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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해리 홀레를 좋아한다. 요 네스뵈가 아닌 해리 홀레를 좋아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이 남자가 왜 이렇게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는 모르겠다. 현실에서 해리 홀레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눈길 조차 주지 않을 사람인데 말이다. 안하무인에 약쟁이에 게으르기까지 한 해리임에도 불구하고 요 네스뵈가 만들어 낸 해리 홀레는 말도 안되게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박쥐』가 여전히 책장 한켠을 차지 하고 있는데, 읽지도 않고 어째서 『바퀴벌레』부터 읽기 시작했는지... 읽으면서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음에도 여전히 난 해리 홀레에게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남자, 요물이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레오파드』나 『레드브레스트』속 해리보다 훨씬 젊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십대 중후반으로 만났던 해리가 조금은 민첩한 모습으로 보여지는 까닭이 해리 홀레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이니 당연하다. 190이 넘는 거구에 삼십대의 해리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이 남자가 삼심대이든 사십대이든 별반 달라진건 없는 것 같다. 책 속에서는 말이다. 여전히 그의 과거속에서 그의 현재를 만나고 있는데도 해리는 음울하니 말이다. 극강의 복지를 자랑하는 노르웨이는 너무 살기 좋은 곳이라 그런지 그곳에서 읽어나는 사건 사고는 훨씬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물론 이번 배경이 노르웨이는 아니지만, 결국은 노르웨이 인들의 이야기이고, 그러기에 해리가 움직인다.
전작에서 해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오슬로로 돌아온걸로 그려지고 있다. 상처와 상실에 짓눌린 채 단골 술집인 ‘슈뢰데르’에 틀어박혀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경찰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를 호출한다. 주 태국 노르웨이 대사가 방콕에서, 엄밀히 말하면 방콕의 ‘사창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 국제적인 사건을 해결한 전력으로 적임자로 뽑힌 해리는 동생의 사건을 재조사할 기회를 달라는 조건으로 태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태국 형사들과 대사의 주변 인물들, 목격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었다. 바퀴벌레는 무게가 얼마나 될까? 10그램? 금 간 곳이나 테이블 뒤에 백 마리 넘게 숨어 있다면 방 안에 있는 바퀴벌레가 적어도 1킬로그램은 된다는 뜻이다.' (p.113)
책의 제목이 '바퀴벌레'다. 처음엔 이 제목이 왜 붙여졌는지 의아했는데, 요 네스뵈는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해리의 생각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으며, 사방에 존재하지만 애써 못 본 척해온 진실들이 벽장속에서 찬장속에서 기분나쁘게 부스럭 거리는 걸로 말이다. 중간 중간 해리의 동생인 쇠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그의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어서 새로운 해리 홀레를 만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해리 홀레는 해리 홀레다. 노르웨이 대사 주변에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들은 태국인들의 눈에 보여지는 '파랑'과 해리가 알고 있는 노르웨이인들로 다가오지만, 결국은 선과 악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삶이 그런게 아니겠는가?
대사 딸의 죽음, 대사 부인의 시한부 삶, 사건을 흘리는 사람들과 감추는 사람들. 매춘으로 시작된 것 같은 사건은 기독민주당과 사회당의 분파 싸움을 이야기 하고, 숨겨진 진실을 아주 조금씩 드러내 놓기 시작한다.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이야기들. 뼈만 남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에 진실이라는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으면서 해리는 부스럭 거리며 숨어있는 바퀴벌레들같은 기분나쁜 진실들을 찾아낸다. 무심한 듯 이야기하고 있는 해리에게 빠지는 이유는 이 때문일것이다. 놓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해리의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는 역시 요 네스뵈를 외치게 한다. 과거에도 해리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