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계간지 <자음과모음>의 '픽스업'이라는 장르로 1년여에 걸쳐 연재된 소설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났다. '픽스업'은 네 개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형식으로, 연작 소설과는 개념이 다른 장르란다. <퀴르발 남작의 성>의 작가 최제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간직한 중편 네 개를 커다란 틀 안에서 하나의 장편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루어냈다. '픽스업'이라는 장르를 처음 알았는데, 이렇게 네 개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것을 읽으면서, 최제훈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퀴르발 남작의 성>을 읽어 보지 못한 터라 더 그럴 것이다. <일곱개의 고양이 눈> 정말 묘한 이야기다. 왜 제목을 읽으면서 고양이 한 마리가 일곱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 p.294(일곱개의 고양이 눈중)

네개의 각기 다른듯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꿈을 통해 구현된 살인 - 여섯번째 꿈, 광기와 집착이 불러낸 복수 - 복수의 공식, 작품 속에 자신을 유폐시켜놓은 작가의 영원한 미스터리소설 -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뇌를 자극하는 환상 - 일곱개의 고양이 눈. 이렇게 네가지의 서로 다른것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분명 하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음에도, 다른 이야기를 읽을때 마다, 앞에 이야기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동일한것은 아니다.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 독립되면서도 연관이 되어지는 이야기.
산장에 모인 여섯 명의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끼는 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실버 해머’에서 선택받아 초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카페 주인인 ‘악마’의 부름을 받고 모인 자들은 함께 모여 ‘악마’를 기다리지만 정작 그는 나타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실재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게임이 시작된다. 위험을 감지한 자들은 마치 서로에게 의지하는 듯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그것이 곧 또 다른 위험이 되어 서로를 압박한다. <여섯번째 꿈>을 필두로, 최제훈의 가공할 만한 상상력이 시동을 건다. 첫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범인은 밝혀졌는데, 나만 알수가 없는것 같았다. 그 이야기가 연속되어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돌아서 보여진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앞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비틀어나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면서도 작품 간의 연결고리들이 매우 치밀해서 한 장 한 장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그 꿈속에서, 당신은 어디에 있었죠?”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가지면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그게 바로 당신이 갈망하는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 아니었어?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어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 그걸,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 p.238 (π중에서)
연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새롭게 생명력을 부여받아 만들어지는 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을 이번에 국내 최초로 종이책 안에 담았다. 각각의 중편이 시작되는 곳에 삽입된 QR코드는, 네 편의 중편이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것을 모티프로 삼아, 네 편의 연작영화를 보는 듯한 시각적인 효과를 보여준단다.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아서, 각편마다 앞장에 나와있는 이미지와 음원을 들을 수가 없다. 이미지와 작곡, 연주, 믹싱등의 음원이 들어있는것 같은데, 친구의 스마트폰을 사용해봐야겠다. 아직 듣지 않아 알수는 없지만, 새롭다. 이젠 책을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즐길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안에도 소설이 있고, 소설 밖에도 소설이 있는 <일곱개의 고양이눈>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새로움에도 낯설지 않고, 읽힌다. 거기에 재미까지 있으니, 이젠 종이책이 이렇게 진화되는 듯 하다. 진화의 현장에서 책을 읽는 새로운 경험. 흥미롭고도 하나의 장을 열어가는 새로운 경험에 동참할 수 있어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