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한쪽 끝에 창고처럼 쓸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다. 문을 여닫을 수 있게 해놓았고, 그 안에는 고양이 화장실 여분과 모래, 빈 상자들, 집수리할 때 쓰고 남은 벽지와 타일들이 보관돼 있다. 이 집구석 모든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꽉 찬 고양이는 어떻게든 이 안을 탐색하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러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때마다 문을 열어주지만, 문만 열릴 뿐 들어갈 수는 없다. 내가 6kg짜리 고양이 모래와 빈 상자를 이용해 대충 막아두었거든. 무엇보다 이 안까지 청소하기 귀찮아서 고양이 출입 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기를 쓰고 머리를 쑤셔 박아 넣고, 점프를 시도하며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다. 그럴 때마다 난 녀석의 몸뚱이를 붙잡거나, 머리통에 뽀뽀를 날리는 식으로 방해하고.
얼마 전, 박스를 쓸 일이 있어서 하나를 꺼내다가 어설프게 쌓인 박스를 촘촘하게 정리했다. 해놓고 보니 고양이가 머리를 들이밀 틈조차 없을 정도다. 뿌듯한 마음에 고양이를 호출해서 자랑한다. 어떠냐? 들어갈 수 있겠냐? 여기저기 살피던 고양이는 상자 쪽에선 가능성을 포기하고 아래쪽 고양이 모래 상품 쪽을 노린다. 머리부터 들이밀고 어찌 해보려 하지만 6kg짜리가 스크럼을 짠 듯한 모양새라 턱도 없다. 터덜터덜. 집사 승. 이 이후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다시 도전하겠다는 고양이에게 문을 열어주다가 모서리에 고양이 얼굴이 콕 찍히는 일이 있었다. 그 뒤로 고양이는 내가 문을 열어주려 하면 얼른 도망간다. 사실 콕 찍히기 전에도 이미 예전 같은 열정적 도전은 하지 않았다.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꽁무니를 빼는 녀석과 테트리스 하듯 맞물린 상자들을 번갈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40년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친구는 나름대로 허점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땐 아침마다 늦잠을 자서 내가 깨워줘야 했고, 지금은 일에 치여서 만날 때마다 한탄이다. 대공원 그 아저씨는 얼추 알게 된 지 10년쯤 되어 가는데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스스로 피곤하게 만든다. 다른 오래된 인연들을 돌이켜봐도 어딘가 비어 있는 부분이 있고, 그곳에 내가 설 자리가 있다. 나 역시 상대방 처지에선 마찬가지일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관계라는 게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리는 없으니까.
상자를 좀 삐뚤빼뚤 놓을까? 뭐, 언젠가는 비뚤어져서 틈이 생기겠지. 무엇보다 녀석은 본능과 경험의 생물이라서 당분간 문콕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아쉽네. 머리통에 뽀뽀를 갈길 기회가 줄어들어서.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