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 - 하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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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소금알갱이처럼 점점이 뿌려진 하늘. 그뿐이다. 더 이상은 없다. 행여 하느님이 있어 별들을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하느님은 죽었다. 그는 온순한 인간들에게 지상을 모두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들이 경작한 건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불과했다. 약속은 농담이었다. (책 본문 중)


실존 인물인 베이브 루스가 책 첫머리에 등장했을 때 알아챘어야 했다. 기존에 작가가 썼던 책들과 다른 장르의 소설이라는 것을. 그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상권의 절반을 읽고 나서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상권의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의 분량이 전개되는 동안 몰입하기 힘들었단 얘기도 된다. 하지만 방향과 가닥이 잡히고 역사 속 실재 사건들에 등장인물들이 휩쓸리면서 그 때부터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챈다.


책은 피부색에서 비롯된 거대한 차별과 외국계 이주민을 향한 반감, 이념에 대한 편견을 사방에 뿌려 놓고선 그 안에 다양한 개인들을 던져 놓는다. 긴장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도 모자라 온갖 정치적 술수와 함정까지 도사린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부조리한 어떤 것을 상대로 정면으로 맞서기도 벅찬 판국에 조금만 삐끗해도 아예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곳이다. 눈앞에 펼쳐진 폭력의 현장을 보고서 신은 죽었다고 생각한들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세상인 셈이다. 그러나 다행히 역사가 그러했듯이 책은 몇몇 등장인물들에게 앞길을 열어둔다. 그것이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멈추지 않고 나아갈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소설, 191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자꾸 현 시대의 미국과 겹쳐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정도와 대상의 차이는 존재하나 본질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긴 이게 어디 미국만의 문제일까? 시스템을 갖추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 집단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차별과 혐오와 편견, 여기에서 비롯된 집단 광기. 시선을 멀리 둘 필요도 없다. 지금 이 땅 덩어리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내용을 자꾸 돌이키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씁쓸함. 사회성 짙은 역사 소설이 지닌 장점이자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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