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지. 요즘 있는 건 그때도 다 있었지.
나는 언제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엄마를 부축해 병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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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이후 사이언스 클래식 14
스티븐 J. 굴드 지음, 홍욱희.홍동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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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설적이게도 진화론의 아버지는, 생물의 변화는 생물과 주위 환경 사이에서 적응성이 증가되는 방향으로 인도되는 것이지 구조적인 복잡성이나 이질성의 증가에 의해 규정되는 추상적인 진보의 이념은 아니라고 인식해서, 절대로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 (책 본문 중)


작가는 다윈이 진화론을 만들어놓고도 (무려) 21년이 지난 뒤에야 발표했다는 사실로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그 후 그나마 친숙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거쳐 파리와 매미를 선보이더니 (무려! 6억 년 전) 선사시대로 훅 뛰어 들어가 개인적으론 본 적도 없는 생명체들의 번성과 멸망을 얘기한다. 하지만 생명체들만으론 성이 안 찼던지 지구를 통째로 흔들어대더니만 거기서 툭 떨궈진 인간이란 종을 놓고 한 무더기의 수다를 쏟아놓는다. 그렇게 끝이 난 진화론에 대한 한바탕 열변은 의외로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전문성이 가미된 부분에선 눈으로 들어간 글이 머리엔 도달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현상과 맞닥뜨리겠지만 그 정도는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작가의 얘기에 귀 기울이면 진화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고, 역사 속 다양한 진화론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양성을 만끽하고 가능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작가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만남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윈 이후'는 무려(이 단어 참 많이 쓰네...) 40년 전에 출판된 책이다. 그런데도 지금 시점에서 가볍지 않은 울림을 주는 건 작가의 지식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신의 전문 분야를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라는 학자도 대단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그런 관점이 여전히 요구되는 인간 사회 역시 참 대단하다. 하긴 진화론에서 다루는 시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40년은 새 발의 피도 안 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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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 - 하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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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소금알갱이처럼 점점이 뿌려진 하늘. 그뿐이다. 더 이상은 없다. 행여 하느님이 있어 별들을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하느님은 죽었다. 그는 온순한 인간들에게 지상을 모두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들이 경작한 건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불과했다. 약속은 농담이었다. (책 본문 중)


실존 인물인 베이브 루스가 책 첫머리에 등장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기존에 작가가 썼던 책들과 다른 장르의 소설이라는 것을. 그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상권의 절반을 읽고 나서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상권의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의 분량이 전개되는 동안 몰입하기 힘들었단 얘기도 된다. 하지만 방향과 가닥이 잡히고 역사 속 실재 사건들에 등장인물들이 휩쓸리면서 그 때부터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챈다.


책은 피부색에서 비롯된 거대한 차별과 외국계 이주민을 향한 반감, 이념에 대한 편견을 사방에 뿌려 놓고선 그 안에 다양한 개인들을 던져 놓는다. 긴장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도 모자라 온갖 정치적 술수와 함정까지 도사린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부조리한 어떤 것을 상대로 정면으로 맞서기도 벅찬 판국에 조금만 삐끗해도 아예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이다. 눈앞에 펼쳐진 폭력의 현장을 보고서 신은 죽었다고 생각한들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세상인 셈이다. 그러나 다행히 역사가 그러했듯이 책은 몇몇 등장인물들에게 앞길을 열어둔다. 그것이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멈추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소설, 191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자꾸 현 시대의 미국과 겹쳐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도와 대상의 차이는 존재하나 본질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긴 이게 어디 미국만의 문제일까? 시스템을 갖추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 집단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차별과 혐오와 편견, 여기에서 비롯된 집단 광기. 시선을 멀리 둘 필요도 없다. 지금 이 땅 덩어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내용을 자꾸 돌이키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씁쓸함. 사회성 짙은 역사 소설이 지닌 장점이자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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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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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됐나? 새벽에 일을 마치고 남은 교통편이라곤 택시뿐이라서 마침 대로변에 주차해 있는 택시 문을 열고 행선지를 얘기했더랬다. 그랬더니 기사분 하시는 말씀이 '들어와 앉아서 얘기하지 왜 그렇게 어렵게 서서 얘기해요?' '아, 가끔 안 가겠다고 하는 택시도 있어서요.' '타세요.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일부 그러는 기사들이 있어요.' 사실 승차 거부와 그로 인한 불만을 많이 들어왔던 터라 나 역시 택시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진 않았었다. 하지만 10년 전 쯤 장사를 시작하고서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술 마신 사람들(나랑 아무 관련 없는 타인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고 그 뒤로 내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됐다. 때론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것이 승차거부라 하더라도. 물론 승차거부가 꼭 술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의 즐거움이 곧 내 즐거움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최소한 그 부분만큼은 기사분들 심정이 이해가 되더란 얘기다.


시작부터 택시 얘기만 한 가득이다. <고양이>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가 택시 기사던가? 아니다. 단지 '이해'와 관련된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야만 그나마 자그마한 변화라도 가능하다는 거.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내가 당해보니 기사분들 심정이 이해돼요. 그러니 계속 상황 봐서 승차 거부하셔도 됩니다. 언젠가는 잡아타겠죠. 아님 걸어가든가.' 또는 반대편 기사분 입장에선, ' 나도 술 마셔봐서 아는데 원래 그래. 술이 들어가면 지금껏 받았던 스트레스가 분노와 허세로 만발하거든. 그러다 취하면 개 되는 거지. 이해한다고.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이해만 하고 바뀌는 게 없다면, 중요한 발걸음은 떼었지만 정작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적극적 소통 없이 회의와 불신에 머문다면 잘해야 자비로운 부처님 가운데 토막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될 뿐이다. 소설 속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을 통해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받아들여 어떤 고양이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정도가 높다. 그는 위기에 빠진 세상에서 자신의 특징을 살려 다른 종들과 화합을 꾀하는 기초를 제공하지만 막상 인간을 믿지 못한다.


"만약 인간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어쩌지?"(책 본문 중)


그래서 그는 향후 지금보다 주체적인 고양이 세상을 계획한다. 그의 의문 저 너머엔 이런 의미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진화는 물고기, 공룡, 인간의 방향으로 진행돼 왔어." 갑자기 피타고라스가 경배자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인간 다음은 누굴까?"(책 본문 중)


다른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고양이 바스테트는 피타고라스와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다. 피타고라스의 제자이자 연인이면서 조력자인 바스테트지만 그는 피타고라스와 다른 선택을 하고자 한다. 자신만 가능한 쌍방향 소통을 통해서 반복되는 실수의 여지를 줄여 보겠다는, 그래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을 집사로 두고 삶을 영위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과 함께 (2보 후퇴 후) 다시 3보 전진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선택. 변화의 가능성이 큰 쪽은 어디일까?


사람들은 현재 여러 방면에서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론 알게 모르게 그 다양성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사는 중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다른 세상을 품을 수 있지만 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봐 주길 바라는 게 정말이지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한 시기다. 서로가 지닌 세상을 이해하고 그 간격을 좁힐 수 있다는 믿음 또한 필요하다. 어디 그 뿐인가. 소통을 위한 적절한 수단과 요령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바라보는 이 책은 제목만 고양이일 뿐이지 사람들의 얘기나 다름없다. 너무나 다른 고양이와 사람, 개, 쥐 등이 한데 뭉쳐 다양한 상호 작용을 보여주는 이야기엔, 결국 다른 종만큼이나 간극이 벌어진 다양한 사람들이 때론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이해하지 못해 충돌하고 때론 소통에 성공해 기뻐하는 모습이 투영된 셈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론... 인간다운 고양이 피타고라스보다 고양이다운 고양이 바스테트의 선택을 더 응원해본다. 인간다운 고양이가 만든 고양이 세상은 왠지 지금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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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00년 후 - 22세기를 지배할 태양의 제국 시대가 온다
조지 프리드먼 지음, 손민중 옮김, 이수혁 감수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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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할 때 상식은 거의 어김없이 우리를 배반한다

(본문 중에서)


2009년에 이 책이 출간됐으니까 ‘100년 후’라는 제목대로라면 대략 21세기 초부터 22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국제 상황을 예측해 놓은 셈이다. 이제 10년 지났으니 아직 90년이 남았고, 따라서 책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이른 감이 있다. ‘지정학’과 ‘인구’라는 두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예측을 전개했고, 그 방향성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하다. 다만 작가도 언급했지만 권력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볼 때, 최근 수 년 사이 등장한 독불장군 스타일의 권력자들로 인해 그 전개가 속도 조절이 될지 아니면 방향이 아예 틀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찌 됐든 국제 역학이나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책의 내용이 비교적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21세기 중반 이후 내용은, 특히 전쟁과 관련된 부분은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지금부터 30년 뒤에 일어날 일이니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생길지. 1980년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아빠 심부름으로 담배를 사러 다녔고, 물은 집에서 보리차를 끓여 먹었더랬다. 그런데 1990년엔 이미 담배 심부름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짓이 됐고, 물은 페트병에 담겨 마트에서 사고파는 물건이 되었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의 유효기간이 10년 정도라면 앞으로 30년이 흐르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몰락하고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듯하다. 10년 후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때, 그로부터 10년 후에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될지, 그냥 책장 속에 묻고 잊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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