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외동딸 4 블랙 라벨 클럽 4
윤슬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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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가출할 거야." (p.196)

 

 

 

 

2015년 장르문학 대상 로맨스부분의 최우수상을 <황제의 외동딸>이 차지했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소설을 로맨스라고 했나? 딸바보 아빠와 점점 아빠 바보가 되어가는 딸의 이야기가 로맨스라니. 성별로 따지기만 한다면야, 남/여 사이의 사랑 이야기니 맞지만 묘하게 다르다. 참 말썽많은 아빠님이 열 여덟살이 되도록 따님을 황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 보지 못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그만치 십년 하고도 팔년이다. 아이가 튕겨 나가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의 리아님이 누군가? 미친 일곱살을 거치면서 말도 안되는 아이들을 평정하고 살아온 아그리젠트 제국의 유일한 황녀아니신가?

 

열여덟이 되도록 황궁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 보지 못한 불쌍한 인간이 바로 여기 있다. 왜 못 나가냐고? 아빠가 못 나가게 하니까. 허락받으면 되지 않냐고? 그런 건 이 왕국에서, 미친 황제에겐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잉여인간이 되어 이 아름다운 한세상 여행이나 해 보려 했건만 눈앞에서 떡하니 아버지가 막고 있다니. 열여덟 살이 넘으면 가출이 아니라 독립이다! 가출하려는데, 아빠님 말고도 해결해야할게 왜 이렇게 많은지.. 재상에게 허가도 받아야 하고, 수호기사에게 의논도 해야하고, 엄마에게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게 무슨 가출이야. 게다가 프렌치아의 황제님은 왜 따라 오시는 거예요?

 

페르델이 재상하기 싫다고 외국으로 튀었을 때 아빠님의 행동을 생각한다면 가출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열여덟의 싱그러운 나이에 그냥 당할 수만은 없다. 페르델은 군대 끌고 바로 쳐들어간 카이텔의 패기에 앤시프 왕가에서 아빠님 앞에 잡아서 고이 갖다 바쳤었지만, 난 따님인데, 설마 그렇게 까지 할까? 아빠님에게 잡히기 전에 우선은 즐기자. 사건의 발단은 프렌치아의 사절단으로 온 하벨이었다. 하벨과 이야기 좀 나누고 산책 좀 했다고 난데없이 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고 유폐령을 내리는 아빠님이 문제지 따님이 문제는 절대 아니다. 그러니 엄마도 아시시도 묵인하는거 아니겠는가? 산책 하는데 "상대가 뭐가 됐든 결혼은 절대 안 돼."(p.182) 라고 이야기 하는 애비가 제정신은 분명 아니다. 그러니 이건 모두 애비, 아빠님의 잘못이다.

 

'아빠는 날 가둬 놓으려고만 한다. 제 손아귀에서 나가지 못하게. 제 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어차피 어릴 적이야 행동반경이 좁으니까 상관 없었지만 이제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은 달랐다. 그 전에도 정신은 이미 어른이었지만 몸이 아이라 참았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나도 내 인간관계라는 게 있고, 아빠랑 상관없는 나만이 인생이라는 게 있다, 언제까지나 아빠 그늘 아래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인데 . 계속 그렇게 가장 안전한 제 손바닥 위에만 가더 두려고 하니, 내가 미치지 않고 배기겠는가, 아빠가 일럴 때면 꼭 내가 딸이 아니라 마치 기르는 애완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p.194~195)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리아의 떨거지들과 함께 156cm의 키만 제외하고는 제국 최고의 미녀라 칭송받는 리아에게 드디어 로맨스가 시작되는 줄 알았다. 강아지 마냥 따라다니는 프란치아의 황제 하벨도 그러려니와 일곱살에 만나고 눈부시다 느꼈던 북제국의 예하 아힌까지 거짓말 처럼 만나는 것 뿐 아니라 또 따라다닌다. 왜? 할일 많으신 분들 아니셨어요? 은근슬쩍 좋아한다고 표현도 하고 같이 있자고 이야기도 하는데, 우리 공주님 이렇게 둔탱일 줄 누가 알았을까? 이런 둔탱이가 어째 남의 연애사는 참 잘도 연결해 준다. 이상하다 이상해. 날이면 날마다 하는 가출이 아니니 가출한 김에 어머니의 나라인 부레티까지 무조건 직진이다.

 

"증오한다. 황제여. 내 육체와 피가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내몸마저 으스러지면 내 피를 이은 이 아이가 나 대신 너를 저주하리라." (1권 p.207)

 

아이의 기억은 아무리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다고 해도 단편적일수 밖에 없다. 신체적 한계가 있으니 어쩌겠는가? 증오의 말인 줄 알았다. 열달을 뱃속에 품고 지냈을 엄마를 어째서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저 미친 황제를 향한 증오라고만 생각했던 말들이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 올 수도 있구나. 열여덟살의 달달한 로맨스보다 어느새 사랑하고 있는, 아니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딸을 찾아 미친듯이 달리는 제국의 미친왕의 행적이 더 주요하게 다가오는 로맨스 같지 않은 로맨스 소설. 어렸을 때 '엄마찾아 삼만리'라는 만화를 본 기억이 나는데, 엄마를 향한 아이의 절절함 보다 더한 딸 바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기는 참 거창하기도 하다. 아직도 육아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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