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칵테일, 러브, 좀비 안전가옥 쇼-트 2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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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각종 영화를 찾아다니며 보던 시절, 시대나 장르를 가리진 않았지만, 스릴러, 공포, B 무비를 특히나 좋아했더랬다. 특히 공포 영화나 B 무비는 한계, 격식 따윈 나 몰라라 하는 상상력 덕에 의외로 즐거움을 선사 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 남다른(또는 병맛) 유머 코드가 그랬고, 불합리나 부조리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설정들이 그랬다. 하지만 이때 우리나라 공포 소설은 그렇지 못했다. 말 그대로 공포가 핵심인 소설이었다(물론 영화도 이런 영화들이 많았지만 다는 아니었다). TV에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 같은, 소름 끼치고 오싹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줄거리들. 그러다 보니 뒷맛이 개운치 않았고 어느 시기부터 공포 장르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독서뿐만 아니라 영화도). 아마도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마지막이었을 거다(이 작가 작품들도 여러 의미로 정말 만만치 않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나버린 지금, 오랜만에 공포 소설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조예은 작가의 단편집이다. 단편 소설 4편이 실려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짝 공포가 가미된 채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소설이라 보면 될 듯하다.

 

<초대> 4편 중 공포 소설이란 명칭에 가장 걸맞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억압, 강요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부모가 자식에게, 연인 사이에서, 서열이나 권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관계에서 폭력과 다름없다는 걸 의식도 하지 못한 채 행해지는 많은 행동과 말들이 한 개인을 어떻게 옭아매는지를 생각해 보게끔 한다. 물론 한 개인의 외면과 내면을 완전히 분리해 별개의 존재처럼 서술하기에 논리를 뛰어넘는 전개 방식이다.

 

<습지의 사랑> 귀신들의 사랑 이야기. 물에 빠져 죽은 지 너무 오래돼서 원래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물귀신과, 비교적 최근에 죽어서 숲속에 사체가 유기된 여학생 귀신의 썸타는 과정이 그려진다. 우리와 다른 존재의 이야기다. 하지만,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아예 다른 존재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귀신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나 다를 바 없다.

 

<칵테일, 러브, 좀비> 영화로 치자면 B 무비와 가장 가깝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집안의 가장이 좀비가 되는데 그 원인이 뱀술 때문이란다. 아내와 딸은 그래도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해 보려 하지만 배가 고파진 좀비 아빠는 딸을 한입 덥석 물고야 만다. 딸을 구하기 위해 골프채를 휘두르는 엄마와 상황 정리를 위해 아빠를 골로 보내며 내뱉는 엄마의 말들. “빌어먹을 양반, 끝까지 자식 새끼한테 민폐나 끼치고.”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는 가부장에 대한 풍자쯤 되겠다. 킥킥거리며 읽기 딱 좋은 단편이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남편이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아들이 그 칼을 뺏어 아버지를 찔러 죽인 후 자기 목을 찌른다.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 어떤 목소리가 속삭인다. 시간을 세 번 되돌릴 수 있다. 그렇게 하겠는가? 달콤한 유혹이다. 그런데 그 유혹을 받아들인 아들의 선택은 자신이 아버지를 먼저 죽이는 거다. 불행의 원인을 찾아 모두가 행복해지는 게 아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만을 살리는 것. 아버지는 괴물이고 나 역시 괴물이라는 인식. 어쩌다 인식 밑바탕에 긍정이 아닌 부정이 도사리게 된 걸까? 하나의 이야기가 더 있다. 이 둘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 비극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비극으로 남는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뒷맛이 개운치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종류의 공포 소설은 아니었다. 아주 무난한, 공포(비논리)가 살짝 가미된 장르 소설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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