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 한겨레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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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만 잘 읽히는 게 아니라 그 내용까지 쏙쏙 머릿속에 들어온다. 내 어머니가, 내 누나들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세대였다. 인식의 틀과 굴레에 갇혀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틀과 굴레의 산물인 늦둥이 아들로 태어난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소설을 다 읽지도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런데 소설을 다 읽은 후 가슴이 내려앉았고, 그동안 중구난방 날뛰던 모든 단어가 그 밑에서 바스러졌다. 뭘 어쩌라고. 안타까움인지 허탈함인지, 뭔지 모를 감정에 허우적대며 바스러진 단어들을 뒤적이는데 딱 두 단어가 갑자기 선명하게 드러났다.

 

, 괜찮다.’ 어디 아픈 데 없으세요? 어디 불편하진 않으세요? 맨날 그 옷만 입지 말고 다른 옷 좀 사러 갑시다. 내 물음에 언제나 돌아오는 어머니의 대답은, 난 괜찮다. 조금은 누리고 사셔도 되는데, 아주 많이 누리고 사셔도 되는데, 왜 항상 괜찮았을까?

 

...

 

엄마, 그거 아나? 대를 이으려고 늦둥이로 태어난 아들내미는 엄마 세대에선 생각지도 못한 선택을 한 거?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기로 한 거지. 대를 잇지는 못할 거 같고. 그래도 제사는 꼬박꼬박 지내니까 아버지랑 같이 와서 밥은 먹고 가요. 그보다 요즘 걱정이 있는데. 몇 년 전에 고양이를 입양했거든. 독립심 강하고 도도하고 우아하고 뭐 그럴 줄 알았지. 그렇긴 해. 나한테 딱 달라붙진 않는데, 독립심 강하고 도도하고 우아해서 그런지 항상 조금 떨어져서 나만 바라봐. 얘 세상에는 나뿐인 거지. 입양한 순간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내 세상에 얘를 가둔 셈이야. 버려진 아이긴 했는데. 걱정도 팔자지? 다 어무이 닮아서 그런 걸 어쩌겠어. 그래도 이 아이는 싸우지 않고 빼앗지 않고 나와 많은 걸 나누는 세상에서 사니까 괜찮은 건가? 모르겠네. 동물을 사람처럼 생각하니까 영 헷갈리기도 하고. 암튼 결혼 안 한다고 아부지 뭐라 하시면 엄마가 말 좀 잘해줘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아들내미가 당신들의 고통, 고민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해 못 하는 고통과 고민이 많을 거라고.

 

우리 아 없다고 또 다른 아 때리고 그라믄 안된다. 누굴 패고 싶으면 차라리 공을 차라. 뛰고 달리고 땀 흘리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우리 집에 온나. 오믄, 우리가 뜨뜻한 밥 해주께. 알았제?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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