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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평점 :
덥다. 장마시작이라고 말은 하는데, 언제 장마 시작일지는 모르겠고, 열대야까지 덮치니 낮이나 밤이나 참 한결 같이도 덮다. 그래서 이런날은 책읽기가 좋다. 심장을 조여주고 책 속 인물과 함께 살기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더위도 잊어버리니 말이다. 달달한 로맨스도 콩쾅거려서 좋지만, 역시 여름엔 서스팬스다. 귀신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영상으로 마주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싫은데, 이상한게 책은 좋다. 책을 통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공포가 보는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은데도 책으로 만나는 공포와 서스팬스가 좋은걸 보면 난 어쩔 수 없는 책쟁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읽은 책은 역시 기시 유스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청각과 촉각이 요동치면서 그가 풀어놓은 트릭속에 빠져버리고, 안자이 도모야와 함께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인간의 몸의 1/1,000도 되지 않을 작은 곤충 때문에 이렇게 숨이 막힐 정도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기시 유스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읽을 맛이 나겠어라고 할 정도로 얇은 책. 희끗희끗보이는 정체 불명의 곤충과 어두컴컴한 눈덮인 산장. 보는것만으로도 한여름에 시원함을 느껴야하는데, 청량감이 다가오는 시원함은 절대 느낄수가 없다. 기시 유스케가 만들어내는 세계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여기에……. 더구나 이런 계절에…….
레이스 커튼과 유리창 사이에 불쾌한 날갯소리를 내는 곤충이 있었다. 몸길이는 2, 3센티미터쯤 될까. 노란색과 검은색의 경계색은 틀림없이 말벌이다. “아무쪼록 다시는 쏘이지 않게 조심하세요……. 처치가 늦으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p.18)
음울한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를 쓰는 소설가 안자이 도모야. 그림책 작가인 아내 유메코와 함께 야쓰가타케 남쪽 기슭의 산장에서 신작 <어뭉의 여인>의 성공을 축하하며 와인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내는 자취를 감춘채 안자이의 귀를 자극하는 말벌의 날갯소리 말벌에 쏘였던 경험으로 말벌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안자이는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곳에 위치한 산장에서 자신을 덮쳐오는 말벌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그 작은 곤충이 이토록 무섭게 안자이에게 덮쳐올지 몰랐다. 장수말벌과 함께 노란말벌들이 나타나고, 그가 안전하다고 숨는 곳마다 벌들이 날아든다. 도대체 어디서 벌들이 그를 향해 날라드는 것일까? 아내에 대한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고, 현실은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변해가면서 말벌로 가득한 산장은 안자이의 사고를 멈추게 만든다. 벌독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이에게 벌에 뾰족한 침을 통해 나오는 독은 치명적이다. 사고를 하면서 안자이는 끝없이 살기위한 방법을 찾고 움직인다. 이 작은 곤충이 한마리가 아닌 벌떼가 되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적이 되어버린다. 공격성이 강한 노랑말벌과 자신의 동족을 죽이는 장수말벌까지. 이 괴기한 벌떼들의 모습은 보통사람들의 사고도 마비시키고 만다.
말벌과의 사투. 기시 유스케가 보여준 이야기는 이 괴기한 벌떼들과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다. 이 남자가 벌떼들과의 사투에서 승리를 했을까? 승리를 했다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나는 걸까? 안자이가 벌떼의 습격을 받고 유메코가 등장하면서 기시 유스케를 왜 서스팬스의 제왕이라고 하는지, 이 책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벌과의 사투도 끔찍하지만 더한 싸움이 남아있으니 기대하시라. 아니 더한 싸움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뒤통수를 맞을 준비는 하고 있는게 좋을듯 하다.
작가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말벌은 작지만 거대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내면의 두려움은 본래의 모습이 아닌 왜곡된 이미지로 다가올때가 많다. 세월의 경륜을 가진 이들조차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다가 현실에서 마주보고는 이게 나를 누르는 두려움이었구나를 깨달을때도 있다. 안자이 도모야라는 소설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수 없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신을 향해 팔이 굽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 더운 여름이 조금은 시원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