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197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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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2 불빛으로

 

촛불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글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1975.9.30.

 

촛불의 미학2019110일에 처음 읽었다. ‘등단이란 이름을 얻으면 글쓰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줄 알았다. 두 달이 지나자 슬슬 속이 바짝 탔다. 밤늦게 집에 오는데 길바닥과 담벼락마다 그림자 다섯하고 걸었다. 길마다 불빛이 등에서 내리쬐고, 달리는 자동차 불빛으로 여러 그림자가 나왔다. 담벼락에는 커다란 짐가방도 따라오고, 심부름꾼을 떠맡아 투덜거리고 들어온 날 이 책을 만났다.

 

책이름만 떠올리다가 오늘 다시 읽는다. 내가 얼마나 잘 읽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뭔가 들려주고자 하는 말을 잘 적지 못했지 싶다. 논문 같기도 하고 여느 시집 끝에 나온 평론을 읽는 느낌이다. 생각을 끌어낼 이야기도 없고, 외로운 마음을 받춰줄 이야기도 없고, 촛불이 어떻게 아름답다는 소리인지 딱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이런 시인에 저런 철학자들 이름만 줄줄이 들먹인다고 느낀다.

 

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다른 훌륭하거나 이름나거나 뛰어나다고 하는 가 한 말이라고 내세우면 책이 되고 논문이 될까? ‘내 목소리가 아니라 뛰어난 남이 적어 놓은 글을 옮겨놓아야, 비로소 흐트러진 글을 또렷하게 뒷받침하는가? 다른 어느 책을 읽어 보니, 촛불의 미학이 삶을 읽는 길에 이바지한다고 꽤 나온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안 와닿는다. 구름을 잡는 글만 가득한 듯하다.

 

초뿐 아니라 석유 난로나 연탄불이나 성냥불이나 호롱불이나 모닥불이나 가스불에서도 촛불처럼 불꽃이 일어난다. 모든 불꽃은 다르면서 닮았다. 가스통 바슐라르라는 분은, 촛불을 처음으로 글밭(문학)에 끌고 온 분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 삶 곳곳에 있는 숱한 불빛으로 스며들지는 않은 듯하다. 집안일을 하는 아줌마도, 아기를 낳은 아줌마도, 다 큰 아이들이 시집장가를 가고 나서도 반찬을 해주는 아줌마도, 마음에 촛불이 일렁이는 넋이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님도 노래를 한다. 시인이다. 풀꽃나무를 골고루 쓰다듬는 해도 노래하지만, 풀꽃나무도 노래를 한다. 한여름이면 바람도 붉은 가슴을 베푼다. 나무는 해를 먹고, 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높이 올라가고 춤춘다. 사람도 풀꽃도 나무도, 모두가 하늘을 보며 해님 곁에서 활활 타오른다. 춤추는 우리는 모두 촛불을 닮고 불꽃을 담고 해를 닮았다.

 

해는 불이다. 꽃도 해가 낳았다. 뜨거운 불씨를 참하게 삭여서 꽃을 피우며 해를 따른다. 쉽게 말하고 싶다. 쉽게 글을 쓰고 싶다. 어렵게 꾸미고 싶지 않다. 어렵게 풀이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하고도, 곁님하고도, 나 스스로하고도, 다들 해님을 품은 촛불처럼 불꽃처럼 타오르되 따뜻하게 품고 싶다. 출렁이는 불꽃처럼 춤을 추다가, 작은 불꽃을 오래 바라보다가, 마음에 불꽃처럼 튀어서 떠도는 말을 불을 훔치듯 가만히 옮겨서 노래를 하고 싶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글을 쓰고 싶다.

 


2023. 07. 2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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