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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파도가 칠 때
조시온 지음, 이수연 그림 / 옐로스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 제공도서> 나는 지금 고요하다. 하지만 ‘평온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고요함은 마치 지쳐 발악조차 못하는 무기력에 가깝다. 너무 괴로워 멈추면 나아질 줄 알았건만, 바다 위를 부유하는 지금의 고요감은 이유 없이 만사가 귀찮다. 가끔은 차라리 파도가 치는 게 나을까 생각하지만, 힘이 빠진 지금의 나는 그 파도가 버겁기만 하다. 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조시온, 이수연 작가의 『내 마음에 파도가 칠 때』 속 주인공 ‘바다’는 걱정도, 무너짐도 모두 파도 탓이라 여긴다. 밀어내도 밀어내도 다시 밀려오는 파도가 싫어 몸부림치지만, 비켜갈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그러다 하얀 새의 말을 따라 파도 없는 바다로 향하지만, 결국 다시 머물던 곳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한 소년을 만나고, ‘바다’는 파도를 새롭게 바라보며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의 숨은 파도,
그 힘으로 나는
살아 숨 쉬는 세계를 만들지
— 조시온, 이수연, 『내 마음에 파도가 칠 때』 중에서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면서도, 읽는 이마다 다른 의미를 품게 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바다의 고요 속에 숨은 파도처럼, 겉은 잔잔해도 속은 버거운 물결을 감춘 채 살아가는 어른의 나를 발견했다.
어릴 적엔 감정이 목 울대쯤에 있었다. 숨을 조금만 고르지 않아도, 말 한마디에, 작은 일에도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물결처럼 일렁이며 쉽게 겉으로 드러났다. 금세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감정은 서서히 더 깊이 가라앉았다. 마흔이 된 지금은 그것이 명치쯤에 머무는 것 같다.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안에는 훨씬 큰 소용돌이와 짙은 어둠이 함께 자리한다. 겉으론 잔잔해 보여도 속은 여전히 바다처럼 출렁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속 주인공 ‘바다’가 다시 돌아온 자리에서 바라보던 파도가 선연하게 떠오른다. 그 물결은 여전히 깊고, 때로는 버겁지만, 이제는 그 깊이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마음에 파도가 칠 때』는 그렇게,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속은 수많은 물결을 품은 어른의 마음을 닮았다. 어른으로서, 혹은 마음 깊은 파도를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