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처음 오를 때가 생각난다. 둘레길만 산책하듯이 돌다가 문득 올려다본 정상이 궁금했다. 올라가 보자. 그런데 웬걸. 눈만 살짝 옆으로 돌려도 저 아래쪽에 보이는 바위 암벽과, 발바닥에서 미끄러지는 자잘한 모래 알갱이들 덕에 기가 눌리고 말았다. 그 상태로 도착한 곳이 하필이면 해골바위. 이름도 으스스한데 이곳은 까마귀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주요 등산로가 아니라 사람은 나 하나뿐. 아주 가까이 날아다니는 까마귀들과 그들의 울음소리는 꽤나 위협적이었다. ‘꺼져라, 인간.’ 내겐 그렇게 들렸다.


“그래, 간다, 가! 아우, 치사해서….”


너희들이 무서워서 가는 게 아니라 산에 기가 눌린 거야. 호기롭게 외치고 속으로 웅얼댔지만, 진실은 까마귀가 무서웠다. 처음 오른 산에 기가 눌린 것도 사실이고.


그 줄행랑이 2년 전 9월쯤의 일이다. 지금은 아찔한 시야에 익숙해져서 무덤덤하게 다닌다. 아마 익숙함의 범위를 벗어나면 또 다르겠지만. 발밑만 보고 다니던 그때는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자주 하늘을 보곤 하는데, 시야에 새들이 잡혔다. 바람이 아주 많이 부는 날이었고, 여름인데도 땀이 빠르게 식을 만큼 바람이 강했다. 그 바람 속에서 새들이 큰 반경으로 하늘을 휘젓는 중이었다. 한 부류는 까마귀, 다른 한 부류는 아마도 황조롱이. 아마도. 덩치가 더 큰 까마귀들은 비행이 힘차고 그만큼 거칠다. 서너 마리씩 한꺼번에 움직였고, 착륙 지점에선 날개를 편 상태로 바람을 타며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내려앉았다. 이 바람 속에서 그 좁은 나무 꼭대기에. 반면 황조롱이(아마도)는 부드럽고 날렵하다. 더하고 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저런 느낌일 거다. 게다가 저 높은 하늘에서 바람을 탈 땐 핀으로 고정해 놓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한참을 넋 놓고 보고 있자니, 까마귀가 영역에 들어온 황조롱이를 내몰려 하는 분위기였다. 서로 엉켰다가 멀어지고, 다시 휘몰아쳤다 점이 된다. 푸른 화폭에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힘이 넘치는 검은 붓질과 부드럽고 발랄한 펜의 놀림을 보는 듯해 멍하니 구경만 했다.


나를 다시 현실로 끌어낸 건 한쪽 시야 구석에 잡힌 하얀 뭔가의 움직임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까치가 보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정상 쪽으로 삐뚤빼뚤 힘겹게 날아가고 있었다. 순간 낮술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흔한 아저씨의 뒷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비둘기와 함께 도시를 양분한 새는 까치다. 도시에선 너희들이 극성이지만 산에선 까마귀 발밑에도 못 미치겠구나. 산 정상 쪽으로 발걸음을 잡는다. 훌륭한 공연을 봤고, 코믹한 막간극을 봤다. 정상에 가면 모지리가 피날레를 장식해 줄 것이다. 기대를 해 본다. 뭐, 코미디일 가능성이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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