한다. 오늘은 영화를 보자. 열두 시가 넘고 새벽 세 시가 넘어도 영화는 안 끝난다. 아홉째 이야기까지 보고 나니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이제 마지막 같은데 잠이 쏟아진다. 세 시간 자고 일어나 열째 이야기를 보니 열두째 이야기까지 흐른다. 마침내 다 보았다. 여덟 시간을 본 셈이다.

 

영화를 다 보고서 얼음을 먹는다. 다시 책을 펴서 꾸역꾸역 넘어가니 얼핏 실마리가 잡힌다. 글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이야기가 문득문득 나온다. ‘벽보부착금지라는 글은 퍽 마음에 닿는다. 한창 쓰는 글을 보여주지 말고 같은 시간 같은 종이 같은 펜으로 쓰라거나,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 지나가지 말고 적어 놓고서 펜에 자석을 붙이라는 말을 한다. ‘이야기()는 생각을 정복하지만 글쓰기(문자)는 생각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조금은 와닿는다.

 

끝줄까지 읽었다. 이제 참말로 덮는다. ‘일방통행로라는 책이름처럼 글쓴이는 홀로 한쪽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우길 줄 아는 글 같다. 가만히 바라보는 그림을 헤아려 본다. 내가 글 한 줄을 쓴다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둘레를 보듯이 쓸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보는 눈으로 글을 쓸 일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걸어온 길을 되새기면, 내 눈으로 내 하루를 쓰는 글보다는, 자꾸 다른 사람 눈길로 둘레를 보려는 마음이 짙었구나 싶다.

 

훌륭하거나 뛰어난 분들이 쓴 글을 따라가듯이 쓰더라도 내 글이 될 수 없다. 내 눈길이나 마음이 어리숙하더라도, 스스로 가만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동안, 나 스스로 오래오래 보는 동안,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배울 수 있다. 딱딱한 책을 다 읽고서 다짐한다. “나는 자랑하듯 쓰지 말아야지. 나는 말을 하듯이 써야지.”

 

2023.07.2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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