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SF의 제왕 류츠신의 대표작이자 중국 SF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책을 만났다.  중국 과학 소설이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고 과학 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륙을 휩쓸었다고 해서 궁금했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심상치가 않았고, 엄청난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은하상과 중국 SF 네뷸러상, 서후 장르 문학상을 석권하며 문학성을 입증했단다.  게다가 너무나 유명한 모옌이 “류츠신은 평범한 인간의 삶에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더해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라며 극찬을 보냈다고 하니, 『삼체』에 대한 기대감은 극에 달했었다.  어떤 내용이 찾아올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기분좋은 설렘으로 책을 맞이했다.  

 

 

  책표지는 책 내용을 모두 알려주고 싶었던것 같다.  피라미드 같은것도 있고, 어린 동자와 우주인도 있고 정체를 알수 없는 것들이 정신없이 보인다. 게다가 은하계도 언듯 보이는듯 하다.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보이긴 하는데, 모두 아이들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꽃도 산호초같은 것들과 우주선을 타고 있는 우주선까지 아이들 장난감을 하나씩 들고와서 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여진다. 현란하고 정신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다지 표지만 보고 이게 SF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코믹 SF쯤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책표지를 보면서 든 느낌은 <맨인블랙>이었으니까 말이다.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더해 특별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는 『삼체』의 첫 느낌은 그랬다.   

 

  책 이야기를 찾아보니,『삼체』는 1960년대 문화 대혁명에서 시작해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수백 년 후 외계 함대와의 마지막 전쟁까지 이어지는 ‘지구의 과거’ 연작의 서곡에 해당하는 작품이란다.  그냥 이 책 한권으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그럼 그렇지.  끝부분에 나오는 이야기가 묘해도 너무 묘했다.  이렇게 끝나버리면 몇백년 후의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니 맘대로 될지어라를 외칠 수 밖에는 없을테니 말이다. 이게 끝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끝내버려서 예원제가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사실이 아닌 소설 속 완벽한 허구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연작이라 하니 글의 앞뒤가 들어 맞는다. 처음은 중국 과학계의 기초 과학 연구자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혼란에 빠져 있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 교수님, 우리는 교수님이 그들의 권유를 수락해 과학의 경계에 가입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교수님을 모신 이유입니다." (p.24)

 

  나노 소재 연구자인 왕먀오는 호감을 가지고 있던 양둥의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경찰과의 협조하에 ‘과학의 경계’ 회원들과 접촉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이 모든 일이 가상현실 게임 [삼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먀오는 게임 [삼체]를 시작하고, 게임 속에서 세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기이한 “삼체 세계”를 접한다.  "삼체가 바로 그랬다.  수많은 정보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삼체의 설계자는 정보를 최대한 압축해 어떤 거대한 진실을 감추려는 것 같았다. 광활한 하늘 사진처럼 말이다." (p.82) 지식인들의 지식욕을 묘하게 충족시켜주는 [삼체] 게임을 통해서 왕먀오는 인류 내부에서 절망과 동족 혐오를 키워내는 과정과 혹독한 환경 속에 2백여 차례나 멸망과 부활을 거듭하면 게임이 진화하는 것을 보게되고 그 과정에서 예원제를 만나게 된다.

 

  너무나 온화한 노부인. 유능한 과학자인 딸을 잃고 몇십년전에엔 남편을 잃었으면서도 온화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지던 노부인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문화 대혁명의 광기 속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예원제, 자기만 살겠다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반동분자로 몰린 그녀는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서 특급 기밀 지역인 홍안 기지에 배속되어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외계 문명 탐사를 목적으로 하는 홍안 기지에서 전파 발사와 수신 업무를 맡은 예원제는 어느 날 밤, 몇 해 전 자신이 우주로 쏘아올린 메시지에 대한 답신을 받는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경고한다. 대답하지 마라. 대답하는 순간 그곳의 위치가 파악되어 당신들의 세계는 점령당할 것이다.” 가능한 일일까?  몇억광년을 흘러 전해진 전파의 답장.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당신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p.311)

 

  하나로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따로 읽혀진다.  왜 왕먀오가 찍는 사진과 그의 눈에 카운트다운 숫자가 찍혔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과학의 경계'에서 꾸민 일이라고 두리뭉실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굉장히 어려운 과학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물리나 천체에 관해 전혀 모르기에 주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과학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주석을 보다보면 글에 흐름을 끊어버린다.  내경우는 그랬다.  이 쪽 지식이 있었으면 조금더 수월하게 읽혀 나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기온이 온화하고 태양 운동이 규칙적인 항세기와 하루에도 혹한과 폭염이 번갈아 휘몰아치는 난세기가 불규칙하게 교차하는 삼체 세계에서 태양 운행의 규칙을 찾아야 하는 룰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 ‘삼체 문명’의 생존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 세계와 '삼체 세계'의 이야기가 닮은 듯 다르기 때문에 세계간 이동을 할때마다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SF는 SF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류츠신의 능력일 것이다.  가상의 게임세계로만 볼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게임에 파고드는 이들은 가상현실속에서 과거로부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이 미래를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문명을 부인하기 위해서 외계문명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와 맞서는 사람들.  서막이 열렸단다.  이제 서막이 열렸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수가 없다.  끝으로 가면서 어린시절에 본 <브이>가 생각난 이유는 인류를 벌레로 표현한 딩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메뚜기떼가 박멸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벌레를 위해 건배! 세계 종말이 이렇게 상쾌하다니. 벌레 만세! 지자 만세! 종말 만세!"(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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