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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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4 달과 일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글

송무 옮김

민음사

2000.6.20

 

 

달과 6펜스는 2020.12.18 구미에 있는 삼일문고에서 샀다. 그날 세계문학전집을 한 꾸러미로 삼백스무 자락을 장만했다.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한 해 걸리고, 이틀에 하나 읽으면 두 해가 걸리리라 여겼다. 이 마음으로 읽으면 세 해쯤 넉넉잡아서 다 읽을 줄 알았다. 이제 여섯 달이 지나면 세 해째에 이르는데, 여태 펼치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달과 6펜스는 2021.1.7에 첫 쪽을 넘겼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틈이 책을 읽을 생각에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내 이 마음이 훅 꺼져버렸다. 이날은 저녁에 가게 다른 일꾼이 바코드가 있는 자리를 손으로 잡고는 여러 번 찍는 척하더라. 그러니까, 가게 물건을 마치 팔린 듯 찍찍 긁는 시늉을 하면서 빼돌린 셈이다.

 

다른 일꾼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 시시티비를 열 번쯤 돌려보았다. 그냥 넘어갈 수 없기에, 이이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튿날 가게에 십 분쯤 일찍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십 분 일찍 나오면 제 시간만 버리잖아요. 그렇게 일찍 나갈 수 없으니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요. 혹시, 제가 그거 먹은 일로 그러십니까?”

 

그거 먹은 일이라니, 아니 도둑질을 해놓고서 오히려 큰소리를 하네. 이이는 손전화 쪽글로 단순한 실수라고 얼버무렸다. 쪽글을 보고서 한참 할 말을 잊었다. 나는 대구 한켠에서 마을가게(마트)를 꾸린다. 혼자 가게를 볼 수 없기에 다른 일꾼을 시간제로 쓴다. 그래서 이 일꾼이 나가면 혼자 하루 내내 가게에 있어야 할 판이라서, 도둑질을 했어도 눈을 감아 주고서, 제발 제발 새마음으로 착하게 일하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빈 날이다.

 

그러고 보면, 달과 6펜스가 영 읽히지 않는데다가, 가게 일꾼이 도둑질을 하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하기에 도무지 책을 펼 마음이 아니었다. 한숨을 폭 쉬다가, 우리 집 책꽂이에 있는, 다른 달과 6펜스를 집었다. 민음사 판이 아닌 묵은 달과 6펜스는 시누가 예전에 읽은 낡은 책이다. 시댁 시골집에 있던 책을 가져왔는데, 오래된 달과 6펜스에는 한자가 많이 섞여 더 읽기 어렵다.

 

아무래도 이 책은 몇 해를 묵히고 나서야 읽을 수 있을 듯싶다. 그래도 줄거리라도 어림해 볼까 싶어, 책끝에 붙은 해설을 편다.

 

달과 6펜스는 화가 고갱 이야기를 풀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런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책이름을 처음 보았을 적에는, 어떤 달 이야기가 나올까, 6펜스는 달하고 어떻게 얽히려나, 무슨 뜻일까 싶어 궁금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을 지나 그믐달이 되는 마음이 흐르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6펜스라고 하는 영국 돈에 얽힌 이야기도 아니고, 글에는 달 이야기도 딱히 나오지 않는 듯 싶어, 책이름하고 고갱이라는 사람 이야기는 너무 멀리 떨어진 듯하다고 느낀다.

 

고갱이라는 사람은 그림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오직 그림 하나를 그리려고 집을 버리고 떠난 매무새가 의젓하거나 대견하다고 여길 만한가. 자꾸자꾸 더 멀리 외딴섬으로 옮기면서 그림을 남겼다는데, 무엇을 종이에 남기고 싶었을까. 다른(사회) 데에는 눈을 두지 않고서, 스스로 짓고 이루어서 펴고픈 뜻을 바라보기에 삶이 보람차거나 즐거울 만할까. (사회)이 어떻게 보든 아랑곳하지 않을 적에 예술을 꽃피울 수 있는 셈일까.  

 

(가정)을 버리고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들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돌아본다. 이렇게 바라보는 내가 꼰대 같은 아줌마 마음일는지 모르겠다. 하나를 가지려고 하면 둘을 잃어야 하는, 아니 버려야만 홀가분하기에 마음껏 넘나들면서 우리 삶 모두를 그림에든 글에든 바칠 수 있다면, 나로서는 참 어려운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보면 서술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소설은 더더욱 서술어가 멈춘 글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낱말로 작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쓰면 잘 읽힐 듯하다. 첫 장부터 설명하는 글이 턱턱 막혔다. 그나마 달과 6펜스는 사람 얼굴이 어떠한가를 가장 잘 들려주었지 싶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이야기를 편 책인데, 막상 이 글로는 그림을 그리는 삶을 잘 느끼기 어려웠다. 영어가 아닌, 한글로 옮긴 책을 읽은 탓일까.

 

책이름이 얼마나 크게 차지하는지 알 듯하다. 책마다 시집마다 책이름이나 글이름을 멋을 부려서 꾸미려고 하는 마음도 알 듯하다.

 

그런데, 해와 비와 바람과 숲과 들에 널린 풀꽃나무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글은 어쩐지 참 메마르다. 영어로 나온 글도 이랬을까. 글을 옮긴 사람 말씨가 녹아서 그럴까. 바람에 풀잎이 한들거리는 말을, 해가 하는 말을, 꽃이 하는 말을, 우리도 마음으로 받아적을 수 있을 텐데. 무딘 칼날로 종이를 잘라 엮은 책보다 더 아쉽다.

 



2023.07.27.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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