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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40대가 되면서 느꼈던 건 회복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였다. 2, 30대엔 단순 근육통으로 일주일 안에 나을 거를 40대엔 한 달 가까이 통증과 불편함을 인식하면서 살았다. 그 덕에 상비약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예전엔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1순위였는데 40대 어느 지점부터 파스가 굳건히 1위 자리를 꿰찼다. 큰 파스, 작은 파스, 뿌리는 파스, 바르는 파스. 종류도 다양하다. 그럼, 50대는?
아침에 눈을 뜬다. 젊은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람이 없어도 8시 전에 잠이 깬다. 잠이 줄었다. 왜일까? 반환점을 돌고서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라는 신의 뜻일까? 아, 몸이 굼떠졌으니,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할 거라는 신의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러 간다. 쪼그리고 앉을 때도 예전 같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무릎을 굽힐 때마다 '아우'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체중이 실린 채 관절을 한 번씩 쓸 때마다 몸이 질러대는 비명 같은 거다.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 임자인 고양이가 어느새 쫄래쫄래 쫓아와 근처에 앉아 있다. 내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녀석이지만 그만큼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녀석이다. 이제 4살. 한창때다. 한창때도 고양이는 놀고먹는다. 나도 저러고 싶은데...
고양이 빗질하고 간식 주고. 그 와중에 내 몸은 숱하게 비명을 지른다. 간신히 다 끝내고 기지개를 켜는데 왼팔이 올라가다 만다. 오십견이다. 쉰이 되자 귀신같이 알고 찾아온 오십견은 먼저 오른쪽 어깨를 차지했더랬다. 운동을 잘못해서 다쳤는데 근육이 굳으면서 팔이 올라가질 않더구먼. 머리를 감는 것도, 옷을 벗는 것도, 하다못해 왼쪽 몸 어딘가를 긁으려 할 때도 나는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내 팔로 무언가를 하는 게 이렇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까? 오른쪽 오십견은 다행히 1년 정도 머물다 떠났다. 그런데 떠나자마자 뭔가 아쉬웠는지 이번엔 왼쪽 어깨에 스며들었다. 정말 우습게도 왼쪽 오십견을 불러들인 건 잠을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왼쪽 어깨를 깔아뭉개듯이 잠을 잤던 거다. 그래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옷을 벗고, 몸을 긁고…. 그러고 있다.
유연한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내 우스꽝스러움은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심술이 났을까? 고양이를 쳐다보다 저 녀석 발톱을 잘라야겠단 생각을 한다. 처음 입양했을 때만 해도 발톱깎이만 준비하면 됐는데 작년부터 하나가 더 추가됐다. 그건 바로 돋보기안경. 갑자기 고양이 발톱이 잘 안 보이더라. 잘못했다간 너무 깊이 잘라서 피를 볼 수도 있어서 돋보기를 하나 맞췄다. 도망 다니는 고양이를 붙잡고 돋보기를 쓰고 발톱 하나 자르면 녀석은 자르기 싫다고 바둥댄다. 어르고 달래서 어찌저찌 다 자르면 진이 빠져 그저 한숨뿐. 불현듯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8살 때. 아버지 연세는 그때 56. 나랑 놀아주고 나면 아주 힘들어하셨다. 그땐 몰랐다. 30대까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안다. 당신의 몸 상태가 어땠었는지를.
50대면 아직 한창이지! 노인이 아니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을 이제 막 떠나보내는 중인 50대는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연령대다. 그리고 나이의 앞자리가 6으로 바뀌는,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르신이 되는 연령대를 앞두고 내 몸은 무엇을 또 잃어야 하는지 한숨이 앞서는 나이대기도 하다. 확실한 건 하나. 상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본문 중에서)
그럼, 60대는? 2, 30대가 상상하는 60대, 40대가 상상하는 60대, 심지어 50대가 상상하는 자신의 60대조차 현실과 많은 괴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겪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현재의 내 삶을 충분히 누리자. 그러지 못하면 어느 순간 삶은 상실에 잠식되어 과거만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