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갈대다.“
생명에 경중이 있을까? 질문을 던졌지만 사실 우린 선택에 따라 차등을 둔다. 그리고 선택과도 상관없이 차등을 두기도 한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죽인 곤충의 수는 얼마나 될까? 젊은 시절, 공원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다가 유제가 진열된 냉장칸에서 몸이 굳은 나방과 마주친 적이 있다. 덩치가 정말 커서 고양이 발만 했고, 처음 발견하고 놀랐던 사람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나방을 숱하게 빗자루로 때려잡았지만, 그 나방은 그럴 수가 없었다. 조심스레 꺼내 바깥에 놓아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생명력과 부피가 비례 관계였던가? 생명은 그저 내 손안의 감각에 따라 그 묵직함이 결정되는 것일까?
-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다.“
인간이 이기적이라 그럴 것이다. 내 삶의 반경에 들어와 있다면, 그 안에서도 나와 가까울수록 소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방의 경우는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감각과 감정에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죽였을 때 자신이 느끼게 될 실질적인 감각과 받아야 할 감정적 충격을 고려해서 대상을 판단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생명의 경중을 따지는 게 아니라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다. 차바퀴에 깔리는 비둘기 몸뚱이의 빠각 소리는 내 삶의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저 멀리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나 굶주림은 영역 밖의 일이다. 이때 비둘기의 생명은 무겁지만, 사람의 생명은 가볍다. 잔인할 정도로 우린 이기적이다.
- AI가 던진 문장
다짜고짜 클로드에게 내가 그동안 썼던 거 말고 아무 문장이나 하나 던져보라고 했다. 그러자 내놓은 문장이 바로 파스칼의 문장이었다. "인간은 갈대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조금 쉬운 길을 가보자고 글감을 요구했던 거였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파스칼이라니. 갈대밭을 본 적이 있다. 갈대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바람이 불 때 그들 전체가 일구어내는 울림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바람에 따른 그 일사불란함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저들이 이기적인 인간이라면?
젊었을 때, 인간의 이기심을 맞닥뜨리고 부정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 문 너머엔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간으로 인해 절망했지만, 열쇠 구멍으로 엿본 그곳엔 분명 희망이 있을 거라고. 그 희망 역시 인간일 거라고. 결국 문을 열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고 동시에 더 유연해졌다. 그리고 절망과 희망은 여전히 똑같이 존재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기적이며 뻔뻔하기까지 한 인간들은, 생명마저 나를 중심으로 놓고 보는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에 이끌려 어디로 우르르 몰려가는 걸까?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 파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