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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옛날에 검은 남자가 와서 부흐하임에 불을 질렀네. 활활 타올랐네. 시간이 흐르고 고통도 흘러 갔다네. 그래도 눈 깜짝할 사이 부흐하임은 다시 세워졌네. - 부흐하임 동요-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1129/pimg_7045411761531541.jpg)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 소설 『꿈꾸는 책들의 미로』를 발터 뫼어스가 차모니아어를 번역하고 삽화를 그려놓음으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원작자인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차모니아 출신의 공룡족이다. 그의 전작인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목숨을 걸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겁쟁이들은 아예 책장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는 소설이었음에도 미텐메츠에게 매료된 독자들이 너도 나도 책을 읽었었고, 그 덕분에 미텐메츠는 차모니아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불리게 되었음은 미텐메츠를 아는 이들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일이다.
모두가 시인인 공룡족의 도시 린트부름에서 태어난 젊은 공룡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부흐하임을 다녀온 이후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는 그가 대부로부터 신비한 원고 한 뭉치를 유산으로 받고 실종된 저자를 찾아 부흐하임으로 떠났던 이야기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시인인 공룡족들에게 부흐하임에 실종되었다는 저자의 원고는 강렬함과 풍부한 감성에 매혹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험이 얼마나 무서운 모험이었는지는 전작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것이다. 책 사냥꾼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들이 부흐하임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뿐인가. 말도 안되는 모험들을 거치면서 미텐메츠는 오름이라는 작가로서는 꿈에 그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부흐하임을 떠난 후,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으리가고 결심을 하지만, 삶이란것이 어디 자기 뜻데로 되겠는가?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일컬어진다 하더라도 자신의 글이 정체기에 빠져들었다는 걸 알고 있는 작가는 또 한번의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공룡이든. 심지어 최고의 지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공룡이라면 그 갈망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겠는가? 단 한줄의 비밀스러운 쪽지는 이 지성을 지닌 공룡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미텐메츠를 부흐하임으로 또 다시 이끌기에 충분한 문장이었다. 부흐하임.. 찾으려하면 보이지 않고, 찾는걸 멈추는 순간 눈앞에 다가오는 곳. 모든 책들이 숨을 쉬고 책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책쟁이들을 위한 곳. 책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나고 썩어가는 커다란 2절판 책 수백만 권의 곰팡이가 얼굴로 밀려올지라도... 그곳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이다. 또 다시 미텐메츠의 눈에 그곳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공룡은 인간에 비해 수명이 굉장히 긴것 같다. 덩치가 커서 수명이 길지는 모르겠지만 미텐메츠가 탈피를 몇번을 했고, 탈피로 인해 외피의 색이 바낄때마다 그를 부르는 이름도 바껴지는 걸 보면 미텐메츠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외피 색을 보고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어쨌든 이 학구적인 늙은 공룡의 눈에 비친부흐하임은 예전에 그가 찾았던 곳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화재는 모든 것을 제로상태로 만들었고, 그런 상태는 부흐하임을 잿더미에서 일어나는 원동력을 이끌어 낸것 처럼 보였다. 예전이라면 타인의 곤경을 보고도 그냥 치나쳤을 테지만 잿더미로 변한 도시는 모두가 서로서로 돕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시기에 통용된 화폐는 협력이었고, 거스름돈은 우정의 봉사였다고 예전엔 별볼일 없었던 오비디오스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흐하임은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변했기에 외부에서 들어온 미텐메츠에게 이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환희와 감탄뿐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책 사냥꾼 대신 도서항해사라니. 책 사냥꾼들과 똑같은 옷을 입었음에도 부흐하임의 주민들은 거리낌없이 그들을 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늙은 공룡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세상. 이곳에서 그는 오름을 얻을 수 있을까? 미텐메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차모니아 시리즈를 3권으로 만든다고 하고 있다. 책 말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다. 미텐메츠가 오름을 따라 모험을 떠나 새롭게 변한 부흐하임을 대면하고, 그곳에서 수많은 '인형중심주의'극들을 관람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더욱이 번역본인 한국어판에는 ‘애너그램 찾아보기’를 부록으로 수록해, 작중에 인용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 이름이 뫼어스의 철자순서 바꾸기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게 했주고 있어서, 지적 유희가 더해지며 한층 더 폭넓고 풍성한 독서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 역시 부흐하임 이야기겠지만, 아직은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미텐메츠가 조금씩 단서를 흘려놓고 있기는 하지만 방대한 설명들은 도리어 책을 건너띄게 만드는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뭐, 공룡의 말을 번역한 발터 뫼어스 조차도 어려운건 넘겨서 읽어도 소설에 문제가 없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이 방대한 책을 번역한 발터 뫼어스에게 실례되는 일이니 그렇게 넘기지는 말자. 도대체 언제 다시 미텐메츠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출판할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다시 오름을 만난 그이니 조만간이라고 생각은 하고 싶지만, 그 조만간이 공룡의 시간으로 얼마일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공룡의 시간이 조금은 빨리 돌아가고, 발터 뫼어스의 시간은 느리게 돌아가길 기대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발터 뫼어스가 아니면 누가 이 지적인 공룡의 말들을 번역하겠는가? 책벌레들이라면 누구나 꿈꾸워왔을 그런 세계를 그가 아니면 어떻게 만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늙은 공룡도 역자인 발터 뫼어스도 강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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