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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못 먹는 남자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3년 8월
평점 :
영화광을 자처하던 2~30대 시절. 장르나 제작 시기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고 다녔지만 그래도 애정을 품었던 건 스릴러 장르와 B 무비였다. 요즘은 영화와 멀어져서 일반적으로 쉽게 눈에 띄는 장르가 액션 영웅물인 듯한데 그때만 해도 스릴러 영화가 꽤 많이 극장에 걸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편차가 꽤 컸다. 은근한 수작이 있는가 하면, 배우 얼굴만 내세운 망작도 있고, 그냥저냥 줄거리만 뒤쫓아갈 만한 평작도 있다. 그래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던 이유는 내 취향 때문. 소설이 영화랑 똑같진 않겠지만 역시 비슷한 이유로 같은 장르의 소설을 즐긴다. 그렇다면 <못 먹는 남자>는 어디쯤 자리 잡고 있을까? 딱 그냥저냥. 자꾸 기본이 당기는 거 보면 아무래도 나이가 들었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단 말이지.
<못 먹는 남자>는 특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영은 음식을 먹을 때 자기가 얼굴을 아는 사람의 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의 범주는 광범위하다. TV나 잡지에서 봤던 연예인이나 유명인일 수도 있고, 자기 가족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거. 시기와 장소를 특정해서 자신이 목격했던 ‘그 죽음’을 막아도 반드시 죽음은 그 사람을 다시 찾아간다.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분화가 된다.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가? 회피할 수 있는데 만약 그 수단을 얻기 위해서 경제적 사회적 계급이 작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인의 죽음과 그 회피에 들이댄 도덕적 잣대를 나 자신을 비롯한 내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가?
질문은 저렇게 했지만 그렇게 어렵고 심오한 소설은 아니다. 경제적 사회적 계급은 돈 문제라고 보면 되고, 들이댄 도덕적 잣대는 ‘너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하면서 내뻗는 손가락질이라 생각하면 된다. 누구나 한 번쯤 살면서 경험해 본 일이다. 내가 항상 피해자였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그러면 나는, 이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될 거다.
누군가의 기진한 퇴근길, 피로한 몸을 누이는 그저 그런 집 안, 쓰레기들로 괴로움을 토해내는 한강. 지긋하게 평범한 그것들을 모아놓고 조망하는 아름다움이 새삼 불쾌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조차 5성급 호텔 최상층 스위트룸을 차지한 자들이 사유한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