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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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그 시간은 어디 안 가고 다 네 거야. 그런 걸 많이 품고 살수록 병이 든다. 병이 별 게 아니야. 걸신처럼 시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게 다 병이지.

(책 본문 중에서)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책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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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좀 나갔다 올게요. 여기 있음 미처버릴 거 같아. 내일 아침에 들어올 거니까 찾지 마세요.

늦은 밤, 한바탕 난리굿을 피운 후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도망친 건 아니지. 난리굿의 원인을 내보내고 적어도 내일 낮까진 오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나온 거니까. 그렇게 위안하면서 밤거리에 섰다. 어딜 가야 하나. 떠오른 곳은 딱 하나뿐.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질문부터 한다.

나 오늘 밤 하루만 너 있는 곳에서 자도 될까?

그래. 근데 나 내일 시험이라 밤샐 건데 괜찮겠어?

. 상관없어.

지금 올 거지? 기다릴게.

초등학교 5학년부터 친구였던 녀석.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바로 대답해 준 녀석에게 고마울 뿐이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도망칠 곳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도망친 거 맞네.

 

20대가 되면 달라질 거란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어찌해서 닥친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어차피 그 문제의 뿌리는 그대로일 테니까. 나는 나인데, 나는 내 이름 석 자로 세상에 존재하는데, 왜 나의 시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등 떠밀리듯 흘러가는 걸까? 지금처럼 내 두 발로 땅을 걷듯이 내 시간도 내 의지대로 흘려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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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주고받은 문자를 다시 읽어보자, 한숨만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지? 어이없거나 하진 않았다. 오랜만이긴 하지만, 분명 다른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나 익숙했으니까. 화가 나지도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불살라버렸으니까. 그냥, 두려웠다. 하나씩 하나씩 과거의 흔적들이 돌아오고 있었거든. 잠을 설치고 숨이 막히고 시간이 떠내려갔다. 또다시. 20대의 그 시절처럼.

 

내가 장사를 그만둔다면 당연히 그건 돈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결국 돈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거. 내가 끝을 낼 수 있다는 거. 과거의 유행이 재유행하듯 과거의 유령이 불현듯 나를 덮쳤다. 그 유령이 얼마나 치가 떨리게 대단했던지 20년 가까이 해왔던 생업을 때려치우겠다고 결심하는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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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인 내가 20대인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너무 발버둥 치지 마. 앞으로 20년은 그렇게 살아야 하거든. 너무 미워하지도 마. 20년 후 넌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단 걸 이해하게 돼. 너무 자책하지도 마.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해결 불가능한 일이니까. 너에게 하룻밤을 내어줬던 그 친구는 그 후로도 쭉 네 곁에 있으면서 나이 들어감을 투덜댈 거야. 고양이도 한 마리 생겨. 너를 귀찮게 하겠지만 너에게 습관처럼 찾아들던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게 해줄 거야. 네가 중학생 때 너에게 신비로움과 웃음을 선사했던 아기들은 훌쩍 커서 따뜻함과 강인함으로 너를 놀라게 할 거야. 그렇게 친구들과 고양이와 가족과 함께 넌 너의 시간을 갖게 될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도 마. 언젠간 오롯이 너의 두 발로, 너의 의지대로 너의 시간을 걸어갈 거니까.

 

÷


책의 형식을 빌려 내 얘기를 적어봤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 인물의 내면에 동화되고 공감하는 걸 넘어서서 언제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만의 경험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서 참으로 고마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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