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이다. 지난주에 오르고 이번 주는 처음이지만 날짜로는 사흘밖에 안 지났다(월요일에 썼던 글이다). 그런데 상황이 완전 다르다. 푸르름의 밀도가 어마무지하다. 식물들이 조금만 뭉쳐있어도 그 너머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봄의 생명력은 정말이지 놀랍다. 소나무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중력을 거스르듯 위쪽으로 꼿꼿이 선 수꽃들이 머리를 잔뜩 쳐들었다. 조만간 이들이 터지면서 꽃가루를 퍼뜨리겠구나.




소나무 수꽃의 생김새 때문에 자연히 이 산 곳곳에 쌓아 올린 조금만 돌탑들이 떠오른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쯤은 진심으로, 반쯤은 재미로 돌들을 포개놓은 30cm 미만의 수많은 탑을. 산을 짓누르는 그 많은 상념을 소나무가 빨아들여 공기 중으로 날려 보내는 상상도 해본다. 훨훨 날아가라. 날아가서 그 욕망을, 그 바람을 흩뜨려서 세상의 무게를 덜어내라. 그렇게 해서 모두의 어깨가 펴졌으면, 모두가 허리를 곧추세울 수 있으면. 그럼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아니, 아니다. 이건 애초에 사람 중심 얘기구나. 그냥, 이 산에서 함께 하는 존재들을 위해, 하늘을 우러러 기원한다고 하자. 땅의 기운을 모아, 식물들의 생명력을 모아, 고양이들의 투정을 모아. 그 기원을 세상에 퍼뜨려 세상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하는 걸로.


내려오는 길. 발밑을 바라보며 걷는데 저만치서 들려오는 소리. 할머니한테 갈래?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듯하다. 아이는 걸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기 다리보단 남의 다리를 이용하는 걸 더 좋아하는 나이로 보인다. 할아버지한테 안겨 있다 할머니의 등으로 옮겨지는 순간. 버둥대던 아이가 헤헤하면서 웃는다. 할아버지 가슴팍보단 할머니의 등판이 더 좋은 건 아이들의 공통된 취향인 거 같다. 이눔 보소, 이눔. 할머니가 투덜대지만, 그 안엔 당신만을 위한 마음 따윈 없다.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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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빨래가 마무리됐다. 이불, 베갯잇, 패딩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한 주 한 번씩 겨울 빨래들을 욱여넣었더니 이제야 끝. 게으름도 살짝 들어갔었고, 다른 일들도 했고. 밀려 밀려 롱패딩을 마지막 주자로 더 이상의 겨울 빨래는 없다. 롱패딩을 세탁기에 돌릴 때마다 드는 의문. 저게 지금 세탁이 되는 거야, 아님 물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저 덩치를 전체 손빨래할 객기는 없는데. 다행히 어두운 계통이라 매년 입고는 다닌다만….


내 롱패딩은 쓰임이 하나 더 있다. 겨울에 열심히 일했으니 푹 쉬라고 고이 개어 장롱에 모셔 두는데 쉬질 못한다. 이 상태의 패딩을 푹신하고 따뜻한 방석쯤으로 생각하는 녀석이 있어서. 다른 쉴 곳, 잘 곳 많은데도 장롱문을 열어달라 보채고, 못 이긴 척 열어주면 롱패딩에 몸을 맡긴다. 양복을 제외하면 내 옷 중에 제일 비싼 건데. 빨기도 힘든데. 귀여워서 차마 욕은 못 하겠고, 다 내 죄려니 하고 한쪽 문을 닫아준다.


이만치 걸어왔는데 안 따라 나온다. 컴컴하니까 그대로 잘 모양이다. 고양이는... 모르겠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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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야 이 씨.


새벽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자던 고양이가 내 배를 밟고 지나간 탓이다. 4kg의 체중이 온전히 전해지진 않았지만 잠을 깨우기엔 충분하다. 아깽이 때 놀아달라며 자는 나를 암살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다 큰 이후론 처음이다. 아마도 실수겠지. 갑작스러운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녀석도 후다닥 달려 나가더니 식탁 의자 밑에서 내 동태를 살핀다. 새벽 2시쯤.


얼마 전, 누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었는데 차에 치였다. 건너기 전 좌우 확인하고 절반 넘게 건넌 상황에서 좌회전 차량이 그대로 들이받은 모양이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치료가 오래 걸릴 듯하다. 게다가 사고가 난 시점이 오랜만에 일을 해보려고 마음먹고 막 일자리를 구한 때였다. 하지만 사고로 그 일도 어긋나버렸다. 건널목에서 사고라 형사 사건으로 넘어갈 수 있어 담당 형사도 만났고, 상대방 변호사한테 연락도 받았단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는 중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침대에 걸터앉아 고양이를 째려본다. 다른 때 같으면 온몸을 드러내고 나를 쳐다보겠지만, 지금은 의자에 걸쳐놓은 옷자락 아래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다. 자기가 뭔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나만 잘한다고 해서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해서 모든 가지를 쳐낸들, 새들이 와서 나무를 쪼고, 멧돼지가 와서 밑동을 들이받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등을 부딪쳐대는 것을 막을 순 없다. 내가 아무리 침대 위에서 조신하게 잔들, 고양이가 지그시 나를 짓밟는 걸 막을 순 없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고양이.


일어난 김에 간식이나 줘야겠다.


까까 먹자, 까까.


ㄲ 발음에 귀가 쫑긋하더니 내 발걸음을 따라 종종종 쫓아온다. 꼬리가 바짝 올라가 있다. 기분 좋단다. 나한텐 날벼락이었는데 이 녀석한텐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꼴이다. 세상일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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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1학년 때였나? 정확한 건 아닌데 아무튼 10살 되기 전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인기몰이를 하자 구단들은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건 MBC청룡. 하지만, 이 구단은 10살 이상이란 나이 제한이 있었다. 아니, 왜? 10살 미만은 어린이가 아니라 애새끼냐? (거친 표현은 죄송. 그 당시 난 화가 무척 많이 났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한 게 OB베어스. (두산 팬들에게 죄송. 꾸벅) OB 점퍼 입고 MBC 응원했던 꼬맹이 시절.


누나가 결혼하고 집을 나가자, 그 방은 내 차지가 됐다. 그곳엔 침대도 있었고, 전축도 있었다. 하지만 전축은 그 후로 몇 년 동안 장식품이었다. 난 음악도, 라디오도 듣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나? 엄마가 나를 데리고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서 음반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그때 가게 주인분이 추천한 가수는 이문세와 유재하. 내가 고른 건 이문세. 이유는 기억이 안 난다. 엄마는 턴테이블 사용하는 법, 라디오를 듣는 법, LP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내게 새로운 세상을 하나 추가시켜 주셨다.


20대 초중반이었던가?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본 게. 그 후 난 영화에 푹 빠져 들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고, 시대도 가리지 않았다. 글이라면, ‘오늘은 참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같은 일기에서 멈춘 상태였는데, 영화를 본 후로 감상을 적기 시작했다. 30대에 들어선 DVD를 사 모았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었고, <가을 소나타>는 내겐 무시무시한 영화였으며, 히치콕의 영화들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영화였다.


미니언즈는, 아니, 미니언즈 미니어처는 편의점 이벤트에 당첨돼서 받은 상품이다. 편의점만 20년 가까이했지 아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감정 소모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졌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은, LG를 응원하지만, 화가 날 정도로 하진 않는다. 내게 많은 세상을 열어주셨던 분은 서서히 시간에 잠식되어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이젠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는 예전만큼 보지 않지만, 아직 이렇게 글은 쓴다. 분명 ‘오늘은 보람 있는 하루였다’ 수준은 벗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알바를 하러 왔던 아이들은 이제 30대 후반이 됐고, 누군가는 엄마가 돼서 자기 아이의 이름을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 고양이. 햇볕을 쬐던 녀석은 뭐가 궁금했는지 갑자기 창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다. 벌레라도 본 건가? 이 녀석은 예측불허다.


멀리 창밖을 내다본다. 시간이 흐르면 이 풍경들도 바뀌겠지. 미래를 향한 문장은 짧을수록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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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와 마루 한복판에 우뚝 선다. 이런. 주변을 둘러보지만,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베란다로 나가서 좌우를 살핀다. 역시, 없다. 안 좋다, 안 좋아. 등줄기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본다. 마루로 들어와 다시 여기저기를 탐색.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고양이의 네모난 박스형 종이 스크래쳐. 고양이는 그곳에 없다. 한참을 보다 결심한다. 그래, 저거다.


=====


작년 5월 말이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척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짐을 빼야 할 일이 있어서 한 달 가까이 생필품을 제외하곤 물건을 주문하지 않았다. 있던 짐마저 버리는 중이었고. 택배가 오지 않으니 당연히 상자도 생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재활용 쓰레기를 일주일 동안 집안에 모아뒀다가 버려야 하는데 내 경우는 그것들을 상자에 분류해서 담아뒀던 것. 종이상자가 없으니 분류해 둘 곳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고양이 스크래쳐. 박스 모양이라 무언가 담을 수 있었거든. 어차피 이 스크래쳐는 고양이가 잘 쓰지도 않았고.


그때의 결핍이 문제였을까? 요즘 베란다 한쪽에 쌓인 종이상자들을 볼 때마다 살짝 당황스럽다. 저렇게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여러 잡생각이 떠오른다.


종량제 봉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중에 저 상자에 쓰레기를 담아 버릴까? 안 되겠지?


상자를 못 버리는 거 보면 전생에 나, 고양이였을까? 근데 저 녀석은 상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녀석이 전생에 내 집사였나?


쓸데없는 생각 하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머쓱해진다. 이 녀석, 거의 나를 감시하는 수준이다. 내 생각까지 읽진 못할 거야. 흠.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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