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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들이의 비밀 일기 1 - 우당탕탕 철학 가족 ㅣ 생각을 여는 문 3
김성범 지음, 연제 그림 / 옐로스톤 / 2025년 11월
평점 :


<협찬도서>
'어린이들에게 철학적인 사고를 도와주는 책'일 거란 나의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이들은 이미 일상에서 충분히 철학하고 있었다. 되려 어른들이 그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이 책의 뿌리는 김성범 작가가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난 날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꾸준히 기록해 온 일기에 닿아 있다. 작가는 훗날 그 일기들을 다시 읽으며 비로소 발견했다고 한다. 그 속에 얼마나 재밌고 기발하며 특별한, '어린이 철학자'들의 보석 같은 생각들이 가득했는지를. <참들이의 비밀 일기>는 바로 그 발견에서 시작된 동화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단순한 창작물을 넘어 삶의 생생한 공기를 머금고 있다.
에피소드들은 낱낱이 날카롭고도 따뜻하다. 아빠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벽지에 그림을 그렸던 참들이가 "말속에는 속뜻이 따로 있을 수 있으니 잘 헤아려 들어야 한다"라고 깨닫는 대목에선 성장의 씁쓸한 이면을 본다. "엄마 아빠도 정치인이야"라며 부부 싸움을 단번에 종식시킨 아이의 일침은 어떤가. 본질을 꿰뚫는 아이들의 시선은 때론 어른들의 모순을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문득 우리 아이와의 순간들이 겹쳐 지나간다. 국기 게양 일마다 "왜 태극기 안 달아?"라고 묻는 아이 덕분에 함께 그려서라도 대문, 현관 곳곳에 붙인다. 그러면 부끄럽게도 잊고 살았던 당연한 가치들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작년 크리스마스엔 "아빠가 사주기 비쌀까 봐 산타 할아버지한테 피아노 사달라고 했어"라며 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배려하던 아이. 그 예쁜 마음을 어찌 실망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크리스마스 전날 갑작스러운 발언에 차마 준비 못 한 산타 할아버지는 결국 '입금'이라는 현대적 기술을 활용하여, 선물을 전해줬다는 후문이다.
이런 소중한 찰나들을 마주할 때마다 부모로서 멈칫하고, 찔리고, 때로는 깊이 감동한다. 하지만 동시에 밀려오는 슬픔이 있다. 아이의 그 빛나던 문장들을 다 기록해두지 못했다는 후회다. 분명 존재했던 그 수많은 '철학적 순간'들이 육아라는 치열한 일상 속에서 기억의 저편으로 휘발되어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닐 터다. 아이의 날카롭고 순수한 시선이 내 안의 굳은살을 깎아내고 나를 조금 더 나은 어른으로 만들어주었을 테니까. 사회화라는 과정 속에서 아이의 그 귀한 '날카로움'이 무뎌지지 않도록, 이제라도 아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
이 책은 아이를 가르치려는 부모가 아니라, 내 곁에 살고 있는 작은 철학자를 다시 발견하고 싶은 어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오늘부터라도 스마트폰 메모장에 아이의 엉뚱한 질문 하나라도 남겨봐야겠다. 훗날 아이가 자랐을 때, 이 책의 작가처럼 나도 "네가 이런 보석 같은 생각을 하던 철학자였단다"라고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