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려졌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슬슬 비를 마중 나올 준비하는 모양이다. 오전만 해도 제법 해가 있었는데. 마루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기분이 우울해진다고 투덜대다 픽 웃고 만다. 외출하고 들어와서 해가 너무 뜨겁다며 불평한 게 고작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변덕이 아주. 고양이를 힐끗 본다. 베란다에 내놓은 소형 캣타워에 턱을 괴고서 잠이 들었다. 졸졸 계속 쫓아다니더니 피곤할 법도 하다. 일관되게 관심과 까까를 요구하는 녀석이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는 변덕스럽지는 않은 건가?
사람들이 한결같음을 꿈꾼다는 건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를 불렀고, 파도에도 굳건한 바위를 그렸다. 사람도 그것들 같았으면 해서. 그런데 무엇을 위한 한결같음일까? 그저 존재할 뿐인 대상에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면서까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영화 대사에 공감한다면 한결같은 사랑이나 헌신을 원했을 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시대엔 독립 국가가 지속되길 바랐을 거고, ‘아니 되옵니다, 전하’를 외쳤던 시기엔 유교 사상이 영원하길 염원했을 거고. 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너무 뜬구름 잡나? 어떤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고양이가 캣타워에 달린 공을 잡으려고 열심히 앞발을 놀리고 있다. 같이 놀아줄까 싶어서 공을 살짝 흔들었더니만 바로 관심을 접는다. 이건, 변덕이 아니라, 청개구리 심보다. 판 깔아주면 안 하고, 이리 가라면 저리 가는.
요즘 시대에 맞는 한결같음이라면, 주식시장이 한 방향으로만 쭉 움직인다든지, 돈벌이는 상향, 세금이나 공과금은 하향 곡선을 일관되게 그린다든지. 실용적이고 괜찮은데. 세상도 변하니까 원하는 것도 변하는 게 당연하다. 내 주식이 오른 것도 아닌데 괜히 헤벌쭉 웃다가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입을 다물고 정신을 차린다. 고양이가 또 공을 가지고 논다. 이 녀석, 이거 뭐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일세.
꼬리말) 날씨 때문에 한 달 전에 썼던 글이라는 게 자꾸 티가 난다. 글들을 보니 한동안은 그럴 듯. 날씨 얘기를 쓰지 말야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